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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12. 2024

집 정리

일상을 잘 보내는 법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날들이 그러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얼마쯤 하고 책을 읽었다. 집 소파에 앉자 반쯤 쿠션에 등을 기대어 책을 보는데 이 날따라 참 편안했다. 고요의 맛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집 주변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지 무엇을 부수는 드릴 소리가 쉼 없다. 한참 요란스럽다가 조용해지면 끝난 줄 알았는데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같은 거였다. 다시 주변을 뒤흔들 만큼 굉음 소리가 났다.     


날은 갑작스럽게 덥다. 한여름에 와 있다는 기분이다. 이러고 보면 주변 상황은 고요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리 없는 정적을 경험했다. 몇 장 남지 않은 책을 넘기면서 다 읽어간다는 뿌듯함을 만끽했다. 책장을 덮었다.      


몇 주 전에 읽기 시작한 것인데 오랜 시간이 걸려 마무리됐다. 그동안 내게 있었던 많은 일들이 이 시간을 위해 있었다는 기분이다. 아이에 대한 염려와 다시 그것을 통해서 나를 바라보게 되는 여러 과정들이 지났다. 힘들다는 단순함으로는 정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제 조금씩 제자리를 찾으면서 집을 보니 미뤄두었던 일을 할 힘이 생겼다. 책장 위에 남편이 올려둔 책들을 정리했다. 책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주변에 잡다한 것이 많았다. 카드 영수증부터 스크랩을 위해 찢어둔 신문, 철 지난 잡지까지 모두가 제 자리를 찾아야 할 시간이었다.     


필요 없는 것을 재활용장으로 가져간 다음 다시금 거실에 앉았다. 그때 마침 텔레비전 테이블 위에 먼지들이 보였다. 그 작은 것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틀고 있었다. 어느 건설회사 이름이 들어간 광고용으로 만들어진 물티슈를 뭉치로 가져왔다.     


처음에는 대충 먼지를 닦았고, 다음은 안 보이는 곳까지 꼼꼼히 했다. 이어서 텔레비전 화면까지 이어지니 주변이 순간 말끔해졌다. 털썩 주저앉아 이 작업을 했다. 서너 번 하는 동안 그건 흡사 성당에서 어느 날 내가 기도하던 모습과 닮았다.     


단지 먼지를 없애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의미와 의지를 가지는 의식 같았다. 빠르지도 않지만 제 속도가 붙었다. 먼지가 사라지자 선명히 책과 주변이 다가왔다. 마음이 오롯이 한 곳을 향하는 기분이 오랜만이었고 좋았다. 이래저래 쌓인 물건들 때문에 제목이 가려졌던 책들이 빛났다.     


그러다 볕 좋은 날 아이 이불에 햇빛을 쐬어주기로 했다. 하얀색 그것을 베란다 난간에 널고 아이 방에 다시 들어갔는데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여름인데 앉는 부분에 화학섬유로 입혀진 검은색이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갑자기 이것을 무엇으로라도 바꿔놓고 싶었다.    

   

쿠션 커버인데 지퍼가 고장 나 버리기엔 아까워 놔둔 게 있었다. 그것을 가져와 사방에 끈을 달고 의자 커버를 만들었다. 아이의 의자는 커버 하나로 다시 태어났다. 의자의 주인은 아직 보지도 못했고 어떤 반응일지 모르지만 혼자 큰 만족이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리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걸 매일 실천하는데 주저한다.     


그러다 생각이 미친 게 내가 살아가는 일도 그렇다는 것. 내가 자주 쓰는 단어지만 ‘직면’ 이 어렵다. 감정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 대부분은 직접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일이면 이런 마음 씀을 가질 일이 없다. 환하게 웃고 즐겁게 지낸다. 이런 상황에서 불편함을 찾는 것이 오히려 바보스럽다.      


일상은 이와 반대로 흘러가는 날이 많다. 그때 무심해지려고, 애써 외면하며, 거리를 둔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주된 영역이지만 사물과 나의 거리도 그런 것 같다. 알고 있지만 내버려 둔다. 보기 싫어도 관심을 주지 않으며, 그 속에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매일 만나는 책들과 식물, 소파의 쿠션과 부엌에 걸린 액자 등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들이다. 이들 역시 말을 하지 않을 뿐 생명을 갖고 있다. 그건 식물처럼 스스로 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있지만 내가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 것도 상당하다.   

  

이날 그 친구들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작은 벽걸이 액자에 다른 그림과 사진으로 바꿔주었고, 식물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잘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고, 내가 머무는 주변을 다른 것이 끼어들지 않도록 했다. 그러니 그곳에 있는 내가 잘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시간을 보내야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는 걸 알았다. 매일 하루를 보내는 일에서 해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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