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세피아 새 잎이 나기까지 일 년
2년 전 가을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동네 화원으로 산책을 간다. 아이에게 다양한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괜찮은 나들이다. 막내가 한라산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조릿대를 연상시키는 ‘고드세피아’가 좋다고 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당연히 잘 자랄 것이라 믿었다. 식물을 집으로 데려와 겨자색 꽃무늬가 앙증맞은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아이는 식물의 잎 색깔을 보고 한창 싱그럽게 피어나는 봄 같다며 이름을 ‘봄이’이라고 지었다.
“봄이야 쑥쑥 자라야 돼. 알았지.”
아이가 나지막이 얘기도 건넨다.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처음보다 풍성해지리라는 기대와 달리 잎이 하나둘 누렇게 변했다. 가위를 들고 상한 것들을 잘라내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돌아가 보면 몇 개가 더 늘었다.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흙이 손에 묻지 않을 만큼 마른 걸 확인하고 난 후에야 물을 주었다. 마음처럼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하루가 다르게 잎이 시들고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지쳐갔다. 한두 달을 적당히 물만 주고 외면했다. 그러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다른 화분을 살피다 보니 서너 개도 안 되는 잎만 남았다. 다시 살아나기는 힘든 과정을 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속상했지만, 오랫동안 키워온 게 아니었기에 단념도 쉬웠다. ‘될 만큼 되겠지. 살아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겨울을 보냈다. 잎이 딱 2개 정도 달렸다. 따뜻한 봄 햇볕을 쬐도록 베란다 적당한 곳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몇 주를 지내고 보니 이제는 정말 마지막 잎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애착이 생겼다. 복잡했던 마음을 붙잡기라도 하듯 이 녀석에게 마음이 갔다. 하나 남아있는 것을 살려 어떻게라도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런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여름을 한 가닥 잎으로 버텼다. 찬 바람이 부는 초가을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식물들이 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친구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티끌만 한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새잎을 틔우기 위한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 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결과였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극한 고통에 시달리다 보면 마음을 비우게 된다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시간을 충분히 보낸 후에는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때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깜깜한 밤을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에 가벼워짐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슴이 찢어지거나 몸부림치며 힘든 순간을 보내고, 눈물로 지새우다 보면 시간은 흐르고 익숙해지는 동시에 가벼워진다. ‘기다림’의 세월을 살아낸 대가다. 아무 말하지 않는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일도 상당한 견딤이 필요하다. 다른 식물을 심을까 하는 마음의 널뛰기가 있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싶었다. 하루를 보내는 일이 힘들 때도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새로운 잎이 생기고 다시 살아난다면 나도 뭔가 새롭게 시작할 힘이 생겨날 것 같아. 그러니 꼭 힘내야 돼.”
고드세피아 앞에서 몇 번 나지막이 읊조렸다. 봄이는 버티었고 인내했다.
“엄마 봄이한테 새잎이 돋아났어요.”
학교를 다녀온 막내가 감탄한다.
봄이는 이제 잎이 여섯 개가 될 만큼 조금씩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보았을 때 새로운 잎이 나고 다시 한참을 지나 보면 또 새로운 싹이 나온다. 더디어서 때로는 답답하다. 머리가 아플 때 진통제를 먹으며 몇 분 이내로 금세 증상이 사라지거나 괜찮다. 세상의 일도 약을 먹고 바로 나아지는 것처럼 순간의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건 환상일 뿐이었다. 사람의 일도 식물의 일도 모두가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낼지는 각자 선택의 문제다. 봄이처럼 희망을 발견하고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설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기다림만이 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털썩 주저 않고 시간을 보내기만 한다면 달라지지는 않는다. 아주 조금 티끌의 힘이라도 있다면 일어나서 움직여야 한다. 봄이도 화분 안에서 고군분투했으리라. 며칠 동안 이어진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동안 절체절명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키운 튼튼한 체력 때문일까. 봄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봄이야. 고마워. 너를 보면서 뚜벅뚜벅 걷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내일을 기대하는 힘을 얻었어. 잎 하나에서 새잎이 나오기까지 일 년의 시간을 담담히 보낸 네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내게도 그런 준비의 시간이 필요한 듯해.”
소리 없이 내리는 눈, 고요함이 아름다운 겨울의 중심에 살고 있다. 봄이 저 멀리서 아주 천천히 걸어오고 있을 듯하다. 봄이의 올봄은 더 찬란하리라. 아니 이미 봄이는 봄을 맞이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