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찾기에서 자유롭기
얼굴을 보며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이건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집안 분위기가 한몫하는 것 같다. 아버진 열심히 사는 농부였지만 대화하는 걸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귤 수확으로 바쁜 늦가을과 겨울 무렵이 아니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꽤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시골 초등학교에 유치원이 생겼다. 학교 입학 전 1회 신입생으로 오후부터 시작되는 유치원을 다녔다. 오전은 네 살 어린 동생을 돌보다가 학교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에 헐레벌떡 유치원으로 갔다. 아마 이때부터 아버진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하루 있었던 일을 꺼내놓으라고 했다.
“오늘 유치원에서 무얼 배웠니? 노래 배운 것 있으면 한번 해볼래?”
그때마다 난 잘 부르지는 못했지만 부끄러워하면서도 집 안방 중앙에 서서 곧잘 노래를 불렀다. 그때부터 하루의 일과를 나누는 것이 그날의 마무리였고, 자연스레 이런저런 일상이 오갔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당신의 경험을 들려주시며,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었다. 아버진 섬세한 성정만큼이나 예민해서 때로는 어린 내게도 시작과 끝맺음이 확실한 처세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게 즐거웠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로 성장하는 동안 이런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가끔 모이게 되면 자정이 지나는 것도 모를 만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런 습관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게 하는 경험이 되었다.
그러다 매일 직장에 나가던 시절에는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주부로 지내면서는 내 적극성이 어느 정도 발휘되어야 이런 시간이 주어졌다. 아이가 어렸을 때 오히려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 날이 많아졌고, 시간이 많아진 요즘은 집에 머무는 때가 대부분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나서 집에 오면 급하게 몰려오는 피곤함도 힘들었다. 어느새부터인가 대화 내용 중에서 의미 두는 일에 몰두했다.
“사람들은 매일 겉도는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다음에는 가지 말까?”
“당신 별로 모임 하는 것도 없는데, 그것마저 안 하면 그렇잖아. 그래도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남편과 정기적으로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깊이 있는 말들이 오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과연 내가 원하는 그건 어떤 형태를 보이는 걸까?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은 속살까지 내비쳐야만 한다는 걸까? 그런데 다시 바라보면 그걸 들었다고 해서 행복하거나 반드시 좋은 대화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도 아닐 수도 있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갈등을 하다가도 매번 모임날이 되면 나갔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니 이런 것도 괜찮다 싶은 마음이 찾아왔다. 얼굴을 마주하는 건 단지 말로 하지 않아도 해결되는 것들이 많았다. 서로서로가 서서히 나이 들어가는 세월이 보였고, 그러다 보니 아주 잔잔한 뻔한 이야기도 달리 들렸다.
“언니 사람은 외부의 자극이 필요해. 집밖으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런 경험을 하고 말이야.”
가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동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저 그땐 당연한 듯하다고 여기면서도 내가 타인과 대화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지 못해서 막연했다. 단지 다른 이가 언급하는 이야기의 내용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독서모임에 나갔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서로의 느낌을 나누는데 문득 내가 살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나와 다른 의견에 놀라고 있음을 알았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게 아주 살짝 농담을 건네며, 내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리 집중하지 않았고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음에 안도했다. 아침에도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하고 고민했다. 그건 단지 머릿속으로 이루어지는 형체 없는 것들이었다. 막상 만나고 나니 나와 다른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서 생각이 정리되었다.
차례대로 말이 오가는 동안 내가 굳이 빨리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들어보았다. 그러는 사이 내 얼굴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거울을 들어 살펴보지 않았으니 어떤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분 좋게 환해졌다. 서서히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이를 만나는 건 세상 속으로 나가는 일이다.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만 무게를 두고 그렇지 않은 것은 별로라는 구분 지음이 나를 좁은 세상에 머물게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을 두려는 일에서 벗어나야 정말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가고, 내가 그렇게 중요히 여기는 의미를 찾는 과정일 수 있겠다. 내 얼굴 근육이 어느 때보다 많이 움직인 날이었다. 사람들과 만남은 단지 소리로 들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다가오는 정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