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 제일 속 편한 아줌마
사람 사이에서 섬이 있다. 오래전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해할 듯하다가 이내 모호한 채로 지났다.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그런 섬이 되었다.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퇴근하는 위층 사는 친구가 헐레벌떡 들어선다. 어떻게 지내냐는 간단한 인사를 묻고는 커피 한잔 하자고 했다. 그가 매일 왜 그렇게 바쁘냐는 말을 언제나처럼 건넨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실과 다른 이 말을 습관처럼 한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그날 저녁에 보자고 했다. 집으로 가서 대강 저녁 준비를 하고, 먼저 먹고는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즈음 서너 살 무렵에 자주 만났던 이들이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동안 서로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자연스럽게 오가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러다 그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로 올라갈 때 무렵부터 하나 둘 사회로 나가기 시작했다. 난 여전히 주부였고 그들은 직장인으로 정신없이 지내니 만남도 뜸해졌다.
서로가 생활하는 공간이 다르니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다.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드물 만큼이었다. 그동안 나누지 못한 게 너무 많은 데 처음 무엇이 화제가 될지 궁금하고 설렜다.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사이에 두고 내가 그동안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보톡스와 필러, 누구 집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등 화제들이 오갔다.
한 언니는 지난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일하는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들려주었다. 다른 이들은 열심히 듣거나 간간이 질문을 던졌다. 이번 모임에서 하이라이트는 피부관리였다. 나이를 피해 갈 수 없기에 조금이라도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었다. 피부과에서 시술을 받거나 예약해 둔 이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사는 세상 밖이었다. 피부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언제까지나 잊지 말아야 할 생활습관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피부과에서 시술받는 일은 관심밖이었기에 점점 지루했다. 언젠가부터 얘기를 하기보다 듣는 것이 좋다 여기며 가능한 말을 많이 안 하도록 노력하는 편인데 이날은 다른 때보다 말 수가 급속히 줄었다. 네 명이 어깨를 부딪힐 만큼 가까이 앉은자리에서 난 말하는 이를 바라보거나 자몽 허니 티를 간간이 마셨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반가움은 아주 잠시였고 집 생각이 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언니가 우리 아파트서 제일 속 편한 아줌마야. 무슨 걱정이 있어. 언니는 뭐 하면서 지내.”
“난 매일 집에 있어.”
그의 말은 아주 가끔 그들이 나를 보면 자동적으로 뱉는 말이었다. 동시에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것이기도 했다. 무엇을 보고 내가 편하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단정 지어 버리는 그들에게 다른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그들이 모르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지내왔는지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지를 설명하는 것도 불편했다.
“내가 그렇게 편하게 보이나? 음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무게를 가지고 사는 거니까.”
이렇게 한마디만 거들었다. 다들 보고 싶어 하는 것만 혹은 그러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활동 무대가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 그처럼 한가하게 보이는 일일까? 집안일 역시 시간을 잘 나눠서 하지 않으면 온종일 일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도 있다는 걸 설명해야 했을까? 여러 물음이 머릿속에서 멈췄다 지나기를 반복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몇 분 동안 정말 우울했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왔다고 여기면서도 내가 할 얘기가 없었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관심 영역이 나와 다르다고 애써 나를 달래면서도 무언가 씁쓸했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고 나서는 나는 그들의 일상에 얼마나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는지,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으로 지날 수 있는 걸 너무 과잉반응한 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그날 카페에서 내 기분은 한밤중 저 멀리 반짝이는 육지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혼자 있다고 여기는 느낌과 닮았다. 며칠이 지나 동생과 이 일을 얘기하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들 속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고 그것이 만족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무대에서 살고 있는데 그것을 타인에게 확인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혼자 자발적으로 섬에 머물고 있다는 기분은 달리 살펴보면 나름의 독립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는 현재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다른 이의 삶을 단편적으로 재단하는 일에는 신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혹시 내가 겪은 그날의 감정을 다른 이들도 내게서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