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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Apr 20. 2022

안 먹고 살 수도 없고

얼마 전 온라인 마트에서 구매한 떡볶이 떡을 환불받았다. 떡의 반이 초록색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SNS에 아무 설명 없이 올린 초록색 떡 사진을 보고 몇몇 지인이 쑥떡이냐고 물었다. 나도 처음에 떡 상태를 발견했을 때 잠시 동안 이거 쑥떡 아닌가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 지경까지 된, 개봉하지도 않은 봉지 안에 든 떡은 처음 봤으니까. 어떤 이는 매생이 아니냐고 했다. 나는 그만 소리 내어 풉 웃고 말았다. 정말 컬러가 딱 매생이라.


온라인 마트뿐 아니라 시장이나 마트에 나가 직접 보고 사온 채소, 과일도 집에서 펼쳐놓고 보면 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거의 모든 재화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이 뜨거운 섬나라에서는 더 자주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이게 유통과정에서 시작된 건지, 매대에서 변질된 건지, 아니면 혹시 마트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길에 물러 버린 건지 알 수 없다. 과일의 상한 부분을 크게 도려내 쓰레기봉투에 버릴 때면 내 마음 한쪽도 상해버리고 만다. 에잇, 이 더위에 차도 없이 낑낑대고 들고 왔는데. 물가도 비싼 마당에.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열매가 시들고 상하는 건 자연의 이치인 걸.


덥고 습한 환경에서는 식품이 상하기 쉽다.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는 일 년 내내 더운 나라라, 나 같은 가정주부를 포함해 식품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재료를 신선하게 관리하는 게 큰 숙제다. 자칫 방심하면 금방 개미 등 벌레가 꼬이기도 해서 식용유를 제외한 거의 모든 조미료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등 식품이 상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쓴다.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던 <페스트> 속 인물 타루의 말처럼, 식품이 썩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에게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라면 과일의 흠 없음, 싱싱함, 신선함 등은 관리의 소산이다. 아니, 관리의 소산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별 관리 없이도 신선도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식품들이 있다. 수개월 전 떨어뜨렸던 것으로 짐작되는 소보로 빵을 승용차 보조석 아래에서 발견했는데, 그대로 빵집 매대에 다시 올려놔도 될 정도로 너무나 깨끗한 상태 그대로라서 기함했다는, 학부 때 식품 영양학과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빵 속에 대체 무엇을 넣었길래 수개월간 썩지 않을 수 있었던 걸까? 우린 대체 무얼 먹고살고 있는 걸까?


부패와 발효는 모두 미생물이 하는 일이지만, 그 결과물이 우리 몸에 쓰면 부패 달면 발효라고 부르는 차이가 있다. 정상적인 대사가 불가능한 동식물에게 부패나 발효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즉 미생물이 분해할 수 있는 물질이 그 안에 없다면, 그것은 인공물을 의미한다. 요즘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식품들은 인공물인 듯 인공물 아닌 인공물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논 밭에서 뿌려지는 농약은 곤충인지 해충인지를 잡고, 가공 과정에서 첨가되는 온갖 화학첨가물은 미생물의 활성을 막거나 성장을 억제하거나 아니면 미생물 그 자체를 죽인다. 살아 움직이고 활동하는 생물을 죽인다는 화학물이 과연 사람에게는 안전할까? 우리가 빵 한입을 베어 먹을 때 영양소와 첨가물 중 무얼 더 많이 섭취하고 있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다고 나 같은 일반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도시에 살며 오염되지 않은 식재료를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마트에 나온 대부분의 식품은 이미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며, 무농약 딱지가 붙은 것은 가격이 두배가 넘는다. 그럼 우린 무얼 먹고살아야 하나? 갑자기 피곤해진다. 그러고 보니 타루는 이런 말도 했다.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보다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이 더 피곤하다고. 엄마의 텃밭에서 뜯은 상추를 씻다 꼬물거리는 생명체를 발견하면 끼악!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나란 인간은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농약 친 상추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적어도 그 상추 안에 서프라이즈는 없을 거라는 안심까지 하면서. 선택의 여지가 있어도 잘못된 선택을 할게 뻔한, 덜 피곤하게 살고 싶은 내 솔직한 현실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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