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우주는 끝이 없다는데, 끝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개미는 왜 개미인가?
사춘기 시절 나를 괴롭히던 실존적, 존재론적 질문들. 내 안에 이런 질문세례가 쏟아질 때면 세상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낯설었다. 이런 게 궁금한 나는 정녕 누구란 말인가?! 고독했고, 불안했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이 문제를 친구에게 터 놓았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채로 말했다. 나는 평소와 달리 진지했고, 나답지 않게 횡설수설했다. 친구의 어색한 맞장구를 들으며 아, 이 분위기 어떻게 수습하지? 하고 걱정했다. 내 착한 친구는 속으로 내 걱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얘, 드디어 미친 거 아냐? 오똑해... 그렇지만 착하기만 한 게 아니라 똑똑하기까지 했던 내 친구는 화제를 전환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떡꼬치 먹을래?"
떡꼬치를 먹으며, 이런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는 이제 다신 꺼내지 말자고 다짐했다. 어차피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랐다. 내게는 이런 질문, 이런 기분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아쉽다. 그때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마르틴 하이데거를 알았더라면, 이 질문들을 잘 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나는 철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실제로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복수 전공하고 싶어서 철학과 전공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한 학기 만에 포기했다. 수업은 재미있었는데, 시험에 질렸다. 단출하게 한 문장으로 적혀 있는 문제 아래 커다란 흰 면. 그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는 걸로 끝내라던 오빠의 조언이 떠올랐다.
서른 중반이 된 지금, 나는 마침내 내 언어를 갖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식한다. 이제는 필요 이상으로 진지해지는 내가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다. 아무리 떠들어대도 정복할 수 없는 심오한 주제들, 답이 없다는 것이 좌절스러우면서도 같은 이유로 질리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을 이제 넌지시, 툭, 자연스럽게 꺼내놓을 수 있다. 거의 누구에게든.
나이 드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처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