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감과 스파게티

# 4

by 오진미



황토항아리에 담긴 토마토를 꺼냈다. 마늘도 챙겼다. 빨간 토마토가 설레게 한다. 반짝반짝 빛난다. 베란다 가득 놀러 온 따스한 햇빛이 초록이들을 기분 좋게 한다. 하늘은 맑고 겨울의 찬 기운을 잠시 도망가게 한 그 빛이 오늘처럼 반가운 적이 없다. 사람 사이에서도 가끔 만나야 반갑고 소중하듯 날씨 또한 그러했다. 쨍한 하루에 어울리는 점심은 스파게티로 정했다. 우리 집 스타일로 만드는 내 맘대로 요리다. 면은 충분하고 소스가 준비되어 있어 특별히 신경 쓸 것도 없다.


“엄마 마지막에 치즈 알죠.”

언제부턴가 피자 치즈가 여러 음식에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다. 김치밥도 그러했고 라면이나 떡볶이까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재료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살짝 망설였다. 치즈를 뿌려주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그릇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선 큰 걸림돌이다. 평소보다 몇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설거지 때문에 귀찮았다. 그래서 가능한 치즈는 넣지 말았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다. 방학에는 모든 일에 너그러워진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지금과 같은 자유로운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마음이다. ‘방학이니까 괜찮아.’

우선 면을 삶는다. 언젠가 면 포장지 뒷면에 한국인에게 알맞은 면 삼는 시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대략 8~10분 정도가 충분하다. 난 보통 기분에 따라서 8~9분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면이 익어가는 동안 토마토를 씻고 대충 썰었다. 여기에 마늘을 편으로 썰어놓으면 재료 준비가 끝난다. 웍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부터 볶기 시작한다. 지글지글 올리브 향이 올라오면서 익어가면 썰어놓은 토마토를 놓고 둘이 함께 어울리도록 적당히 저어준다. 2~3분 정도가 지나면 소스를 충분히 부어준다. 다음은 우유가 등장할 차례다. 우유의 부드러움이 맛을 풍부하게 한다. 여기에 면수도 조금 넣었다. 찌개처럼 국물이 충분한 촉촉한 스파게티가 먹고 싶었던 이유다. 한가득 소스가 보글거리면 소금을 조금 넣는다.


집안에 토마토와 향신료 향이 강하게 흐른다. 잘 삶아진 면을 소스에 넣고 잘 섞이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치즈를 뿌리면 완성이다. 이때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얘들아 파스타 그릇 준비해줘.”

이상하게도 이 시간에는 꼭 마음속에 숨겨있던 심술이 살아난다. 기꺼이 엄마로서 밥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왠지 혼자만 동분 서주 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잠시 그러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점심때마다 놀러 나오는 어린 마음이다. 한편으론 함께 만드는 식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맞물린다. 아이들이 포크와 스푼을 챙기는 작은 움직임이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이 워낙 스파게티를 좋아하기에 그릇에 푸짐하게 담았다. 소스와 국물을 국자로 면에 잘 베이도록 한 번 더 뿌려주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남아 있는 줄 알았던 무 피클이 없다. 그냥 다른 샐러드라도 급하게 만들면 좋겠지만 오늘은 간단히 끝내고 싶다. 그릇을 보니 초록 무엇이 접시 위에 올려지면 예쁠 것 같아서 아끼던 로즈메리 잎을 살짝 따 왔다. 다음에는 바질 화분을 하나 키워봐야겠다. 이런 날 요긴하게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엄마 맛있다. 토마토를 넣어서 그런지 신선한 느낌이야.”

맛에 일가견이 있는 큰아이가 토마토를 넣은 걸 어찌 알았는지 한 줄 평한다. 어찌 됐든 알아주니 기분이 좋다. 난 무엇에 먹을까 하다 아는 언니가 준 갓김치를 꺼냈다. 갓의 강한 향이 시간 속에 잘 익었다. 스파게티와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식사시간은 언제나 후다닥 흐른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먹다 보면 몇 분이면 끝이다. 때로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달려온 것 같아 허탈해진다. 그만큼 내 음식이 맛있다는 증거라고 위로한다.


토마토는 나와 그리 가까운 채소가 아니었다.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부담스러운 그런 것이었다. 토마토에 대한 기억은 안타까움과 아쉬움도 함께한다. 어릴 적 빨갛게 익은 토마토는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어른들의 생각 역시 그러했다.

“토마토는 너무 익은 걸 먹으면 몸에 안 좋아. 적당히 익었을 때 먹어야지.”

어른이 돼서 상황은 정반대로 변했다. 토마토는 제대로 잘 익은 빨간 것이 영양학적으로 좋다는 사실을 알고 부 터다. 내게 어릴 적 토마토를 먹는 일은 두려움이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였는데 간식으로 토마토를 나눠주었다. 내 양손을 모은 것만큼이나 큰 것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먹기가 고통으로 여겨졌다. 크기도 그러했고 입안에 한입 아삭하고 물었을 때는 정말 맛없는 음식을 먹는 기분이다. 집으로 갖고 와서 엄마에게 전했더니 토마토를 썰고 설탕을 잔뜩 뿌려주었다. 달콤함에 의지해야 겨우 입안으로 직행했다.


우리 과수원 이웃도 토마토 농사를 지었다. 내가 열 살이 안 될 무렵이었으니 정말 까마득한 옛날이다. 초여름이었다. 과수원으로 가는 길에 밭에 따다 남은 빨갛게 익은 토마토가 장관이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장미꽃밭처럼 아름다웠다. 그때만 해도 너무 익은 토마토는 몸에 좋지 않다며 사람들이 외면했었다. 그렇게 밭에서 비를 맞고 내버려진 채로 생을 마감했던 토마토였다. 지금이면 누구나 달려들어 그것들을 한 소쿠리 따고 갈 터인데 말이다.

토마토는 슈퍼푸드라는 이름으로 사계절 사랑받는다. 몸에 이것만큼 좋은 게 많다는 정보가 넘쳐난다. 신뢰성이 검증된 연구 결과는 토마토에 자꾸 손이 가게 한다. 탱탱한 아기 볼을 연상시키는 빨간 토마토는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럽다. 고기나 어떤 채소와도 은근히 잘 어울린다. 토마토와 초록이만 있으면 멋진 샐러드가 완성된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함은 질리지 않는 맛이다. 수프와 소스, 밥까지 토마토는 변신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토마토의 우리말 이름은 ‘일년감’이다. 최근 드라마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익숙한 듯하면서도 신선하다. 감처럼 생긴 한해살이 식물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밭에서 나서 땡감이라고도 불렸다. 이름들을 입안에서 되뇔수록 정감이 있다. 토마토는 17세기부터 우리나라에서 관상용을 길러지다 식탁에 본격적으로 오른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다. 평범한 스파게티를 그럭저럭 괜찮은 요리로 만들어준 토마토를 생각해 보았다. 나를 위해서 일년감과 좋은 친구가 돼야 할 듯하다. 튼튼하지 못한 내 몸을 위해서라도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갈수록 의사 얼굴은 파랗게 변한다.”라는 서양 속담을 믿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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