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하루 중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 잡념 없이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해내는 건 밥할 때가 아닌가 싶다. 때로는 정말 하기 싫지만, 막상 앞치마를 두르는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고 손은 습관처럼 바삐 움직인다.
아침 6시를 전후에 몸은 알람이 없이도 깨어난다. 냉장고 문을 열고 가능한 반찬 목록을 확인하고 해야 할 일을 잠깐 고민한다. 그다음부터는 바로 실전이다.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비트와 사과, 당근, 바나나를 넣고 물을 조금 넣고 주스를 만들기 위해 믹서기를 요란하게 돌린다.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진 않았지만 30분 정도면 아침 준비가 끝난다. 먹을 게 별로 없다는 판단이 서는 날은 계란 프라이나 스크램블 에그가 후속 편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자투리 야채에 소금만으로 해결되는 야채볶음이 휘리릭 탄생한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귀를 쫑긋하면서 움직이니 다른 것들이 끼어들지 못한다.
이렇게 아침을 보내고 나면 다시 기다리고 있는 건 점심이다. 아이들의 방학, 낮 12시는 매일이지만 어제와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지루한 날들에서 이 시간만큼은 아이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사소한 음식이라도 특별한 것으로 변화를 주는 책임이 엄마에게 있는 것 같다. 요즘처럼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런 마음이다. 초등학생 막내는 매일 심심하다고 투덜댄다. 아기일 때도 그리 잘 놀아주는 엄마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적극적으로 아이의 마음에 뛰어들어 함께 뒹굴기는 쉽지 않다.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지만 항상 미안하다. 큰아이에게는 항상 마음의 빚이 있다. 내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아이를 힘들게 했고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기에 그러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점심은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매일 써 내려가는 편지다. 사소한 일에 무척이나 화를 냈던 어제를 돌아보는 날이며, 오늘 하루 그래도 괜찮은 날이 되기를 기원하는 엄마의 희망을 담았다. 그럼에도 다른 먹을거리를 떠올려 접시에 담아내는 일은 가끔 브레이크가 걸릴 때도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이때 떠오른 게 편의점이다. 집 근처에 두 개의 편의점이 있기에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그곳에서 한 끼를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다.
집밥을 고수하지만 가끔은 이곳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막상 도시락 두 개를 애들에게 내밀기는 어색했다. 먼저 의견을 물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얘들아 오늘 편의점 도시락 어때?”
“응 엄마 그것도 좋긴 한데. 좀 생각해볼게요.”
큰아이가 선뜻 답하지 않는다. 불현듯 육전이 스쳤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고 싶어 할 거라는 예상으로 던진 말이었다.
“육전? 그거 좋아요. 우리 그럼 비빔국수에 같이 먹을까요? 냉면에 같이 먹듯이.”
예상은 빗나갔다. 대충 지나고 싶었는데 먼저 말을 꺼냈으니 되돌릴 수 없다. 다시 앞치마를 질끈 동여맸다.
막내가 두 번째 심부름을 간다. 처음만큼 부담스럽지 않다. 반복이 좋은 이유를 확인한다. 아이가 소면을 사 오는 동안 집에 있는 돼지고기 등심을 꺼냈다. 소고기는 특별한 날에 그렇지 아니면 대부분은 돼지고기를 활용한다. 한우 가격이 언제나 그렇듯 만만치 않기에 부담스럽다. 그에 비해 돼지고기는 맛에서도 그리 떨어지지 않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고기를 두껍지 않게 썰고 후추와 소금으로 밑간을 해 둔다. 여기에 밀가루 옷과 계란물을 입혀 지져낸다. 중간 불에 고기를 올려놓고 뚜껑을 닫았다. 팬 안에서 적당한 열기로 은은하게 고기 속까지 잘 익는다.
이제 비빔국수를 준비해야 한다. 쌈 채소 중에서 치커리며 상추, 어린 쑥갓을 씻고 소쿠리에 담았다. 양파를 갈고 고추장과 매실, 물엿, 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붉은빛에 벌써 군침이 돈다. 마지막으로 끓는 물에 소면을 넣고 3분을 삶았다. 밑에 가라앉았던 면이 위로 둥실 떠 오르고 조금 기다리면 면이 충분히 익는다.
국수용 그릇을 꺼냈다. 깊이가 있는 그곳에 국수를 담고 채 썬 채소를 올린다. 여기에 양념장을 올려주고 참기름을 뿌렸다. 육전은 아이들이 먹기 쉽게 가위로 잘랐다. 편평하던 접시가 조금씩 산을 이루다 어느새 풍성해졌다. 겨울에 먹는 비빔국수는 오랜만이었다. 양념장이 뭔가 부족했을까? 내가 상상하던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부드러운 맛은 아니었다. 아쉬움이 커지는 찰나에 아이들은 맛있다며 국수 위에 전을 올려 부지런히 먹는다.
비빔국수와 육전, 참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국수만으로 심심해질 수 있는 맛을 계란과 어우러진 고기의 고소함과 담백함으로 맛을 끌어올려준다. 꼭 전이 아니어도 좋다. 국수에 수육 또한 환상의 콤비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지방지 기자로 있을 때다. 토요일이면 구내식당에선 물국수에 얇게 썬 돼지고기 수육이 나왔다. 따뜻한 멸치 육수 국물이 스며든 국수를 먹고 수육 한 점을 달짝지근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세상의 모두 내 것처럼 행복했다. 회사 생활이 긴장과 불편함으로 똘똘 뭉쳤던 시기에 나를 자유롭게 한 그날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도시락을 먹었다면 오늘 후회했을지도 몰라.”
아이들에게 내가 한 오늘의 일이 자랑스러웠는지 갑자기 말이 나왔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밥을 차릴 때가 가장 나다운 수행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밥이 잘 되도록 불을 조절하고 물을 맞추는 일에서부터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양념을 쓴다. 반복되는 몸에 밴 생활이지만 새롭다. 야채를 다듬어 흐르는 차가운 물에 씻는 순간, 양파를 썰고 마늘을 다질 때 나를 힘들게 하는 근심 덩어리에서 해방된다. 좋은 마음으로 만들어야 음식 맛도 좋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엄마의 지극함이 빛나는 순간이다.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밥을 차린다. 국수와 육전도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