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밥 이야기

#12

by 오진미




밥이다. 하얀 쌀밥이다.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은 순수다. 이번에는 김치와 함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치밥이다. 말 그대로 김치와 밥의 만남이다. 무엇을 더해서 맛있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없다. 묵은 김치에 매실청과 간장만 있으면 끝이다. 아이들은 종종 이 이것을 즐긴다. 어느 여름 티브이 프로그램 ‘강식당’에서 나온 메뉴였는데 별 기대 없이 만들었다. 생각보다 맛있고 만들기가 쉬우니 종종 우리의 점심을 찾아오는 손님이다.


기분 좋게 하는 음식을 생각하고 만들어 먹는 일이 지겹다고 여겨질 즈음 김치밥을 만든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 그러했다. 김치냉장고에는 일 년 된 묵은지 4분의 1조각이 남았다. 김치 줄기 몇 가닥을 가위로 잘랐다. 부족함보다는 많은 것이 좋다. 넉넉히 볼에 담고 씻는다. 도마에 올리고 적당한 크기로 채 썬다. 넓고 깊이 있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김치를 볶는다. 간장과 매실이 더해지고 김치에 윤기가 흐르면서 투명해지는 순간 밥통에서 밥을 퍼서 함께 잘 섞는다. 이때부터는 온 집안에 김치향이 퍼져나간다. 상큼함보다는 눅눅함과 젓갈 향이 고루 버무려진다. 그리 유쾌하지 않지만 불편하지도 않다. 한 가지만 더해지면 끝이다. 어른들이 요리 마지막에 참기름을 두르듯 아이들은 치즈를 뿌린다. 팬에서 누룽지를 만들 듯 적당히 눌어붙는 동안 치즈가 눈처럼 밥 위에 녹아 흐른다. 매운맛을 적당히 잡아주면서 끈적끈적한 부드러움으로 이국적인 맛을 전한다.


어릴 적 밥은 언제나 한 가지로만 통하는 줄 알았다. 흰 쌀에 콩이나 여러 잡곡을 섞는 게 끝이라고 여겼다. 커 갈수록 밥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언니 자취방에서 처음 먹어봤던 콩나물밥이 시작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언니는 제주시내에서 자취를 했다. 새로운 세상을 동경했던 나는 주말이면 가끔 반찬을 들고 언니를 찾았다. 초가을이었다. 토요일에 갔으니 하룻밤을 자고 오기로 했다. 엄마 같은 큰 어른으로 여겼던 언니는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1~2학년의 어린 학생이었다. 언니는 동문시장에서 장을 보고 와서는 콩나물밥을 지었다. 어찌 흰 밥에 콩나물이 들어갔지 생각하다 한입 먹어보니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맛이었다. 그때야 콩나물도 이리 특별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시골에서 올라온 동생을 위한 언니의 정성과 사랑이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는 작은 돌솥에 담긴 솥밥을 즐겨먹었다. 회사와 가깝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흰 쌀 위에 콩 몇 알과 은행 한 알, 약간의 밤 조각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갓 지은 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로 안경에 김이 서릴 때가 귀찮으면서도 좋았다. 특히 추운 날 그 밥 앞에 앉으면 절로 꽁꽁 언 몸이 녹았다. 누구도 아닌 밥 한 그릇에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 아랫목에서 솜이불을 두른 것처럼 포근했다. 밥을 뜨고 나서 물을 붓고 두었다가 맨 마지막으로 먹는 누룽지의 고소함이 일품이었다. 회사와 이별한 지 십여 년이 지나간다. 아직도 처마에 기와를 올리고 은근히 한국적인 외모를 자랑했던 명동길 어느 골목 식당이 선하다.


강원도 영월 장릉 옆 보리밥집도 기억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생활에서 맞이한 여름휴가였다. 단짝 친구와 서울을 거쳐 강원도까지 여행을 떠났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그곳의 이야기가 언제부턴가 끌렸고 큰 마음을 먹고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시간이었고 점찍어뒀던 식당으로 향했다. 여름 더운 날이었지만 바깥에 마련된 평상에 자리를 잡고 보리밥 2인분을 시켰다. 큰 그릇에 보리밥이 나오고 온갖 나물들이 올려졌다. 파리가 날아다니고 식당은 어수선했다. 편히 식사하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망이 컸지만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기에 보리밥에 여러 나물을 넣고 열심히 비볐다. 한 숟가락 먹었는데 나물의 향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주변은 그때부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리밥이 특별하지 않다 여기던 20대의 내게 그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그 후로도 여러 곳에서 보리밥을 먹었지만 그처럼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 맛이 그려질 정도다.


지금처럼 겨울이 끝을 달려가는 시기였다. 땅은 아직 봄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됐지만 농부들의 마음은 바빠진다. 봄 방학 기간 동안 부모님을 돕기 위해 과수원으로 나갔다. 한 해 농사를 위한 준비작업이 쉼 없이 이어지는 시기다. 꽝꽝 언 땅을 삽으로 적당히 판 다음 비료와 퇴비를 넣었다. 귤나무를 기준으로 둥그런 원을 그리며 일을 해갔다. 이때도 제주의 바람은 세차게 불었고 장갑을 꼈지만 찬 기운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일을 하는 동안 손발이 잘 맞아야 하기에 딴생각할 겨를도 없다. 과수원 한 귀퉁이 모닥불에 가끔 손을 녹일 뿐이었다. 그러다 찾아온 점심시간, 네모난 스티로폼 박스에 스테인리스로 된 둥근 통에 밥을 담고 왔다. 밥은 아주 차지 않을 정도의 미지근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엄마는 돌 몇 개를 놓고 솥을 세울 아궁이를 만든 다음 작은 솥을 걸고 김치와 두부, 동태를 넣고 찌개를 끓였다. 따끈한 국물과 흰밥이 만나면 상황은 역전되었다. 추운 날씨에 몸이 쑤시고 고단함에 집으로 가버리고 싶은 어린아이의 심술이 사라졌다. 행복이 찾아왔다. 아침은 점심을 위해서 일했고, 오후는 따뜻한 저녁을 기다리며 보냈던 어린날이었다.


밥을 하면서 밥을 생각했다. 모든 게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밥이란 건 기다림과 기대의 시간이다. 아이들은 학교 급식 메뉴를 보고 아침부터 그날 하루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점친다. 맛있는 밥이 나오는 날은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행운이 찾아온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 기운이 빠지는 시간이다. 나 역시 누군가와 특별한 밥을 먹기로 약속돼 있으면 며칠 전부터 기분이 좋다. 밥이 주는 묘한 매력이고 힘이다. 밥을 함께 먹은 많은 이들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스쳐가는 인연이었지만 가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 시절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김치밥은 아이들에게 외면당하는 김치가 주인공이 되는 날이다. 우리 집 묵은지 통은 일찌감치 텅텅 비었다. 오늘 점심을 빛낸 준 김치는 위층 언니의 마음의 선물이다.

“진미야 너 묵은지 먹지, 방학이니까 애들 볶음밥도 해주고 이게 많이 필요할 거야.”

검정 비닐에 싼 김치통을 내밀며 언니가 건네는 말이 따뜻했다. 김치는 겨우내 찌개와 청국장은 물론 여러 요리에 소중히 잘 쓰였다. 아이들의 김치밥에도 서너 번 이상 올랐으니 언니의 마음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퍼져나간 셈이다. 김치향이 피어났던 그 밥을 아이들은 얼마나 기억할까. 나를 키워준 밥을 추억했다.

keyword
이전 08화나를 위한 밥 국수와 육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