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3B 정책 추진과 삼국 협상의 출현 독일은 비잔티움(이스탄불)과 바그다드 간의 철도 부설권을 따내고, 이를 베를린과 잇는 3B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는 영국의 3C 정책과 충돌하였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투르크 및 지중해로의 진출 정책과도 부딪치는 것이었다.
제정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2월 노동자와 병사의 혁명과, 사회주의 정당이 중심이 된 의회에 의해 붕괴되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그러나 케렌스키를 수반으로 하여 새로 구성된 임시 정부는 전쟁을 계속하는 한편, 토지와 공장을 요구하는 농민과 노동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부의 반란도 일어나 임시 정부는 더욱 어려움에 빠졌다. 이를 계기로 1917년 10월 레닌 등이 지휘하는 볼셰비키는 무력으로 임시 정부를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각지에 노동자·병사와 농민의 정권인 소비에트를 조직함으로써 소비에트 연합(소련)이 성립하였다.
소련은 독일과 강화 조약을 맺는 한편, 제정 러시아 출신의 반혁명군의 저항과 혁명이 확대되는 것을 꺼려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간섭을 막아내면서 정권의 안정을 이루어 갔다. 그리고 농업과 공업의 국유화 등 사회주의적 개혁을 추진하였다.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러시아 혁명은 세계사를 뒤바꾸어 놓았다.
(가)...... 1910년 이후 몇 년 동안 북미와 서유럽에서는 더욱 크고 격렬한 파업들이 새롭게 분출했다. 미국에서는 매사추세츠의 그 유명한 로렌스 파업이 일어나 열몇 개 나라 출신의 여성 노동자들 2만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 영국에서는 철도, 항만, 광산에서 시작된 대규모 파업이 다른 업종들로 확산되고 비숙련・미조직 노동자들로 참가한 '거대 한 동요'가 발생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반 제국주의 시위, 5만 명의 금속 노동자가 참여 한 토리노 파업, 그리고 군인 10만 명이 투입됨으로써 겨우 진압된 이탈리아 북부 전역의 투쟁 물결이 있었고, 그 뒤로 또 한 번 노동자와 경찰 사이에 유혈 충돌을 빚은 앙 코나에서의 '적색 주간'이 있었다...... 제국주의가 식민지에서 피비린내 나는 모험을 벌임으로써 체제의 중심부를 안정시킬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변 화 끝에 기다리고 있을 미래를 누구도 보지 못한 채 유럽은 역사상 전대미문의 유혈 사태에 빠져 들었다.
(나)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람들의 노예화를 뜻할 뿐 아니라 식민 열강들 사이의 전쟁을 뜻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태평양을 향해 세력권을 확장하던 러시아가, 조선을 통해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일본과 중국 북부에서 충동한 1904년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모든 당사국이 상대방에게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 나라마다 도시 중간 계급의 일부는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근대' 국민국가를 세우고 팽창시키려 했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거의 어디서나 여러 방언과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인종 집단이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순수한 인종으로 구성된' 국민국가를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필요한 기준에 맞지 않는 민간인들을 추방하고 심지어 학살하는 것이었다...... 이런 압력 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는 대부분의 동유럽 지역과 과거 오스만 제국에 속했던 지역들에도 존재했다. 말하자면 발칸 지역 전체가 거대한 화약고였다.
그 폭발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1914년 7월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는 보스니아 주의 수도 사라예보를 공식 방문했을 때 드러났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오스트리아인들을 몰아내고 보스니아를 이웃 세르비아와 통합하는 것을 지지하는 어떤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다) 혁명과 마찬가지로 전쟁도 매우 사소한 사건들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을 잘못된 판단과 오해의 연쇄 작용에서 비롯한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사소한 사건들은 커다란 사회 세력이나 정치 세력 사이의 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의미심장한 사건이 된다. 점화플러그는 가장 값싼 자동차 부품들 중 하나이며, 혼자서는 어떤 것도 작동시킬 수 없다. 그러나 점화플러그는 엔진의 석유 증기의 폭발력에 불을 붙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금 인상 자체는 별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있지만 국가나 거대한 사회 세력들이 충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서 등장한 제국주의 경쟁 열강들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경제적 경쟁이 영토 확장 경쟁으로 변했으며, 그 결말은 군사력에 좌우됐다. 사라예보에서 암살 사건이 일어나 충돌의 연쇄 작용이 시작된 이상 어느 국가도 물러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떤 국가도 전 세계에서 자기 나라의 힘이 약해지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믿음을 고취했던 제국주의는 이제 유럽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으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