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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24. 2020

몬테크리스토의 에너지

휴일, 3분의 2 마침표를 찍다

 

 일요일은 기분 좋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적어도 한 번쯤은 맘껏 마음을 놓아두고 편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손쉬운 방법은 맛있는 걸 먹는 일이다. 우리 네 식구는 누가 뭐라 하든 잘 먹는다. 맛있는 걸 찾아서 먹기도 하지만 잘 만들어 먹는다. 주방에 머무르기를 거부하지 않으며 식탁을 차려내는 내가 이날의 일등공신이다. 주말이면 머릿속 메뉴판이 정신없이 움직인다. 그중에서 일요일 점심이 핵심이다. 12시를 넘기는 시간 즈음이면 서서히 한주에 대한 스트레스가 몰려올 때다. 지금은 까마득하지만 회사원이던 시절 그러했다. 토요일은 별일 없이도 그냥 좋았다. 그러다 일요일 오후를 달려갈 즈음이면 급격히 우울해진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마음이 복잡해진다. 시간은 가만히 놔두어도 흘러가겠지만 이왕이면 힘차게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일요일 점심을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로 정한 이유다.    


 “오늘은 몬테크리스토, 다 괜찮아?”

“응 정말 좋지!”

모두가 대 찬성이다. 몬테크리스토는 일단 이름부터가 재밌다. 프랑스 서민들이 즐기던 크로크 무슈에서 시작됐다는 얘기와 이탈리아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즐겨먹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유력한 건 프랑스 대중 음식이라는 점이다. 정확한 건 치즈와 햄이 들어가니 든든한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는 것.  일단 이렇게 점심 고민은 사라졌지만 정작 재료가 없다. 비가 그치고 밖은 스산하다. 전형적인 겨울 풍경이다. 식빵이 없다. 움직이기 싫었지만 내게 핑계를 댔다. 머리도 가벼워지게 혼자 천천히 산책 겸 나가서 빵을 사 오기로 했다. 언제나 동행하는 워킹화를 신고 한적한 공원을 걸었다. 언제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을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열심히 운동 중이다. 한편에선 아침 허해진 배를 채우는 컵라면에 열심히 젓가락질하는 이도 눈에 들어온다. 공원 벚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단풍도 몇 가닥을 제외하고는 화려했던 옷이 자취를 감췄다. 비가 온 탓에 적당히 물먹은 공원 산책로가 폭신하다. 세 바퀴를 돌았다. 슬슬 멈추고 싶어 지는 시간이다. 빵집으로 향했다.    


 거리는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여유롭다. 오가는 이도 없다. 식빵을 샀다. 호주머니에 작게 접어온 시장바구니를 꺼내 펼쳤다. 빵을 담고 나서는데 비가 조금씩 내린다. 우산도 없던 터라 점퍼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썼다. 따듯하고 기분이 좋다. 종종 오가는 길이지만 옆을 보면서 가본 일이 별로 없다. 혼자만의 여유를 부리기로 한 까닭에 동네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다 집에 들어갔다. 시계는 11시를 넘긴다. 쉬지 않고 바로 만들기에 돌입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만드는지 휴대전화로 레시피를 찾아 읽었다. 머릿속에 입력하고 나면 바로 실전이다.    

 

 우선 계란 6개를 볼에 깨뜨린 다음 우유를 조금 넣고 잘 저어 두었다. 샌드위치용으로 얇게 슬라이스 한 햄과 체다치즈 4장을 각각 준비했다. 바삭한 식감을 위해서 빵가루도 꺼냈다. 여기에 달콤함을 빼놓을 수 없다. 적당한 단맛을 휴일에 거부한다면 큰일이다. 행복으로 가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기에 며칠 전 만든 사과 바나나잼도 꺼내놓았다. 식빵에 우선 잼을 적당량 펴 바른 다음 치즈를 올린다. 다시 식빵 한 조각을 꺼내어 위를 덮고 햄을 올린 다음 식빵 한쪽 면에 잼을 발라주면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 식빵이 벽돌처럼 쌓아 올려진 두툼한 샌드위치가 완성됐다. 이 빵에 계란물을 충분히 묻혀 준 다음 빵가루 샤워를 시켜준다. 이때 손으로 꼭꼭 눌러가며 가루가 식빵 전체에 붙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포인트. 에어프라이어로 180도에서 10분 구운 다음 뒤집어서 다시 7분 정도 다시 굽는다. 다른 요리들과는 달리 몸을 그리 움직여야 할 일이 없으니 편하다. 식빵 3조각으로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를 하나를 완성했다. 12조각의 빵으로 온 가족이 든든한 한 끼가 완성되었다. 

   

 “와아 정말 맛있어 엄마!”

아이들이 언제나 그러하듯 감탄한다. 남편은 묵묵히 먹기에 바쁘다. 초특가 할인으로 사 온 사과요구르트를 곁들였다. 순간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사라졌다. 한 끼가 아니라 온종일 먹어야 할 만큼의 열량 폭탄이다. 누구의 말처럼 맛있게 먹으면 칼로리 제로라는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티브이를 보며 각자의 접시를 비워간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편안한 얼굴들이다. 

“3분의 2가 지났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휴일 아침은 3분의 1이고 그다음인 점심을 보냈으니 여유가 생긴다. 주말을 이렇게 세 조각으로 나누어 내 일을 체크한다. 밥하는 일을 그리 힘들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나는 하루는 가끔 인내를 요한다. 이렇게 시간을 체크하면서 마침표를 찍다 보면 나름 재미있다.

    

 일요일 몬테크리스토는 쉽고 간편하면서도 모두를 만족시켜준 탁월한 선택이었다. 먹는다는 건 모두를 무장해제시켜주는 일이다. 특히 한 주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휴일은 더욱 그러하다. 온 가족이 ‘빵의 위로’를 받고 저마다 앞에 닥친 소소한 일들을 하나씩 잘 풀어갔으면 좋겠다. 얼핏 보면 인스턴트 느낌이 강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긴 시간이 필요한 슬로푸드였다. 빵이 없으면 존재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빵을 찾아 나선 시간을 잊으면 안 되었다. 빵집으로 가기까지의 아침 걷기를 돌아보았다. 다른 때보다 천천히 걸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알아채지 못한 걱정과 불안이 마음을 물들이는 일이 없도록 단단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려움보다는 용기라는 녀석을 친구로 둬야겠다'고 내게 말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는 걸음은 그리 무겁지 않았고 썩 괜찮은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사온 빵이었다. 내 마음이 평화를 얻었으니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도 순간처럼 지났다. 오늘은 화요일, 몬테크리스토의 에너지가 우리 가족에게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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