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다. 노랑빛이 스쳐간다. 자세히 보니 밝은 빨강. 엄마가 배추며 무를 택배로 보내왔다. 한편에 감이 열댓 개 딸려 왔다. 한 손으로 움켜쥘 만한 적당한 크기의 것이 귀엽다. 이 녀석들을 한 곳에 모아두니 주변이 환해진다.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고운 가을빛이다. 그러다 감이 보통 감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가왔다. 감은 아버지였다.
고향집 마당에는 삼십여 년을 함께한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른 봄부터 시작된 공사는 가을 무렵 끝났고 그동안 우리 가족은 감귤저장고로 이용되는 창고를 정리해서 지냈다. 긴 장마를 보내고 집이 완성되어 갈 무렵 설레었다. 그동안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는 기대 가득이었다. 적당한 규모의 현대식 건물이었다.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아버지가 감나무 한그루를 어디서 가져왔다. 내 방에서 바로 보이는 빈터에 자리를 잡고 심었다.
봄이면 연하디 연한 싹을 틔웠고 더워지는 날씨에 여름을 생각할 즈음이면 하얀 감꽃을 피웠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마주쳐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때로는 나무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어린 묘목에 불과하더니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니 제법 나무다운 모습으로 커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될 무렵에는 가을이면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감이 달렸다. 처음에 초록빛이던 것이 추석을 넘기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홍빛으로 익기 시작했다. 가끔 한두 개 따 먹었다. 7살 무렵 동네 언니네 집 수돗가에 있는 감나무에는 언제나 감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익지도 않은 여름 무렵부터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운동회날이면 교문 앞 행상에 가지런히 놓였던 감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그리 탐이 났지만 집에서 쉽게 만나니 별 감흥이 없었다.
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을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어른이 되어 휴가를 받고 제주도 시골집으로 간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집에도 이 감나무가 이렇게 있고, 저기 과수원에도 주변에 감나무가 많던데 왜 그렇게 심으신 거예요? 우리가 그리 좋아하지도 않잖아요.”
“응 그건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손주들이 집에 오면 장난할 거리가 있어야 하잖아. 감도 따 보기도 하고, 감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여주려고. 그래서 심었지. 우리 할아버지가 이런 걸 심었구나 한 번쯤 생각하게 말이야.”
그땐 그 말의 깊은 속내를 알지 못했다. 단지 언제나 생각의 깊이를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지극한 자식 사랑에 가슴이 ‘쿵’ 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신 지 십 년이 지났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언젠가 여름에 갔을 때 과랑과랑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도 쌩쌩한 나무를 보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 제사를 십여 일 앞두고 마주한 감을 보니 먹먹해진다. 감나무를 심었을 때는 몰랐다. 세월이 이렇게 흘러 아버지의 사랑을 추억하게 될 소중한 징표가 되리라는 것을. 오히려 예쁜 꽃이 피는 꽃나무를 심기를 원했다. 매해 우리 가족의 입안을 촉촉하게, 때로는 달콤함으로 이끄는 건 감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감 한 개는 어린아이가 찬 바람을 맞고 붉어진, 터질 것 같은 아이의 귀여운 볼 같다. 그리고 빙그레 미소 띠던 아버지의 얼굴이 내 눈앞에서 스친다. 눈물이 절로 흐른다. 언제나 너른 가슴으로 품어주던 아버지와 마주하는 느낌이다. 아버지를 보내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큰 이모가 말했다.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안나지. 아마 오 년, 십 년이 지날 때 그리움에 사무칠 거야.”
정말 그랬다. 아버지를 보내드렸던 시간보다 지금이 더더욱 그립고 슬픔이 온몸을 휘감는다. 슬픔의 파도가 엄습하지만 통곡하지을 뿐이다. 소리 없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이별을 마주한다. 절절한 마음에 잠시 일을 멈추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함께 보낸 시간을 추억한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이별의 무게는 현실에서 살아있다. ‘잘 살아야 한다’고 했던 아버지의 당부를 마음에 새긴다.
아이가 홍시를 맛있게 스푼으로 떠먹는다. 아버지의 생각이 옳았다. 한 번도 함께 해보지 못한 할아버지였지만 감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중이다.
“지금 네가 먹고 있는 감 있잖아. 할아버지가 옛날에 심은 나무에 달렸던 거야. 나중에 네가 크면 먹고 장난도 하라고. 알았지.”
“응. 그랬구나 알았어.”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감에 담긴 의미를 오롯이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래도 할아버지 마음이 담겨 있는 특별한 것으로 알려줄 수 있어서 기쁘다. 아버지가 그려봤을 풍경 또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아버지는 냉철하고 불의를 넘기지 못하는 강단 있는 분이셨다. 거친 세상 풍파에 살아내기 위한 지혜를 어릴 때부터 열심히 가르쳤다. 그런 까닭에 엄격했고 언제나 준비하는 삶의 자세를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있으니 걱정 말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어른이 되어 아이 엄마가 되었을 때도 아버지의 존재만으로 힘이 났다. 이제 감 하나로 아버지를 느껴본다.
“살아진다.”
언젠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격려였다. 감 빛깔이 복잡한 마음을 감싸준다. 보고 있으니 편안하다. 아버지의 감이 내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