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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이 주는 기쁨

루틴을 어긴 어느 날

by 오진미

사 주째인데 하루를 쉬었다. 사월 중순쯤부터 매주 세 번의 글을 썼다. 자발적인 숙제였다. 숙제라는 단어 속에는 꼭 해야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절반의 자유와 강제가 숨어있다. 난 후자를 선택하고 싶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꺼려진다.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긴다. 이건 넓은 이해가 아니라 내가 살아보니 삶에는 어쩔 수 없는 게 정말 많았다.


그러다 보면 종종 갈 길을 잃어버린다. 내가 그렸던 그림이 순식간에 어그러져버릴 때도 있다. 그때마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없다. 아무리 타인이 나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 떠나는 여행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순간에만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미칠 만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말이다. 그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게 제자리다. 언제 그런 시간이 있었냐는 듯 다시 해결해야 할 일과 지금 당장 몸으로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하는 것들이다. 직장인이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하듯이 내게도 그런 일들이다. 하루하루가 그렇다면 정말 불행하겠지만 그럴 정도는 아니다. 난 음식을 만들고 꽃을 가꾸고, 계절마다 집이라는 공간을 바꾸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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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동원해서 말이다. 커튼을 바꾸거나 오래전 전시회에서 사둔 그림을 액자에 담거나 로컬푸드에서 꽃을 사다가 꽃병에 꽂는다. 과일 담는 그릇을 도자기에서 스테인리스 바구니로 바꿔 담아 본다. 가끔은 산책 갔다가 어느 벽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담쟁이넝쿨을 잘라서 집에 오면 물에 담근다.


이런 것들은 상당 부분 간헐적으로 이루어진다. 쉬지 않고 진행되는 것, 즉 밥 준비와 집안 청소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 일을 만들고 싶었다. 나를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만들어주는 일. 어렵지만 하고 싶고, 하지 않으면 생각나는 일이었다.


글쓰기가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가오는 감정들을 담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매일 음식을 만드는 일이 가장 가까운 일상이었고, 어쩌면 그것이 내 순수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종종 오이와 배추와 토마토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문득 훅하고 다가오는 기분을 식탁 위 사각 메모지에 대충 적어두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쓸 때는 그것을 꺼내어 보았다. 반짝 사라지는 생각들이 그곳에 남아있다. 그렇게 나를 이루는 것들을 썼다. 겨울은 내게 혹독했다. 무기력하다는 말이 적당할 만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겨울잠을 자듯 글과 멀리하다 봄이 오고 나서 더 이러면 안 된다는 내 안의 소리가 싹을 틔웠다.


누군가 규칙적인 일을 삼 주간하면 습관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첫 한 주는 전혀 하지 않던 일을 한 것처럼 어색했고, 그만큼 힘들었다. 그러다 둘째 주는 조금씩 해야 할 일로 자리를 잡아갔다. 글을 쓰는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은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 온전한 하루를 보낸 기분이었다. 살며시 몸에 익어가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삼 주를 보냈는데 금요일 하루를 쉬었다. 처음에는 언제나처럼 글을 써야겠다고 여겼는데 조금씩 느슨해졌다.


내게 핑계를 대었다. 동생이 오랜만에 집으로 놀러 왔다. 아침부터 봄비는 세게 내렸다. 바람까지 동반한 날씨는 스산했다. 집에서 가까운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실 계획이었는데, 그도 나도 집 밖으로 나가는 게 귀찮아졌다.


날씨가 그 이유에 한몫했다. 동생이 집에 있는 드립백 커피를 내렸다. 얼마 전 사온 우리 밀 통밀빵 그리고 밤잼과 딸기잼, 크림치즈에 사과와 초콜릿 쿠키도 곁들였다. 달콤한 것이 들어가면 우선 기분이 좋다. 다른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듣지 않아도 적당한 위로가 된다. 아마 이때쯤부터 오늘은 글을 쓰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되어도 괜찮다고 나를 정당화시켰나 보다.


점심때가 지나고 저녁이 다가온다. 나만 아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다. 그 순간이라도 글쓰기를 시작하면 되었지만 그런 적극성도 없었다. 단지 후회가 머물다 가고 다시 의도적으로 잊고 편안함만을 좇는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면서 금요일의 나를 떠올렸다.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진득함이란 돌을 내 곁에 두어야겠다는 것. 쉽지 않지만 그리해야 더 편안해지는 것도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때로는 불편함과 스스로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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