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6천 종 식물이 빚어낸 세계의 숲
서해안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은빛 파도처럼 일렁이는 팜파스그라스 군락은 보는 이의 발걸음을 단숨에 멈추게 만든다.
그러나 태안 천리포수목원이 주는 감동은 단순한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이곳은 고(故) 민병갈 박사가 평생을 바쳐 일궈낸,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식물 도서관이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증명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수목원으로, 현재 약 1만6천 종에 달하는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팜파스그라스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희귀 식물들이 모여 있어 ‘세계의 숲’이라 불린다. 2000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국제적 권위를 입증했다.
이 모든 출발점은 1960년대 황무지를 매입해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기 시작한 민병갈 박사의 신념이었다.
그는 전 재산과 인생을 바쳐 숲을 가꾸며, “나무는 내 죽음 이후에도 자라날 것”이라 말하곤 했다. 그의 정신은 지금도 밀러가든에 고스란히 남아, 방문객이 걷는 길마다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밀러가든 산책 코스를 따라가면 연못, 전통 기와집, 서해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가 차례로 펼쳐진다. 단순히 꽃과 나무를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식물 다양성 보전과 교육의 장으로서의 가치가 빛나는 순간이다.
천리포수목원은 연중무휴로 개방되며, 성인 기준 12,000원의 입장료로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무료 주차가 제공되어 접근성도 편리하다.
늦여름과 초가을의 경계, 은빛 팜파스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찾는다면, 당신은 이곳에서 풍경 이상의 이야기를 품은 숲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