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밥이 피었습니다

# 6

by 오진미


“엄마 오늘은 주먹밥 어때요? 어제 먹다 남은 돈가스 넣고.”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막 끝낸 시점이었다. 뭘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을 위한 밥상이니 원하는 걸 시원스럽게 말할 때가 편하다. 몇 시간 후의 일이니 그때 가서 만들면 되었다.

어제 해결하지 못했던 일을 해야 할 때다.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코로나로 도서관 오고 가는 일도 은근히 복잡하다. 그동안은 체온 확인을 위해 손목 터치 방식이었는데 새 기계가 들어왔다. 바로 선 자세로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정상 유무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기계가 세 번이나 오작동을 일으킨다. 일종의 알람같이 요란한 소리가 나오면서 바르지 않다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열이 날 일도 없는데 몇 번을 새로 해야 하니 기분이 별로다.

이게 복선이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서관 카드를 대출 기기에 놓고 책을 빌릴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대출 정지 메시지가 뜬다. 혹시 기계가 애러를 일으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해도 같은 결과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내일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제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서관에 왔다가 발길을 그냥 돌렸다. 반납 기한을 하루 넘긴 까닭에 대출정지가 되었다. 하루가 지난 뒤라 가능할 줄 알았는데 금요일에야 책을 빌릴 수 있다고 했다. 큰일도 아니지만 시간만 낭비한 듯한 느낌에 허탈하다.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또 내일을 기약해야 했다. 은행 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다리가 무겁다. 점심은 그냥 건너뛰었으면 싶다.


작은 아이가 요즘 방송 중인 윤스테이에 나오는 부각을 먹고 싶다고 며칠부터 난리다. 어제 부각은 사 왔고 이제 소스를 준비해야 한다. 화면으로는 그 맛을 알 수 없기에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먹다 남은 두부를 꺼내고 유자청과 집간장, 양조간장, 들기름을 넣고 블렌드로 휘리릭 돌렸다. 깊은 맛의 소스가 만들어졌다. 부각을 들고 충분히 찍어 입안에 넣었다. 바삭하는 소리와 함께 부드럽고 달콤 고소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소스가 부각의 우아함을 더해준다.

아이들에게 애피타이저까지 챙겨주는 기분 곡선이 올라간다. 이제부터 쌀을 씻고 밥을 해야 한다. 잡곡밥이 조금 남았지만 주먹밥에는 흰밥이 정석이다. 오롯이 하얀 밥에서 나오는 담백함이 다른 재료들과 어울릴 때 모자람이 없다. 압력밥솥이 가스 불에 달궈지며 밥이 되어가는 동안 당근과 양파, 돈가스와 햄 달래를 다졌다. 모든 야채는 가능한 작게 다져야 모양을 만들거나 먹을 때 좋지만 아기가 아니니 적당히 하면 괜찮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야채에 소금을 넣고 볶는다. 여기에 햄과 돈가스를 넣었다. 기름에 튀겨진 돈가스의 감칠맛이 다른 것들과 제법 잘 어울린다.


딸랑거리던 밥솥도 조용해졌다. 양푼에 밥을 담았다. 지난해 정읍의 어느 들판에서 자라 항아리에 머물던 쌀은 밥알이 살아있다. 한 숟가락 먹어보니 은은하게 달콤하다. 이제야 솥에서 나온지라 모락모락 김이 나오고 윤기 나는 밥은 언제 보아도 기분 좋게 한다. 밤새 하얗게 눈 내린 골목길, 아무도 가지 않은 그곳을 밟고 가는 설렘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고 어떤 반찬이라도 어울리는 조화로움이 가득 담긴 밥이었다.


잘 볶아진 야채와 밥을 잘 섞을 차례다. 밥에 소금을 조금 넣은 다음 비닐장갑을 끼고 주먹밥을 만든다. 적당한 양의 밥을 뭉친 다음 양손을 쓰며 공 굴리듯 예쁜 둥근 모양을 만들어 가면 된다. 아이들 체험학습이나 나들이할 때는 종종 만들었는데 그동안 뜸했다. 옛 추억을 그려보니 혼자 몸을 움직여도 귀찮지 않다. 이 주먹밥이란 녀석이 신기한 게 처음에는 언제 만들지 하는 부담이 올라오지만 금세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주먹밥이 하나둘 만들어지고 접시에 쌓여간다. 이른 봄 화원에 가면 만나는 알록달록 꽃들이 피었다. 주황, 하양, 적당히 붉은빛, 달래의 초록이 더해지니 귀여운 아기꽃들의 향연이다. 달래 특유의 향이 주먹밥 전체를 휘감는다. 이 작은 채소 하나로 먼저 봄기운을 느꼈으면 좋겠다.


일기예보처럼 맑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진다. 눈이 온다더니 비가 살짝 내리기 시작한다. 아침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지금까지는 오늘 계획한 일을 무리 없이 진행 중이다. 밥해주는 일도 점심을 마쳤으니 하루의 절반은 잘 지나갔다. 주먹밥에 메시지를 담아본다. 여러 재료가 흰 밥과 하모니를 만들어 내듯이 아이들도 어느 곳에서나 어우러지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커 갔으면 한다. 때론 김부각처럼 신선하게 다가가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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