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트의 유혹

by 오진미


마트 가는 길에 동네 엄마를 만났다. 장을 보고 나오던 그의 에코백에는 밀키트가 살짝 보였다. ‘오늘 저녁은 저 키트가 해결해 주겠구나.’ 싶었다. 서둘러 마트 안에 들어서니 절로 금방 만난 그가 산 물건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몇 가지 품목에 세일이란 표시가 붙었다. 잠시 갈등이 시작이다. ‘살까? 말까? 이 가격이면 괜찮은데.’ 아이가 사 오라고 한 과자 코너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사고 다시 그곳으로 갔다. 언제부터 먹고 싶다던 큰아이가 생각났다. 마라탕을 집어 들었다.


코로나19는 삶의 주변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중이다. 주말이면 가끔 새로운 식당을 찾아 맛있는 요리를 먹거나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던 일을 망설이게 했다. '괜찮겠지'와 '혹시'나 사이에 갈등하다 집에서 지내는 요즘이다. 전화로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몇 번이면 질리기 마련이다. 집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쉬운 것 하나가 요리다. 아이러니다. 최근 끝난 드라마에서 한 주부가 넋두리했다.

“내가 결혼해서 한 일은 삼시세끼 차리는 일뿐이었던 것 같아.”

주부의 일이 그러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가족을 위한 일이기에 당연하다고 흘려보낸다면 슬플 일이다. 수십 년 헤아리기 힘든 시간의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견디어야 했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음식 만들기도 노동이다. 가족과 그 위에 덧입혀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누군가의 소중한 일이다. 간편하게 요리를 할 수 있는 밀키트(MEAL KIT)는 집밥을 위한 시간과 노력을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줄타기다. 이 녀석은 적당한 맛을 보장해 준다. 정확히 말하면 누구에게나 거부당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연구와 테스트를 거쳐 만들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식탁에서 마주할 때면 왠지 내가 만든 것 같은 자부심이 넘친다. 실패의 위험을 줄여주니 매력적이다.


두 번의 밀키트를 경험했다. 차돌박이 숙주 볶음과 스테이크. 애들과 함께 하는 점심 메뉴였는데 만족도가 높았다. 순간 일주일에 몇 번 이것을 활용하고 싶어 진다. 무얼 먹을지에 대한 고민 대신 마트에서 집어 오기만 하면 되니 간단하다. 깔끔하게 손질되어 진공 포장된 재료들은 신선하다.

“내 손으로 이 재료들을 사서 요리를 한다고 생각해 봐요. 돈이 더 들지. 그런 면에서 좋더라고요.”

동네 엄마가 애들 반찬을 무엇을 할지 묻는 내게 이것을 추천하면서 건넨 한마디다.


“엄마 이 고기 맛있다. 다음에도 해줘.”

아이들이 엄지척한다. 순간 내 선택이 옳았음에 기분이 좋다가 뭔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몸을 편안하게 해 주니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음식에 담긴 마음과 정을 잊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도 살짝 엄습했다. 너무 과하다 싶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만드는 사람의 손맛에 따라 같은 음식이라도 천차만별이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지나치게 될지 모른다. ‘맛의 획일화’라는 단어를 쓰면 너무 멀리 나간 것일까. 짜고, 맵고, 달고, 시고, 거칠거나 부드럽거나……. 여러 가지 맛의 향연들과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때로는 요리를 위해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을 거부하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내일 점심은 마라탕으로 정해졌다. 오늘 사 온 밀키트가 있으니 걱정 없다. 이미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다면 무슨 문제인가 여기다가도 ‘균형’을 떠올려 본다. 끊임없는 유혹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버지와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