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가 발생하던 날
오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올 이가 없어 누군지 물었더니 아파트 관리실 설비 담당 아저씨였다. 그는 아랫집 누수 때문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우선 물을 사용하는 욕실과 세탁실, 부엌을 살피고는 물이 나오는 곳을 모두 모두 잠갔다. 그는 3분 뒤에 수도 계량기가 돌아가는지 확인하고는 원인은 우리 집이라고 했다. 누수가 아니면 계량기가 돌지 않아야 하는데 한 바퀴 반을 움직이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누수탐사를 해야 정확한 걸 알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다행히 같이 온 동네 철물점 사장님에게 맡기면 된다고 해서 다음날 아침에 원인이 된 곳을 찾기로 했다. 작업할 철물점 사장님은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에 싱크대를 들어내서 살펴야 할 수도 있으니 그 아래쪽을 다 비워놓으라고 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스러웠다. 묵혀둔 낡은 의자들을 버리고 겨울옷 정리도 끝내서 오랜만에 홀가분한 오후였다.
내게 갑자기 큰 과제가 떨어진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우선 문제 해결까지 진행될 과정이 부담스러웠고, 부엌에 있는 것을 치워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특히 싱크대 아래를 살피다 혹시 낡은 싱크대가 부스러지기라고 하면 어쩌지 하며 작업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단숨에 불안과 짜증, 불편함이 가득한 감정에 쌓였다. 저녁준비를 하는 중에도 한층 무거운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충 저녁을 먹고 나서는 싱크대 아래에 있는 그릇과 냄비 등을 다른 곳으로 치웠다. 다음날 아저씨는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고 물이 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육중한 기계를 부엌에 놓고 콘센트에 꽂으니 굉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누수탐사기인 듯했다.
아저씨는 세탁실과 보일러 주변, 욕실과 부엌을 쉼 없이 오갔다. 한참이 지난 듯해서 보니 40여분을 훌쩍 넘겼다. 아저씨도 빨리 알아내지 못하니 답답해하는 표정이다. 그는 말썽이 난 곳이 어딘지 알기 위해 기계를 작동시킨 상태로 귀에 크고 둥근 이어폰을 끼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찾은 것 같아요. 여기 와보세요.”
욕실로 가니 아저씨가 설명했다. 세면대를 지탱하는 못이 수도배관에 박혔고, 그곳에 구멍이 생기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다른 정밀 측정 기계를 가져가지 않아도 바로 물소리가 들렸다.
이때부터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저씨는 평소에는 직원과 함께 다니더니 이날 따라 예비군 훈련에 갔다며 혼자 바삐 일했다. 내가 도울 수도 없어서 괜스레 미안했다. 난 보험처리를 해야 하니 작업과정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잠깐 쉬는 아저씨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이 일로 많이 놀랐다고 했다.
“아니 이게 무슨 큰일이에요. 이 동네 아파트 곳곳이 그래요.”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짧게 답하고 지났다. 순간 내가 실제 벌어진 일보다 확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의 말대로 살다 보면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난 내게만 생긴 듯 놀라며 그리도 불안함을 느꼈을까?
누군가는 살아간다는 건 매일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고 했다. 별일 없던 어제와 다를 뿐이었고 이것이 지극한 보통의 관점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원하는 것처럼 아무 일 없는 생활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지만 일이 생기면 혼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격으로 당황하고 괴로워했다. 그건 안정되지 않음에 대한 지극한 어려움이었다. 나아가 혼자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시작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부정적인 결말을 예견해서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했고 하루가 지났다. 지금은 작업 전에 스며든 물로 인해서 얼마간 발생할 누수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그때의 감정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건 물이 새어 아랫집에 피해를 주었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상황 이전에 다른 것이 담겼다. 그건 내게 오랫동안 머물러 온 힘겨운 감정선들이 살아난 일이었다.
어느 책에서 큰일은 크게 작은 일은 작게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난 이번 일을 겪으며 정반대로 움직였다. 솔직히 보면 소소한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습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던 내 마음을 다시 들춰보았다. 조금의 불편함도 용납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도 확인한다.
이날 몸은 긴장되었고 신경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졌다. 이런 내게만 집중하니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누수작업 때문에 평소보다 빨리 일어나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별 표현을 안 했지만 꽤 불편했던 모양이다.
“엄마 너무 피곤해 보여. 무슨 일 있어요?”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큰아이의 물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그렇게 말했을까? 하며 헤아려 본다. 내게 다가온 일에 대해서 밀어내려 하지 말고 “그랬구나”하고 사실을 파악하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난 기분에 무게를 두었다. 무엇에도 도움이 안 되는 생각을 우선할 뿐이었다.
아직 욕실에 타일 붙이는 일과 아랫집 수리가 남아있다. 그럼에도 현상을 보려 하니 그때보다는 편안하다. 그러고 보면 마음작용은 외면해서도 안되지만 우선해서 휩쓸리는 일은 경계해야 했다. 매일 일상을 눈으로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하며 지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잔잔한 하루가 출렁일 때 바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돌아보며 어른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먼 이야기로 다가온다. ‘마음이 합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대부분의 일은 마음이 하지만 그 이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분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