눈물의 품격을 익히는 요즘

우는 일에 인색해 지자

by 오진미


난 눈물이 많다. 초등학생 시절 TV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이런 나를 아버지는 항상 못마땅해했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어른이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도 그리 변화된 건 없다. 여전히 난 눈물을 통해서 많은 감정들을 쏟아내며 마음 아파한다.


# 성적과 눈물

내 눈물의 역사를 더듬어 보았다. 중학교 때다. 중간고사에서 수학시험을 망쳤다. 집으로 오자마자 내 방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 영문을 모르는 부모님은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물으셨다. 콧물 눈물이 범벅이 된 상태로 얘기했다.

“수학시험을 잘 보려고 했는데 망쳤어요.”

“아이고 그런 걸로 우니, 다음 시험 잘 보면 되지. 울지 말고.”

뻔한 말이었지만 얘기를 듣고 눈물을 그쳤다. 시험 결과를 미리 선전 포고하고 편안해지려는 나름의 방책이었다. 이후로도 시험이 끝나면 잘 우는 아이였다. 원인은 정해져 있었고 그때마다 부모님은 괜찮다는 말로 다독였다. 어른이 돼서 돌아보니 어린 내가 안쓰러웠다. 특별히 강요하는 일이 없었음에도 부모님께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힘들어했던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일상의 무게가 느껴지는 일이 닥치면 먼저 반응하는 게 불안과 눈물이었다.


# 이별과 눈물

가장 많은 눈물은 아버지를 보내드린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내 건강을 염려할 정도로 폭포수처럼 터지는 눈물을 멈추기 어려웠다. 6개월 남짓한 투병 기간이 있었고 점점 상태가 안 좋아졌기에 갑작스러운 이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실을 마주하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눈앞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칼바람 부는 날이었는데 추운 날씨가 내 마음이었다. 아버지의 친구들이 조문을 오는 순간에는 더 복받쳐 울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부지런히 삶을 일궈온 아버지의 모습과 같은 시기를 살아간 그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아버지를 보내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퇴근길 당산철교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한강 풍경이 들어오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눈물샘이 고장 났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마음을 붙잡을 수 없을 만큼 흘러내렸다. 지하철 안을 꽉 채운 사람들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잔잔한 강물을 바라보며 휴지를 꺼내 몇 번이고 닦아내며 이별을 되뇌었다.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슬픔의 그림자가 나를 덮었다.


만남과 헤어짐은 한 몸이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마치 이국에서 사는 사람 같다. 엄마와 떨어져 지낸 시간은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삶의 터전으로 가는 아침은 어색하고 힘들다. 언제나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서 일주일 정도를 보내고 온다. 그러다 떠나는 날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지만 소용이 없다. 어느새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엄마를 남겨 놓고 가야 하는 마음이 편치 않다. 눈물 많은 엄마 역시 고개를 저만치로 돌리고 어서 가라고 손짓할 뿐이다. 동트기 전 겨울날 새벽,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한참 동안 눈물을 훔쳤다.


# 눈물 앞에서 정신 차리기

꼭꼭 눌렀던 두려움을 어찌하지 못할 때도 눈물의 바다를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도 담담히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부러울 정도다. 얘기를 나누다 어느 지점에서는 꼭 눈물이란 녀석이 등장한다. 가족이나 마음이 통하는 이들의 위로를 받으며 감정을 추스른다. 요즘에는 눈물에도 품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평정을 무너뜨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 혹은 앞으로도 내 마음을 눈물로 쏟아내는 일이 마땅치 않거나 어린 마음이라고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마음을 강하게 먹고 균형을 유지하는 게 우선돼야 할 듯하다.


남편의 건강문제로 고민하던 때다.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 의견을 묻는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습관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선생님은 가장 따끔한 충고를 던졌다. 큰 돌덩이에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지금 그렇게 울고 불고 할 때가 아니에요. 선택의 문제가 없는 일에 대해서 왜 그리 어린애처럼 굴어요. 엄마이고 남편도 몸이 안 좋은데 그렇게 하면 가정일이 어떻게 되겠어요. 제발 정신 차려요.”

그 한마디가 갈팡질팡 헤매던 나를 일으켰다. 그 후로 눈물이 나오려는 순간 멈추고 잠깐 생각해 본다. 눈물을 동반해야 할 일인지를 살핀다. 감정 역시 내가 만들어놓고 빠져버릴 때가 있음을 알아가는 중이다. 마음이 하는 일이지만 중심을 잡으려 한다. 내가 힘들지 않고 다시 힘을 얻기 위함이다. 눈물 뒤에 남는 건 잠깐의 후련함일 뿐 문제는 제자리라는 사실을 수십 년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았다.


우는 일에 인색해지기로 했다. 아이들이 휘둘리거나 함께 우울해지는 일은 막아야 하는 게 내 몫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단단히 버티고 있어야 하는 엄마의 자리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 때 나를 다독인다. 숨을 크게 내쉬고 눈앞에 놓인 일들을 찬찬히 바라보고 나서 침착해지려 한다. 상황마다 감정 고르는 일을 시도해 보니 조금씩 마음을 잡아가게 된다. 나를 바라보는 일은 아직도 어린 마음을 성숙시켜주는 밑거름이다. 때때로 밀려오는 슬픔과 어려움 앞에서 무너질 때도 많다. 다시 돌아보고 일어나 고쳐먹기를 반복하는 일만이 눈물의 숲에서 가볍게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다.

TV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산을 넘으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다시 웅덩이가 나오고 진흙탕을 건너면 다시 가시덤불이 나와요.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매일 부딪히게 될 고(苦) 앞에서 눈물 보다는 나를 위한 일로 전환시켜야겠다. 짧게는 한 달 두 달 길게는 일 년의 시간이 흐르면 눈물의 품격을 몸이 알아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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