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마을에세이 수업에서 인용한 사진 문구다. 기록되지 않는 개개인의 삶이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진다. ‘나’ 없는 마을은 허상이고 ‘나’만 있는 마을은 마을일 수 없다. 봄이 되면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가 사셨다는 충남 태안 어은1리 앞 쌍섬이 마을일 수 없듯 말이다. 어은1리 이장님의 글에 따르면 그 할아버지도 겨울이 되면 마을로 돌아오셨다.
이번 수업은 ‘나’에서 출발해 ‘마을’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흔히 읽는 ‘마을이야기’에는 ‘내’가 없다. 전문적인 작가가 제삼자 입장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이야기를 추려낸다. 그런 글은 흔하다. 마을에세이 수업을 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진짜 마을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결국 마을은 생(生)과 생(生)이 지속적으로 만나는 장소다. 수업을 들은 태안 주민들은 글에 자신의 살아있는 삶을 담았다. 그 삶과 삶이 엮일 때 진짜 마을이야기가 탄생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삶을 주제로 처음 글을 쓰는 주민들이 많았다.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 자신의 아픈 역사까지 드러냈다. 여러 가지 글쓰기 방법을 가르쳐 드리기는 했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진정성을 넘어설 묘법은 없다.
5주간 강의를 들으며 주민들이 쓴 글이 책으로 묶였다. 구상하기, 첫 문단 쓰기, 묘사·대화체·인용 방법, 퇴고, 제목달기까지 강의하고 피드백을 할 때마다 주민들의 글은 매주 달라졌다. 강의 때 설명드렸던 내용을 얼마나 꼼꼼히 듣고 글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는지 이 책을 교열 교정하면서 제대로 알았다.
그렇게 배운 글쓰기로 태안의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났다. 태안 특유의 갯벌과 바다를 낀 마을의 전형이 복원됐다. 새악시금, 수억말, 감길, 갬밭 등 태안 지역 고유의 단어가 글에서 되살아났다. 짭짤한 갯냄새를 머금은 단어를 나는 주민들의 글에서 처음 접했다. 글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태안 주민들의 추억 속에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추억도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마을 사업을 하며 겪은 어려운 일, 갈등, 고민도 가감 없이 담겼다. 그래도 태안 마을 주민들은 글 말미에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몇십 년 살아온 내 고향이었고, 제2의 인생을 위해 찾은 터전이다. 태안에서 태어난 토박이든, 도시에서 태어나 태안으로 온 귀농귀촌인이든, 멀리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민이든 태안살이가 더욱 행복해지기를 기원했다.
강의를 하는 동안, 책에 실을 원고를 고치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주민들도 글 쓰는 동안 고통스러웠을지 모르지만, 마을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오롯이 들여다본 시간만큼은 행복했으리라. 농사일, 바다일, 마을일, 펜션일……. 그 생업 속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이제 주민들도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되셨다. 모두 수고하셨다. 부디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건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