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명승에서 즐기는 무료 가을 정취
가을이 깊어지면 누구나 걷기 좋은 길 하나쯤 마음에 품게 된다. 붉게 물든 단풍 아래 잔잔한 호숫가를 걷는 상상만으로도 평화롭지만, 그 길이 삼한시대부터 흐름을 멈추지 않은 천년의 저수지 위라면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제천 의림지는 단순한 산책 명소가 아닌, 1,500년의 세월을 이어온 살아있는 역사이자 시간의 경이로움을 품은 공간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지로 33에 자리한 국가명승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 중 하나다.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 3대 저수지로 꼽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농경지에 물을 대고 있는 유일한 ‘현역’ 저수지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문화재청은 의림지를 “고대 수리시설의 원형을 보존하며 현재까지 기능을 유지하는 유산”으로 평가하며, 그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호수 둘레는 약 1.8km, 최대 수심은 13m에 이르며 천년 넘게 마르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쌓았다는 설화와 고려 시대 박의림 현감이 개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 오래된 저수지는 제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온 터전으로 남아 있다.
2006년에는 충청북도 기념물에서 국가 지정 문화재로 승격되어 명실상부한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의림지의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수백 년 된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숲, 제림이 길게 이어진다. 조선 순조 7년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 건립된 경호루는 호수의 풍경에 운치를 더하며, 정자 위에서 내려다보는 제천 시내와 호수의 반영은 한 폭의 동양화를 닮았다.
최근에는 용추폭포 위에 유리 전망대가 새롭게 조성되어, 물 위를 걷는 듯한 스릴 넘치는 체험도 가능하다.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이 더해져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지만, 월요일은 시설 점검으로 운영되지 않으니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한 비용은 단 한 푼도 들지 않는다.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되며,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무료다.
넓은 공영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호수 위에서 오리배나 노보트를 타며 가을 정취를 즐길 수도 있다. 인근에 위치한 의림지역사박물관에서는 제천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둘러볼 수 있어 가족 나들이에도 제격이다.
천년의 시간을 견뎌온 저수지 위를 걸으며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어 보는 것은, 올가을 가장 특별한 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