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에게 엄마가 내게
온 세상이 깜깜하다. 새벽의 어둠은 태양을 맞으려는 준비의 시간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7살 아이가 부엌 밥 짓는 솥 앞, 나무로 만든 어두운 갈색 방석에 앉았다. 나무에 함석을 덧대어 만든 문 사이로 초겨울 찬 기운이 들어온다. 아이의 낭랑한 목소리는 한여름 아침 기운처럼 싱그럽다. 엄마는 혹여나 머리카락이 음식에 들어갈까 봐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부엌에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낼 때다. 엄마는 내 말에 그리 다정스럽게 답을 해주진 않았다. 오롯이 혼자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내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 오면 엄마는 밭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어둑해진 저녁이 돼서야 돌아왔기에 엄마의 품이 그리웠다.
“진미는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네. 어쩜 저리도 애가 조용한지.”
친척들이 모이는 제삿날이면 종종 들었던 얘기다. 그건 어쩜 가면이었는지 모르겠다. 난 조용하지 않은 수다쟁이였다. 단지 불편한 사람들 앞에서 얼음이 될 뿐이었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엄마 전화다. 애들 점심을 부지런히 챙기고 나서 티브이를 켜고 멍해질 무렵이었다. 밖은 갑작스럽게 시작된 강추위로 꽁꽁 얼었다. 부드러운 담요로 몸을 감쌌지만 뭔가 허전한 마음이었다.
“어떻게 지내니? 밭에 와서 일하다가 전화한다.”
제주에도 눈이 많이 왔다고 하는데 엄마는 오늘도 집에 머물러있기가 답답했나 보다. 엄마를 기다리는 많은 일들이 눈에 아른거려 쉬는 일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엄마는 그간의 일들을 늘어놓았다. 한라봉은 어떻게 수확했고, 신경을 썼는지 한동안 위가 안 좋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오빠에게 보낼 미숫가루를 만들기 위해 검은깨와 콩을 볶아서 방앗간에 다녀온 일까지 일상의 흔적들을 엄마의 목소리로 확인했다. 엄마의 마음 시계는 우울과 희망, 용기, 고통이라는 경계를 자주 오간다. 엄마는 오늘따라 더 힘 있다. 엄마는 과수원에서 일에 집중하다가도 문득문득 스치는 우울과 외로움이 커갈 때 전화를 한다. 예전 같으면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일이 힘들었다. 내 삶도 편치 않음을 핑계로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어 질 때가 많았다. 지난해부턴 엄마의 얘기가 들렸다. 조용히 엄마와 마주하는 마음으로 듣고 있다. 엄마 이전에 한 여인의 삶으로 다가온다.
“엄마 추우니까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세요. 길도 미끄러우니 조심하시고요. 저녁도 잘 챙겨 드세요.”
언제나 전화는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건강해야 한다는 말로 맺는다.
# 미용실 원장님
사람들은 말을 내뱉는 순간 얽혀 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시원해지는 게 있나 보다.
“우리 만나서 수다 떨어야지.”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면 기약 없는 약속을 한다. 그 이유는 말하기 위함이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말 한마디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우기도 한다. 십 년이 다 돼가는 단골 미용실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약속이라도 한 듯 남편과 나, 때로는 딸아이까지 이곳을 방문한다. 그렇게 가다 보니 횟수로 치면 100번은 족히 만나고도 남음이 있다. 시간이 만든 상당한 인연이다. 지난 월요일이었다. 그날은 유독 미용실을 가야겠다는 욕구가 정점을 찍었다. 막내 역시 단발머리로 변신해 보겠다고 벼른다. 점심을 먹고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그곳으로 향했다. 문이 꼭 닫혔다. 주변 공원을 돌다 오면 문이 열렸을 거라며 아이를 달랬다. 우리의 기대와 바람일 뿐이었다. 운동을 삼십 분하고 왔는데도 미용실 안은 인기척이 없다. 다음날은 머리를 감고 고민을 하다 전화를 걸었다. 역시 신호만 갈 뿐이다.
“엄마 우리 오늘도 못 가는 거야?”
아이가 크게 실망한 눈치다. 개인적인 연락을 해본 일이 없었기에 휴대전화를 누르는 게 망설여졌다. 그래도 마음이 급하니 확인해야 했다. 힘없는 목소리다.
“어디 아프세요?”
“네 위에 바이러스 염이 생겼다 하네요.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어지럽고 그래요.”
“그럼 병원 가서 수액주사를 맞고 오세요.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몸이 힘든 것 같은데요.”
망설이던 그가 그래야겠다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미용실 문을 못 열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곤 끊었을 법한데 오늘은 15분 이상을 통화했다. 자세히 묻는 일도 부담스러워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다. 먼저 지금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하는 게 아닌가. 며칠 전부터 속이 좀 안 좋다가 일요일 저녁부터 급격히 악화됐다고 했다. 미용실 원장님은 솔직 담백한 스타일이다. 오랜 시간을 만나지 않으면 차갑다고 단정 짓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오늘처럼 먼저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일이기에 조금은 당황스럽다. 아프다는 상황에만 빠지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나 보다.
“고마워요. 2시부터 오후 진료니까 지금 준비해서 가봐야겠어요. 난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그냥 왜 이리 힘이 없지 하고는 눕고만 있었네요.”
‘누구나 이리도 말하고 싶어 하는구나. 몸이 아플 때는 더 그러하겠지.’ 특별한 것을 해주지 않아도 한마디 말이 기운 나게 하는 효과 만점 에너지 음료였다
# 오이모와 아이
완도에 머무는 12층 언니가 한 달여 만에 왔다.
“자 이거 받아라. 그냥 올까 하다가 마음이 그래서. 제일 괜찮은 것들로 골라서 왔는데도 이모양이야.”
언니가 검정 봉지 안에 봄동 서너 포기를 담고 왔다. 언제나 그냥 오는 법이 없다. 손수 일군 땅에서 가꾼 무, 당근, 상추 등 계절마다 맛있는 먹거리를 준다. 언니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듯하다. 친구처럼 얘기를 들어주고 책을 함께 읽는다. 아낌없는 폭풍 칭찬과 마음을 표현하는 사랑 가득한 포옹이 따라다닌다. 막내는 언니의 성을 따서 ‘오 이모’라 부른다.
“오이모, 장군이와 콩순이는 잘 크고 있어요? 이모 이것 보세요. 제가 만들었어요?
숨이 넘어갈 것 같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얘기가 이어진다. 언니는 눈을 맞추고 미소 지으며 들어준다. 퀴즈도 낸다. 아이는 축제장에 온 것처럼 신났다. 어디서 저 많은 단어가 숨어 있었을까 싶다. 입에 물집이 잡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쉬지 않고 말한다. 집을 찾는 손님이 없다. 친척 하나 없는 이곳에서 살아가기에 편안히 말을 나누는 어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요즘처럼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아이 얼굴에 활력이 돈다. 봄날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꽃이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언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모 가야 해요? 더 놀다 가면 안돼요? 나중에 또 와야 해요. "
아이의 간절함이 가득하다. 어른과 아이 누구나 사람이라면 말하는 순간에 많은 것을 채워간다. 좋든 그렇지 아니하든 간에 하루를 나누기 위한 누군가가 필요한 듯하다. 가끔 좋아하는 식물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면 한결 가볍다.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누군가의 얼굴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