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운동화와 이별하며
초가을 적당히 초록을 품은 운동화가 있었다. 5년 전쯤 시내 자라 매장에서 할인한다기에 29000원을 주고 샀다. 적당한 키 높이라 신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설레는 마음 안고 누군가를 만나는 날, 의식처럼 함께 했다. 3년을 보낸 어느 날부터 신발이 헐거웠다.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발을 포근히 감싸주었던 쫀득한 느낌이 사라진 지 오래다. 걷고 있으면 발과 신발이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품었던 애정과 관심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막내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언니 신발을 물려받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는 만큼 신발장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것들이 쌓여 있다. 산책하러 나가려다 말고 신발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이 갑자기 튀어 올랐다. 아이에게 하나씩 꺼내어 잘 맞거나 커서 앞으로 신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는 4켤레를 골랐다. 억지로 온 힘을 다해서 넣으면 들어가지만 벗기가 어려운 것들이었다. 내가 아끼던 초록색 운동화와 함께 헌 옷 수거함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그날따라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신발장은 훨씬 공간이 많아져 여유가 생겼다.
언제부턴가 버리는 일이 즐겁다. 옷이든 재활용이든 비우고 오면 상쾌하다. 갖고 싶어서 몇 번을 망설이다 구입한 것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는다. 몇 년을 입은 옷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지면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왔음을 알려준다. 처음 만났던 날 기쁨과 함께 했던 세월도 흘려보낸다. 옷들은 그렇게 소리 없이 내 곁을 떠났다. 때로는 이런 과정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일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즐겨 입던 옷에 얘기가 담겨 있다면 망설여진다. 옷장 문을 여닫기를 몇 번 한 끝에 결정을 내린다.
시간을 더듬어 보면 20년은 충분히 지났을 것 같다. 지방지 기자 생활을 하다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사표를 썼다. 그렇게 하고 싶은 어릴 적 꿈이었지만 현실의 체감 온도는 너무나 달랐다. 고민 끝에 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봄을 보내고 가을이 깊어질 무렵 트렌치코트가 필요했다. 대학 시절부터 입었던 짙은 남색 코트는 얇기도 하거니와 낡아서 새것이 필요했다. 며칠간 백화점 시장조사를 끝냈다. 마음에 드는 게 있었지만 내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옷이 아른거릴 정도였다. 옷값이 부담스럽지만 나를 돋보이게 해 주고 꼭 입고 싶기에 약간의 모험에 나서기로 했다. 그때 내 패션 철학은 ‘단순함’이었다. 그런 나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베이지색 코트였다.
일요일이었다. 더 망설일 수 없어 카드로 해결하기로 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3개월 할부였다. 매달 부담스럽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함만으로 일을 저질렀다. 50만 원에 가까운 코트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겨울에 입을 수 있도록 타탄체크 조끼가 함께 있어 실용적이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던 시절이라 인터뷰나 회사 면접 등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는 신나게 입었다. 열심히 다이어트해서 몸에 자신감이 충만했던 시절에는 허리 벨트를 질끈 매고 빛나는 에나멜 굽 낮은 구두를 신고 혼자 공주가 된 듯한 기분을 안고 다녔다. 내 삶의 빛나던 20대를 함께 해 준 옷이었다. 그 옷을 입고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지금도 스쳐 갈 정도로 나와 함께 했던 오랜 친구였다.
그러다 일을 그만두었고 주부로 살아가는 동안 외출의 기회는 예전보다 확연히 줄었다. 지방으로 이사 온 탓에 아는 이도 별로 없고 코트를 입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옷장에서 몇 년을 보냈다. 가을이면 봄에 입지 않았으니 버려야겠다고 마음을 먹다가도 옛 추억이 그려지면서 다시 옷걸이에 걸었다. 그 옷을 볼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20대의 순간이 그리웠다. 현재의 나를 바라보면서 안쓰러웠다. 열정 가득한 기자가 되기 위해 그야말로 성실함을 무기로 덤벼들던 내 모습이 사라진 것 같아 슬펐다. 그러기를 몇 번 어느 초겨울 오후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는 옷장 정리의 시간이었다. 얼마 없는 옷이지만 수납공간이 좁다 보니 언제나 옷들은 숨쉬기가 힘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옷을 꺼내어 가지런히 접었다. 내 나이 40에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그렇게 옷을 정리하고 나니 새로운 주인공들이 그곳을 차지했다. 그즈음에 새롭게 내 삶을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과거를 보내고 다시 나로 오롯이 잘 서고 싶었다.
지금도 코트의 실루엣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찬바람을 맞으며 수거함에 신발을 두고 오는 순간 기분이 상쾌했다. 꽉 붙들고 싶을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공간이 생겼다. 어제도 니트와 점퍼, 바지를 정리했다. 옷장에서 잠자고 있던 것들과 세월을 간직한 탓에 너무 낡은 옷들이었다. 깜깜한 밤, 찬 기운을 느끼고 싶어 밖으로 나가는 길에 다시 수거함을 찾았다. ‘덜컹, 탁’ 옷이 어느 쫌엔가 빈 곳으로 들어간다. 작별의 인사다. 그 순간 기분이 좋다. 가벼워진 마음에 잠시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다. 갖고 있던 것을 덜어내는 일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선물이었다.
일요일 아침 라디오를 듣는데 진행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비워야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뭔가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비우는 과정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닐까요.”
순간 ‘쿵’ 했다. 항상 부족함에 시달리면서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데 비울 수 있을 때 행복이 찾아온다니 말이다. 그동안 과거를 붙들고 싶어 하는 아쉬움과, 새것으로 채워 넣어 공허함을 달래고 싶은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은 힘들었다. 아침부터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이 그치면 주변을 꼼꼼히 정리하고 싶다. ‘이 정도면 됐어’ 하고 만족할 만큼 버리고 나면 하루가 달라 보이고 내게 또 살아갈 힘을 줄 것 같다. 물건이 줄어든 만큼 내 생각과 고민들도 단순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초록색 운동화, 내 멋스러움을 빛내주었던 코트야 고마웠어."
비움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면서도 슬그머니 무엇을 채워 넣으려는 욕심이 다시 고개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