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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14. 2020

밥은 무엇일까요?


 밥통이 비었다. 아침밥을 지어야겠다. 어제저녁 사둔 콩나물을 씻는다. 쌀을 씻었다. 햅쌀이라 흰 밀가루를 풀어놓은 듯 물이 곱다. 기다란 콩나물을 대충 쌀 위에 두었다. 솥을 가만히 바라보다 뭔가 허전했다. 주방 주변을 방황하는 고구마 반개를 발견했다. 껍질을 벗기고 숭덩숭덩 썰었다. 콩나물 위에 화룡점정하듯 넣었다. 금세 노란빛으로 환해진다. 가스불을 켜고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딸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불을 약하게 하고 몇 분을 지났다. 이제 밥이 다된 모양이다.     


 그냥 밥이 아니다. 현미와 귀리와 검정 쌀이 들어가는 잡곡밥도 아니다. 오늘은 콩나물 고구마밥이다. 그릇도 평소와 다른 걸 골랐다. 보통 밥그릇에 먹으면 모양이 안 난다. 비벼 먹기도 어렵다. 그릇 가득 꽃무늬가 들어간 녀석으로 했다. 개나리 핀 봄날에 노랑나비가 날아든 것 처럼 밥 한 그릇이 따듯하다. 평화롭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매일 하는 밥이지만 이날 따라 밥이 다르게 와 닿았다. ‘밥이 뭘까?’ 아침부터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밤하늘 별처럼 하나씩 떠오른다. 밥은 삶이었다. 그건 단지 먹는 행위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원이었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헤쳐나가는 일상을 이어주는 끈이었다. 

“밥 먹었어?”, “밥 먹자.” “밥은 먹고 다니니?”…….

사람들과 나누는 익숙한 대화다. 언제 들어도 친숙하면서도 가슴 쿵 하게 하는 말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오빠의 전화였다. 점심시간이었는데 제일 먼저 던진 한마디는 누구나 예상하듯 그 말이었다.

“점심밥은 먹었니? 맛있게 먹었어?”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그 말이 뭐라고. 짧은 몇 마디가 모든 걸 말해주었다. 일일이 풀어놓지 않아도 괜찮다. 동생을 생각하는 깊은 정이었다. 항상 걱정을 달고 사는 여린 동생을 생각하는 위로와 격려였다.

    

 밥은 ‘마음’이었다. 밥 한 그릇에 모든 걸 담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다른 여러 가지 반찬이 없이 한 그릇 음식으로 내놓고 싶은 날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여러 가지를 섞는 일이다. 특별히 뭔가를 준비하기도 하지만 집에 있는 재료들을 모아 놓는다. 표고버섯이며 대추, 고구마, 무, 새송이 버섯, 밤 …….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색깔도 제각각인 특별한 밥이 완성된다. 그릇에 담을 때는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몸에 좋은 것들을 넣었으니 밥 한 숟가락을 떠먹는 동안 식구들이 건강해질 거라는 잠깐의 위안도 얻는다. 밥을 하는 시간은 이렇듯 하루를 잘 보냈으면 하는 마음을 담는 일이다. 한 끼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별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유독 아침을 챙겨 먹이는 이유다. 매일 시간을 보내는 부엌이 아침만큼은 조용하고 때로는 경건해지는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다.  

   

 지금처럼 추워지는 날 잊지 못하는 밥이 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일주일을 보낸 뒤 첫 출근날이었다. 퇴근한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아이를 돌봐주는 이모님 댁에 들렀다. 

“어 왔어요. 오늘은 일찍 왔네. 힘들었죠. 이제 집에 가서 밥해서 먹어야 하잖아. 찬은 없는데 우리 집에서 먹고 가요.”

눈물이 핑 돌았다. 별 말하지 않아도 힘들었을 시간을 헤아려 주는 아줌마의 넓은 품이 나를 안아주는 듯했다.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모를 만큼 정신 없이 보낸 그 날은 유난히 허기졌다. 삼겹살을 굽고 잘 익은 묵은지 김치에 된장국 배추 겉절이까지 최고의 한 상이었다. 한 숟가락 넘기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맛있게 먹는데 마음은 아팠다. 상 위에 올려진 여러 가지 반찬을 맛보면서는 고마운 마음이 더해져 눈물이 순간 쉼없이 흘렀다.

“나도 그 맘 알지. 난 아버지가 큰아이 출산하고 다음날 돌아가셨어. 그때 몸도 그렇고 아이도 워낙 어리니 가보지도 못했거든. 사는 게 그러더라고. 그래도 밥 먹고 가서 아이 돌보고 일 하고 살아야지.”


  그랬다. 힘내고 살아야 한다고 전하는 응원의 밥이었다. 세상에 산해진미가 넘쳐나지만 특별한 순간에 의미가 더해진 음식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밥이다. 그래서 매일 밥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은 일이라 여겨진다. 쌀 씻는 일 하나에도 대충 하기보다 정성을 기울인다면 특별한 밥으로 탄생한다. 값비싸고 특별한 재료를 올려야 가능한 게 아니다. 뻔한 얘기지만 ‘마음’을 담으면 될 일이었다.   

  

 오랜만에 동네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아이 책을 빌리러 아침 일찍 도서관에 들어서는데 눈에 익은 얼굴이 들어온다. 한 6년은 족히 된 인연이었다.

“잘 지냈어?”

“어! 언니. 정말 오랜만이에요. 언니도 잘 지냈죠.”

그리고 소곤소곤 잠깐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어디로 이사 가서 정신이 없다는 등 밀린 얘기가 많았다. 

“언니 우리 다음 주에 꼭 밥 먹어요.”

그렇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톡이 와 있다. 정확히 날짜를 정하지 않으면 흐지부지 된다며 화요일에 보기로 했다. 어디서 무얼 먹을지도 생각해 오란다. 다음 주가 기다려진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독서지도사 강의를 들으며 만났던 친구다. 생각도 비슷하고 열심히 사는 이라 여러 가지 배울 게 많았다. 그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 오랜만에 얼굴을 봤다. 누구든 그러할 테지만 밥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누면 편안하다. 밥을 먹으면 서로에게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 일상의 얘기지만 밥이 함께하니 지루할 틈이 없다.    

 

 단지 지나가는 말로 ‘밥 먹자’ 하는 이에겐 별로 마음이 안 간다. 잠깐의 만남에서 할 말이 없으니 나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정말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면 정확하게 건네야 할 일이다.

“우리 언제 만나서 밥 먹을까?”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어야 한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말에 그 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만남을 갖고 밥을 먹는 일은 진정의 힘이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다. 오늘도 내일도 밥을 한다. 매일 밥은 모두에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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