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언덕을 덮은 하얀 물결의 비밀
가을의 상징이 단풍이라 생각했다면, 청주의 숨은 비밀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셈이다. 낭성면 추정리의 한적한 골짜기에서는 단풍이 물들기 전, 마치 폭설이 내린 듯 새하얀 물결이 언덕을 덮는다.
그곳은 단순한 꽃밭이 아닌, 3대에 걸쳐 토종벌을 지켜온 명인의 40년 세월과 수억 마리 꿀벌이 함께 만들어낸 살아있는 예술의 공간이다. 오는 19일이면 막을 내리는 이 기적 같은 풍경 속으로, 마지막 가을의 여정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추정리 메밀밭의 진짜 주인은 사람보다 벌이다. ‘토종벌 명인 1호’ 김대립 씨가 가꾼 이 땅은 관광지가 아니라 꿀벌을 위한 거대한 낙원이었다.
봄에는 유채를,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메밀 씨앗을 뿌려 조성한 밀원은 벌들을 위한 식탁이자 쉼터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 황홀한 풍경은, 사실 벌과 함께한 그의 오랜 시간과 정성이 빚어낸 부산물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지형에도 있다. 평지가 아닌 경사진 언덕을 따라 피어난 하얀 메밀꽃은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시야를 가득 채운다.
새벽녘, 여명과 안개가 메밀밭을 덮을 때의 풍경은 사진작가들이 해마다 이곳을 찾게 하는 이유다. 자연이 허락한 찰나의 순간, 그 감동은 사람의 손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완벽한 예술이다.
2025 추정리 메밀꽃 축제는 이 특별한 공간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다. 김대립 명인과 추정2리 마을회, 천년추정협동조합이 함께 준비한 이 축제는 ‘진정성’으로 기억된다.
명인이 직접 채취한 토종꿀을 맛볼 수 있고,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직거래 장터에서는 따뜻한 인심이 담긴 특산품을 만날 수 있다. 입장료 5,000원은 단순한 요금이 아니라, 생태를 지키고 전통을 이어온 명인과 마을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축제는 10월 19일까지 진행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주차장은 협소하므로 늦게 도착했다면 ‘추정1구 마을회관’에 주차 후 약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그 오르막길 끝에서 마주하는 새하얀 언덕은 모든 수고를 잊게 만든다. 가을의 짧은 순간, 붉은 단풍 대신 순백의 감동을 찾고 싶다면, 지금이 바로 청주 추정리 메밀밭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