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학생, 학생-학생, 학생-> 학생, 교사-학생 그리고 학생-> 교사도 늘 교실 안에서는 성립한다.
배움의 공동체를 다시 생각해본다
수년 전, 아니 벌써 10년 단위로 셀 수 있는 오래 전인 것 같다.
경기도 교육청을 중심으로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가 공교육의 화두가 되었던 적이 있다.
여전히 그 중요성의 맥락은 핵심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입기에 열심히 그것을 학습하고 수업에 적용하면서
경기도 교육청 교사들을 대상으로 사례 발표를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한국 교원대의 박사과정에 있는 선생님의 논문 수업 사례로 제공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때 가장 안타까왔던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 꼽는 확산.
당연히 교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처럼 시도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문화가 아니 형식으로 이해이다.
배움의 공동체는 수업의 방식이 아니라 수업의 문화이다.
수업의 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제시한 몇 가지 핵심 사례는
ㄷ자로 책상 배치, 배움 주고받기, 교사의 교수 방법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 들여다 보기이다.
이것으로 인해 경기도 교육청의 교실 책상 배치는 ㄷ자로 정형화되었고
강의 중심의 교수 학습 방식은 잘못된 것으로 인식되었고
수업 평가에서는 충분한 근거 없이 학생들이 사소한 몸짓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사례 발표나 강의에서 늘 배움의 공동체는 수업의 형식이 아니라 문화라고 강조했다.
아주 쉽다
서로 배움을 주고받는 수업, 그것에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구분 없이, 그리고 가르쳐야 하는 사람과 배워야 하는 사람의 구분 없이 '서로 배움을 나누고 주고받는 문화'가 이루어지는 학교이다.
그런데 배움의 공동체는 형식만 남겼다. (코로나 이후에는 그 형식마저도 무너졌다)
1. 책상은 ㄷ자로
2. 강의 위주의 수업은 안됨
3. 학생들에게 배움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말하기
- 물론 이건 좋으나 배움이 일어난 과정을 말해야 하는 수업 연구회가 중심이다 보니 이전에도 말한 것처럼 근거 없는 사소한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아주 힘든 수업 연구회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교육과정이나 수업 내용보다는 아이들의 몸짓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교사가 배움의 공동체를 잘 이해하는 교사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