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열린 충주호 비경
가을바람이 산등성이를 스치고 지나갈 무렵, 숨겨진 비경에 대한 갈증이 깊어질 때쯤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약 10년의 긴 기다림 끝에 충주 악어봉이 마침내 다시 열렸다. 과거 일부 등산객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알려졌던 위험한 비공식 등산로는 이제 역사가 되었고, 그 자리에 자연과 사람이 함께 숨 쉬는 새로운 길이 놓였다.
이 길의 개방은 단순한 산행 코스의 복원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10년 동안 걸어온 성찰의 결과다.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월악산국립공원 속에 자리한 악어봉 탐방로는 본래 국립공원이 지정한 정식 코스가 아니었다. 정비되지 않은 급경사 흙길은 사고 위험이 컸고, 무분별한 입산으로 인한 생태 훼손도 심각했다.
결국 국립공원공단은 탐방로를 전면 통제했고, 악어봉은 오랫동안 전설처럼 입에만 오르내리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2024년 9월, 공단은 오랜 준비 끝에 완전히 새롭게 조성된 탐방로를 개방하며 악어봉을 다시 세상 속으로 불러냈다.
“자연을 지키면서 모두가 안전하게 비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 아래 만들어진 이 길은, 총 길이 1.1km로 짧지만 단단한 철학이 깃든 길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달라진 풍경이 반긴다. 예전처럼 도로를 무단횡단하거나 미끄러운 흙길을 오를 필요가 없다.
주차장에서 보행 육교를 건너 탐방로 초입에 서면, 잘 정비된 목재 데크 계단이 산중턱까지 이어진다. 전체 1.1km 중 0.9km가 데크로 만들어져 초보자나 가족 단위 방문객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오르막의 경사가 여전히 만만치는 않지만, 미끄러질 걱정 없이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감이 등산의 피로를 잊게 만든다. 왕복 약 1시간 40분, 가뿐한 도전과 달콤한 성취가 공존하는 코스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펼쳐지는 풍경은 단 한 번의 숨으로 10년의 기다림을 보상한다.
거대한 충주호의 물결 위로, 마치 수면 위를 기어가는 듯한 산 능선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마치 거대한 파충류 무리가 호수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이 장면이 바로 ‘악어봉’이라는 이름의 유래다.
충주댐 건설로 생긴 호수의 굴곡진 지형은 리아스식 해안을 닮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청명한 하늘 아래 에메랄드빛 물결과 붉게 물든 단풍의 대비는, 왜 이곳이 수많은 이들에게 ‘다시 보고 싶은 풍경’으로 남았는지를 단번에 이해하게 만든다.
올가을, 충주호 위로 떠오르는 에메랄드빛 물결과 단풍의 교향곡 속에서 그 시간을 천천히 음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