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싸고 나면 허탈한 이유

# 18

by 오진미


김밥을 사랑한다. 언제나 밥은 밥이어야 한다는 나만의 고집에서 시작됐다. 면보다는 흰 쌀알이 들어가야 한 끼를 먹은 기분이다. 친구들과 분식집을 갔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항상 김밥 한 줄을 빼놓지 않았다. 자취생의 생존전략에 먹는 일에 욕심이 더해진 결과였다.


김밥은 간편하면서도 복잡한 음식이다. 밥 속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따로 준비하고 나면 김과 함께 돌돌 마는 순간 끝이 나지만 거기까지가 단순하지 않다. 재료를 씻고 썰고 볶는 과정이 고루 잘 이루어져야 맛있는 김밥을 완성할 수 있다.


아이들도 김밥은 언제나 환영이다. 양을 조절하지 않으면 무한정 먹을 만큼 무장해제시키는 음식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김밥 싸기 경력이 30년이 되어간다. 어느 날 김밥 10줄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를 시간을 재어보니 한 시간 하고도 10분이면 충분했다.


어제와 같은 음식은 거부한다. 나날이 새로워야 하는 점심이다. 김밥을 불러들였다. 시금치도 있고 유부와 햄, 계란을 넣기로 했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처럼 많은 게 좋을 것 같지만 적당한 재료만으로도 썩 괜찮은 김밥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에서 배웠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이웃이나 가게에서 여러 가지가 들어간 김밥을 먹을 때마다 ‘내 것이 최고야’라는 자신감이 겹겹이 쌓여갔다.


고슬고슬한 흰 밥은 김밥의 성패를 좌우하는 절대 요소다. 쌀을 씻어서 불리고 나머지 것들을 준비했다. 시금치와 햄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 우리 집표 김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부도 뜨거운 물에서 기름기를 뺀 다음 찬물에 한두 번을 헹궈 최대한 담백해지도록 했다. 시금치는 간장과 소금 , 참기름으로 간 했다. 유부 역시 간장과 매실, 물엿을 더한 다음 기름 없는 팬에서 잠시 볶아낸다. 단짠 한 맛으로 김밥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녀석이다. 햄 역시 수분을 빼기 위해 마른 팬에서 살짝 구웠고 지단도 마련해 두었다.


압력밥솥 딸랑이 소리가 들린다. 밥이 다 되어 간다는 신호다. 솥에서 한 김이 나가고 나서 큰 양푼에 밥을 담았다. 얼굴에 닿는 김이 포근하면서도 따듯하다. 식탁에 재료들을 올려놓고 실전에 돌입한다. 도마 위에 김을 올리고 밥을 3분의 2 정도까지 넓게 펴 놓고 재료들을 가지런히 두었다. 김이 잘 붙도록 생수를 끝부분에 발라준 다음 돌돌 말면 김밥 한 줄이 완성된다.


김밥 8줄을 만들었다. 칼날에 동네 방앗간에서 사 온 참기름을 살짝 바른다. 부드럽게 김밥이 잘 썰어지는 동시에 고소함이 더해진다. 언제나 꽁지는 김밥을 만든 이의 시식을 위한 것. 접시에 담기 전 하나를 들어 맛을 보았다. 오늘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무려 7줄을 비웠다. 누가 다 먹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건 정말 기우였다. 남편마저 쉬고 있어서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만드는 건 한참 걸린 것 같은데 먹는 건 순간이었다. 남편이 마지막 것을 집었다. 점심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이상하게도 허탈하다. 언제나 김밥을 만들고 나서 드는 생각이다.


집에서 하는 요리 역시 적정의 집중력을 요한다. 아이들이 배고프다는 소리에 손은 바빠진다. 먼저 머릿속으로 김밥에 무엇을 넣을 것인지를 정한 다음 실행으로 옮긴다. 햄 없는 김밥이 팥 없는 찐빵처럼 어딘지 부족해 보이지만 그럴 때도 밀고 나간다. 가게에 들러 다시 재료를 사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고 건강을 위해서 가공식품은 최소화한다는 논리를 위안 삼는다. 갓 지은 밥에 손이 데일까를 염려하기보다는 용감하게 덤빈다. 손가락 끝이 따가워 찌릿찌릿해도 상관없다. 엄마이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만들어 밥상에 올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김밥은 못나고 조금 시들해진 것이라도 까만 김에 돌돌 말리면 한 송이 꽃으로 예쁘게 피어난다. 그러니 재료가 어떠하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 모여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을 해내는 것처럼 말이다. 몇 줄의 김밥을 위해 직진해온 까닭에 막상 일을 끝내고 나면 기진맥진할 때도 종종 있다. 아침 일찍 여행을 떠나는 날, 도착해서 도시락을 여는 순간 김밥은 내가 애쓴 것보다 너무 소박해서 속상하기까지 하다.


“엄마가 아침부터 도시락 준비하느라 애썼네.”

남편이 한마디 거드는 순간 잠시 내 노고를 보상받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아쉽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정신없이 만드는 그때가 행복하다. 지난해 우연히 한 고등학교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맡게 됐다. 막상 하겠다고 답을 했지만 막막했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걱정이었다. 그래도 매일 학교를 찾았다. 계획표를 만들어 4주 정도를 입시생 마냥 매달리니 조금씩 길이 보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었다. 책이 나와 내 앞에 놓였을 때는 오히려 덤덤했다.


김밥을 마는 일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사각 도시락에 담긴 그것이 비록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리 우울해하지 말아야겠다. 그것을 위해 달려서 얻은 소중한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 끼를 위한 엄마의 수고로움 뒤에는 아이와 함께 하는 어제와 같지 않은 오늘이 있어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어른들의 말처럼 아이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 줄 것 같지만 어느새 자라 부모품을 떠난다. 그러니 지금을 충분히 느껴야 할 일이다. 친구처럼 다가온 봄 어느 날에도 김밥을 준비해야겠다. 그때는 즐겁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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