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약 순대

#3

by 오진미



삼나무가 세차게 흔들리는 저녁이었다. 부엌문이 바람소리에 리듬을 맞춰 흔들린다. 검은색 가마솥에는 물 끓는 소리와 함께 아궁이에는 불이 활활 타오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무 방석에 마주 보고 앉아 큰 대야에 무엇을 열심히 손질한다. 하얀 쌀과 검붉은 돼지 선지에 마늘을 많이 다져 넣었고 돼지 내장들을 잘게 썰어 버무렸다. 깨끗이 손질한 내장에 준비된 속을 천천히 터지지 않게 정성스럽게 담는다. 검게 그을린 천정까지 이상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순대 만드는 날이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어릴 적 겨울 풍경을 끄집어냈다. 귤 농사가 마무리되는 1월은 한 해 농사를 위한 몸을 챙기는 일이 급선무였다. 몸도 약했을 뿐만 아니라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한 엄마의 정성과 수고로움이 절정을 달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섬의 겨울 칼바람 부는 추운 날 순대를 만들었다. 어린 마음에 여러 재료들이 섞여 내장을 타고 올록볼록 채워지는 과정이 신기하면서도 징그러웠다. 속을 꽉 채운 것들은 가마솥으로 직행했고 장작불 뜨거운 열기로 솥에서 익어 갔다. 매운 연기 탓에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익은 순대를 소쿠리에 잘 건져놓았다.

“엄마 이게 뭐야?”

“응 아버지 약이다.”

참 이상했다. 약이라고 하면 무엇을 달여서 먹거나 그래야 하는데 순대인 것을 아는데 약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만을 위한 음식으로 남겨두기 위한 엄마의 지혜였다. 한편으론 몸을 보하고 아프지 않기 위한 사전작업이니 약이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옛 우리 집에는 부엌과 이어진 찬방이 있었다. 제사 때 쓰는 그릇들과 살림살이를 모아놓은 곳으로 온돌이 놓여있지 않은 차가운 마룻바닥이었다. 지금 그려보면 참 아담했다. 세월을 머금은 검은색이 감도는 마루는 여름이면 냉장고처럼 시원했다. 어머니는 그곳 한편에 짚을 깐 소쿠리에 순대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추운 날씨 탓에 순대는 금세 온기가 사라졌고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지방이 곳곳에 머물러 군데군데가 하얗게 변했다. 어머니는 점심이나 저녁때 순대 몇 조각을 썰어 밥상에 올렸다. 집 간장에 쪽파와 고춧가루와 깨,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트려 만든 양념장과 함께였다. 아버지가 한번 먹어보라고 권한다. 만드는 과정을 봤던 터라 망설여졌지만 용기를 내어 젓가락을 들었다. 고기가 없지만 고기 느낌도 나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때부터 순대를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아이들과 나는 제주도 순대를 사랑한다. 아이들은 제주도 집을 오가며 절로 열혈팬이 되었고, 제주시 동문시장이나 서귀포 오일시장표 순대를 좋아한다. 집에서 순대를 만드는 일은 전래동화가 되었다. 섬에서 나는 모든 것을 만나며 생활상을 어렴풋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장은 언제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대는 아이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여기저기 오가는 사람이 많아 정신없는 그곳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따끈한 순대가 한 접시 썰어져 나오면 순간에 하얀 접시만 남을 정도다.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고 늦게라도 가는 날이면 순대를 만날 수 없다. 다음 방학을 기약해야 했기에 아이들은 툴툴대기 일쑤였다. 지난해 가을 무렵 언니에게 부탁을 해서 순대를 택배로 받았다. 귀하게 여기는 만큼 아껴서 먹었다. 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냉동실을 살피다 순대 한 팩을 발견했다. 잊고 있던 친구의 선물처럼 반가웠다. 아이들도 순대는 언제나 대환영이다.

“제주도 찰 순대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터라 점심 메뉴로 하기로 했다.


제주도 전통 순대는 선지와 찹쌀만을 넣어 단순하다. 그럼에도 쌀의 찰기와 선지의 궁합은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다. 찹쌀은 검붉은 선지 사이로 하얀 점들이 콕콕 박혀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 양념을 하지 않았기에 부담스럽지 않지만 감칠맛 있다.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한다. 그래서 질리지 않는다. 순대 특유의 냄새가 힘들게 하지만 한 입 먹는 순간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단지 맛있다는 생각만 남을 뿐이다.


접시에 놓인 순대는 고향의 정서를 가득 담았다. 투박한 모습이지만 시간을 들인 음식의 은은함이 입안에 오래 남는다. 강력한 화력과 편리함을 무기로 내세워 속전속결로 끝나는 음식이 넘쳐나지만 순대는 아직도 시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 내 어릴 적 엄마의 손을 거친 그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만족이다. 시골의 풍경과 어려운 시기에 음식 재료 하나라도 알뜰히 챙겼던 옛사람들의 절약과 부지런함을 미뤄 짐작해 본다. 가끔 티브이를 통해서 실향민들이 고향 음식을 통해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위로를 받는 장면을 종종 봤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잘 몰랐었지만 순대를 마주할 때는 알 것도 같다. 애잔함이나 그리움까지는 아니지만 따듯해지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일요일 온 가족이 둘러앉은 점심은 제주도 순대와 어묵 칼국수로 간단히 챙겼다. 며칠 전 만들어놓은 육수에 어묵을 넣고 끓이다 봄동 배추와 엄마의 손에서 큰 늙은 호박을 몇 조각 썰어 넣었다. 가을을 데려다 놓은 듯한 주황색 호박이 음식의 맛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어묵과 칼국수 순대를 번갈아가며 호호 불며 먹었다. 얼음처럼 단단한 순대를 이른 아침부터 꺼내며 순대를 만들던 엄마의 모습이 불현듯 스쳤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리움과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대하던 엄마의 마음이 다가와 가슴이 먹먹하다. 아름다웠던 겨울날 풍경이 되살아나며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그때를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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