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잎 스타피 필름 이야기
물만으로 살아간다. 정확히 말하면 가끔 돌봐주는 사람의 손길과 햇빛, 적당한 바람이 전부다. 올해로 4년째 동거 중이다. 우리 집 안방 옷장에서 언제나 씩씩하게 살고 있는 스타피필름이다. 부담 없는 사이 그러나 시간이 만들어준 인연은 매일 볼 때마다 뿌듯함과 기쁨이다.
미세먼지가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온 세상이 떠들썩해지던 그즈음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공기청정기를 사야 하나 고민하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과 기기를 집안으로 들여놓았을 때의 장단점을 생각하다 식물을 들이기로 했다. 공기정화에 좋다는 것들을 검색해 보니 스타피 필름이 눈에 들어왔다. 흙에다 심는 일을 생각도 했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을 고려해서 물에 심기로 했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물꽂이는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는 식물 키우기다. 내가 나를 어찌 못할 만큼 가끔 널뛰는 감정의 물결이 휘몰아쳐 돌봐줄 여력이 없을 때 말라죽거나 힘들어하는 시기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처음 적응기 며칠을 지내면 대부분 잘 자라 주는 까닭이다.
옹기 항아리에 심기로 했다. 어릴 적에는 된장이나 김치 등을 보관하던 흔한 항아리였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고 갑자기 소나기가 세차게 몰아칠 때는 항아리 뚜껑이 날아갈까 단단한 돌을 올리는 일에 비를 뚫고 나가야 했던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것이 대학생 무렵부터 그 매력을 알게 됐다. 멋 내지 않는 담박함이 멋스러웠다. 화려하지 않기에 어디에 두어도 무리 없이 어울린다. 고추장을 담았던 항아리에 친구들을 두었다. 난 화분에 담겼던 돌도 항아리 밑에 깔았다. 아무리 물에서 자라는 녀석들이지만 뭔가 지지해 줄 것들이 있다면 더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요즘 이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에 만족한다는 느낌이다. 조금씩 꾸준히 자라고 있음을 상징처럼 보여주는 초록은 사계절 언제나 변함이 없다. 잊고 있으면 새싹을 보여주고 때로는 하얀 꽃을 피우기도 한다. 세 개 항아리에 담긴 채로 옹기종기 서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보낸다.
이토록 단순하게 살 수 있을까. 내 삶과는 상당한 거리다. 내 마음에 있는 걱정들이 사라지지 않음에도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나를 몰아세운다. 그러다 마음이 힘들면 몸으로 와서 며칠을 끙끙대는 일이 반복이다.
스타피필름이 살아가는 방식은 어쩌면 정말 최소한의 것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삶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기에 크게 탈 날 일이 없다.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바싹 말라버리는 순간까지 버티다가 어느 날 시원한 물줄기를 내려주면 그것이 최고의 선물이다. 사람과 식물의 삶을 잠깐 비교한다. 무엇이 더 힘들고 누가 더 편안히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내가 너무 많이 가졌기에 지금 있는 것조차 보지 못하는지도.
누구에게도 위로받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이 지쳐있을 때 나풀거리는 초록 잎 하나가 나를 깨운다. 그저 바라보는 순간에 느끼는 평안은 잠깐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며칠 전 눈길을 뚫고 공원을 가로질러 도서관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아파트 담벼락을 채웠던 담쟁이가 무슨 이유인지 몇 가닥씩 잘려나가 보도블록 위를 나돌고 있었다. 진한 푸르름을 자랑하는 여름,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 그곳을 지날 때마다 탐나던 아이들이었다. 가지 몇 개를 집으로 가져와 물에 꽂았다. 야생 담쟁이는 제주도 집에서 가져와 베란다에서 기르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몇 번 시름시름 시들다가 이별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오늘까지 삼일을 버텼다. 희망이 보인다. 앞으로 이 계절이 지나면, 봄이면 하늘거리는 싹을 틔워 나를 숨 쉬게 해 줄 듯하다. 물만으로 살아가는 스타피필름, 여기에 더해진 건 적당한 관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