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도 없는 길, 고요를 허락받은 곳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는 알림과 끊임없는 연결 속에서, 온전히 단절을 꿈꾸는 순간이 있다. 지도 앱에 목적지를 찍어도 ‘경로 없음’이라 뜨는 곳, 자동차의 소음 대신 발걸음과 계곡 물소리만이 배경음이 되는 곳.
강원 화천군 파로호 깊숙이 자리한 비수구미 마을은 그런 갈망에 응답하는 ‘의도된 불편함’을 품은 곳이다. 접근의 어려움은 결점이 아니라,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고요와 평화를 얻기 위한 입장권에 가깝다.
비수구미의 운명은 1944년 화천댐 건설로 시작됐다. 댐이 계곡을 가두면서 길은 물에 잠겼고, 마을은 사방이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육지 속 섬’이 되었다.
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며 역사가 이어졌지만, 지금은 단 서너 가구만 남아 자연의 시간에 의지한 채 살아간다. 이 고립의 세월은 오늘날 우리가 찾는 비수구미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빚어냈다.
마을로 가는 길은 두 가지뿐이다. 첫 번째는 해오름자연휴게소 인근에서 시작하는 약 6.5km 생태 트레킹 코스다. 성인 기준 2~3시간이 걸리며 대부분 완만한 내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속도가 아닌 깊이를 즐기며, 야생화와 새소리, 바람과 계곡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여정이다. 두 번째는 파로호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약 10분간의 배편이다. 주민이 운영하는 모터보트를 타고 호수를 가로지르면, 사방을 병풍처럼 두른 산세와 광활한 호수 풍경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다만 정기 운항이 아니므로 민박을 통해 반드시 사전 예약해야 하며, 겨울 결빙기와 봄 해빙기에는 운항이 중단된다.
하지만 비수구미는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때 ‘자연휴식년제’가 시행될 만큼 생태계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이기에, 방문 전 반드시 화천군청이나 마을 민박을 통해 출입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숙박, 식사, 배편 모두 사전 예약이 필수이며, 쓰레기 하나도 남기지 않는 책임감 있는 태도가 요구된다.
비수구미는 정복하는 장소가 아니라, 잠시 스며드는 곳이다.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얻는 고요와 평화는 다른 어떤 여행지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값진 선물이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이 성역에서, 당신은 오직 침묵과 바람, 그리고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만의 깊은 사색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