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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Sep 14. 2020

일흔 살 아기의자와 백 살 반닫이

사물로 이어지는 삶

   큰 아이가 만 한 살이 되었을 때, 아이를 데리고 프랑스에 있는 시댁에 방문했다. 1년에 한 번은 꼭 가는 시댁이지만, 아이와 함께 가기는 처음이었다. 시부모님은 아이가 가지고 놀 장난감이며 기타 육아용품들을 부족함 없이 준비해 두셨다. 손자를 향한 그리움과 섬세한 마음 씀씀이가 집안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대부분의 물건은 놀랍게도 남편과 남편의 형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없지 않았으나 관리와 보관이 잘 된 덕에 깨끗했다. 사용하는 데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가족의 역사가 담긴 물건들이라 새 물건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우리가 새로 산 제품들도 잘만 사용하면 우리 가족의 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였을 거다. 사물을 대하는 내 태도가 조금 바뀌었던 것이.


   아이가 물려받은 많은 물건들 중 원목으로 만들어진 아기 의자에 특별히 더 마음이 갔다. 앤티크 한 디자인의 그 하이체어(high chair)는 고급스러우면서도 깜찍한 생김새로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비록 하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어서 낡아 보이긴 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멋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몇 번 사용해 보니 구석구석 청결하게 닦여 있는 데다가, 삐걱대는 소리 하나 없이 튼튼해서 아이를 앉혀도 안심이 되었다.

일흔 살이 넘은 하이체어에 앉아있는 돌 무렵의 아들

   시아버지께 물었다. 이것도 아버님의 두 아들이 쓰던 거냐고. 나는 곧 놀라운 답변을 들었다.

“응, 그랬지.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엔 내가 앉았던 적도 있단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

나는 정말 놀랐다. 그러니까 이 의자는 약 70년 전, 시아버지가 아기였을 때 사용되기 시작하여 삼대째 그 쓸모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오래된 물건의 뿌리를 안다는 것은 내겐 매우 드문 일이라, 감격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사진으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했다. 아기 때 사용하던 의자에 손자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어떤 것일지 상상하면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물건에는 어쩐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그려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특유의 분위기와 묵직함이 좋아서, 시간이 날 때면 답십리에 고가구를 구경하러 가곤 한다. 거기서 하나 둘 데려온 가구나 소품들은 우리 집 현대식 가구들 사이사이 조용히 자리하며 공간을 한층 더 멋스럽게 만들어 준다. 보기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튼튼하고 쓰임새도 좋다. 백 년에 가까운(혹은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려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내 앞에 놓여있다는 것 자체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솜씨 좋은 목수의 손으로 완성되었을 고가구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요즘 가구들과는 차원이 다른 정교함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유일하기까지 하다.   


우리집 반닫이

   집에 있는 고가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구는 거실에 놓여 있는 반닫이다. 앞면의 윗부분을 바깥쪽으로 젖혀 여는 식의 문을 가진 가구인데, 과거에는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는 국민 가구였다고 한다. 우리 집 반닫이는 짙은 색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나무 색이 워낙 짙어서 검은색 장석(목가구나 건조물에 장식·개폐용으로 부착하는 금속)과의 색 대비가 도드라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기보다는 차분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소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썼을 법하다.


   문을 열어젖히면 나무 향이 솔솔 풍겨 나온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원재료의 냄새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인상적이다. 안쪽 면에는 한문이 가득 적힌 한지가 발라져 있다. 무엇으로 어떻게 붙여야 말끔한 상태가 지금껏 유지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떼어진 부분 없이, 곰팡이 핀 곳 없이. 한 번쯤, 새 종이를 덧 붙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부는 보기보다 훨씬 깊어서 꽤 많은 물건이 들어간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아래쪽에 쌓아 보관하고, 비교적 꺼내는 빈도가 잦은 물건들은 위쪽에 넣어 두고 사용 중이다. 아름다운 외관에 내실까지 충실한, 아주 유용한 수납가구. 게다가 반닫이 위에는 가족사진이나 아이들 그림, 화병 등을 올려 둘 수도 있어서 장식장 역할도 겸한다. 그때그때 소품을 바꿔가며 집안 분위기에 변화를 주기 좋다.


   이 전 주인들은 이 반닫이 안에 무엇을 넣어 두었을까? 위에는 이불을 개켜 올려 두었을까, 아니면 근사한 도자기를 진열했을까?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답 없는 질문을 던져보며 재미있는 상상에 빠져본다. 


   지금 내 앞에 놓인 물건이 그냥 단순한 물건 자체만은 아니라는 감각. 이 감각을 가질 때면 나는 그 무엇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자면 세상과 내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어떤 연결선상에 서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모르는 누군가와 가까워진 기분도 든다. 나는 내가 실재한다는 강렬한 느낌이 드는 이런 순간이 좋다. 언젠가 누군가도, 이런 순간을 즐기면 좋겠다. 지금 내게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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