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답답해서 적어보는 아주아주 옛날에 떠났던 여행기
7월이면 시드니는 겨울이다. 한국만큼 매서운 추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따뜻한 곳으로 잠시 피해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2007년 7월, 호주에 살던 나는 여름 철새처럼 시드니에서 피지로 날아갔다.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세명의 친구들과 함께.
섬에서 섬으로 옮겨 다니는 신선한 여행이었다. 이동 방법이 재미있었는데, 페리를 타고 가다 방문하길 원하는 섬 근처에 다다르면 그 섬에서 나온 작은 통통배로 갈아타고 들어가는 식이었다.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섬을 지키는 그들만의 지혜가 아니었나 싶다. 섬마다 굳이 선착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고 큰 배가 섬 가까이 드나들 일이 없으니 해변 경관과 바다 생물들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각 섬에는 작은 마을과 함께 마을에서 운영하는 소박한 리조트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천편일률적인 리조트, 그러니까 거대한 건물에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가진 리조트와는 전혀 달랐다. 그들의 방식으로 지은, 그곳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 그런 리조트였다. 수영장 같은 시설은 없었다. 사방이 해변인데 굳이 왜? 나는 진짜 로컬 냄새가 나는 자연스러운 그곳이 마음에 쏙 들었다. 작지만 아늑한 숙소는 현지인들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여행자 숙소와 거주민의 집 구별이 어려웠다. 실제로 섬은 여행자 구역과 거주민 구역의 구분 없이 전체가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이 조화롭고 아름다운 운영방식은 여행객이 완전히 환영받는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모든 여행자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공동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섬마다 조금씩 그 수는 달랐지만 대체로 열댓 명 되는 여행자가 함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숙소 형태에 따라 한 공간에서 자는 일도 많았다. 먹고, 자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던 그곳에서의 시간은 여행자들과의 교류가 없었다면 자칫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둑어둑한 식당에 모여 앉아 듣던 멜라네시안들의 합창과, 함께 웃고 마시고 떠들던 순간들... 그때의 우리는 누구나 살짝 혹은 과하게 취해있었고, 피부는 어둡거나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젊음과 호기심과 자유와 낭만이 가득했던 그때의 우리가 그리워진다.
어떤 섬은 걸어서 한 바퀴 도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작았다. 그렇게 바닷가를 산책하다 적당한 해변을 찾으면 바닷속으로 스르르 스며들어 갔다. 풍덩 아니고 스르륵. 바다를 집으로 삼는 수많은 생명들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스르륵. 바닷물에 얼굴을 박으면 신비한 세계가 펼쳐졌다. 이름 모를 수많은 물고기들과 알록달록 산호들... 약간의 광장 공포증을 가진 나는 그 장면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했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의 공포였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보고 밟는 세계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무지로부터 오는 공포였는지도. 부디 지금도 맑고 환상적인 그 생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기를 바란다. 혹여나 내가 발랐던 선크림이 그들을 아프게 하진 않았을지. 나를 깨끗하게 하겠다고 흘려보낸 물이 그들을 괴롭게 하진 않았을지. 이제와, 이렇게 늦게서야 염려가 된다.
섬에는 전기와 수도 설비가 부족했다. 하지만 졸졸 흐르는 물로 하는 샤워도, 해가 지면 별 수 없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생활도 쉽게 익숙해졌다. 섬사람들의 느긋한 태도가 전염된 덕이었을까? 그땐 태도뿐 아니라 그들의 푸근한 얼굴까지 닮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을 마주하자면 나는 한없이 겸손해지곤 했으니까. 아이들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바닷가 모래 위에 앉아 아이들이 가져다준 조개껍데기나 돌, 나뭇잎 따위의 자연물을 가지고 만들었던 작품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그때의 평화와 즐거움이 남아 있을까? 지금쯤이면 푸근한 얼굴을 한 느긋한 어른이 되어 있을 그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