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 백양사, 애기단풍과 쌍계루가 빚어낸 가을 풍경의 정수
가을이 깊어질수록 단풍은 붉고 노랗게 물들며 절정의 풍경을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사진작가들과 여행자들이 열광하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전남 장성의 백양사다.
이곳은 애기단풍으로 불리는 자그마한 단풍잎과 백암산의 기암괴봉, 사찰 입구의 쌍계루가 한데 어우러져 가을이면 마치 동양화 속 장면을 펼쳐낸다. 고즈넉한 사찰과 울긋불긋한 단풍, 그리고 연못 위에 비친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단풍의 성지라 불릴 만하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에 위치한 백양사에 들어서기 전,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쌍계루다. 고려시대에 처음 세워진 이 누각은 오늘날에 이르러 다시 복원되었고, 그 아래로는 잔잔한 연못이 흐른다.
이 연못 위로 비치는 백암산 백학봉의 반영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국내 단풍 명소 중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으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끈다.
가을이면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사진작가들로 붐빈다. 연못을 마주 보고 선 쌍계루 너머로 백학봉의 절묘한 라인이 형성되며, 일출 무렵 물안개까지 더해지면 이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이 아름다움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예부터 백양사는 자연경관의 명소로 알려졌으며, 고려의 문신 정몽주 또한 이곳 쌍계루를 노래한 시를 남겼다. 단풍이 무르익는 11월, 백양사를 찾는 이들은 그 시구가 남긴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1400년 된 백양사 단풍의 주인공은 단연 ‘애기단풍’이다. 이 단풍은 작은 잎사귀가 마치 아기 손바닥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선명한 색감으로 가을 정취를 극대화시킨다. 붉은빛, 노란빛, 초록빛이 겹겹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백양사 경내를 하나의 거대한 수채화처럼 만든다.
단풍 아래로 쏟아지는 햇살과 낙엽 밟는 소리만이 고요를 깨운다. 이 길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단풍이라는 자연의 예술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여정이다.
백양사가 위치한 백암산은 내장산국립공원의 남쪽 자락으로, 우리나라 단풍 명소의 대표 격인 내장산과 이어져 있다. 이 때문에 백양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단풍의 아름다움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 덕에 더욱 깊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백양사는 단풍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역사와 불교문화의 중심지로서도 가치가 높다. 백제 무왕 33년인 632년에 창건된 이 사찰은 원래 ‘백암사’로 불렸으며, 고려 시대에는 ‘정토사’, 이후 조선 말기에 지금의 이름인 ‘백양사’로 불리게 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한 스님이 백학봉 아래서 법화경을 외우고 있을 때 흰 양이 나타나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이 기이한 인연이 ‘백양사(白羊寺)’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고, 백암산 또한 ‘백양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백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의 본사이자 ‘고불총림’이라는 현판을 지닌 총림 사찰로, 강원과 선원, 율원을 모두 갖춘 수행 도량이다. 즉, 참선과 불경 교육, 계율 수행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으로 스님들의 수도 중심지이기도 하다. 단풍철의 화려함과는 달리, 그 안에는 고요하고 깊은 선의 정취가 깃들어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전통 한식 건물들이 백학봉의 바위 절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한다. 이 조화는 천 년의 시간이 쌓아 올린 아름다움이며, 사찰이 단지 종교적 공간을 넘어선 ‘자연 속의 예술’로 자리 잡은 이유다.
백양사에서의 여행은 단풍 구경에 그치지 않는다. 그 길 끝에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맛있는 한 끼가 기다리고 있다. 장성 황룡강 인근에는 순대국밥, 참게탕, 민물매운탕처럼 깊은 국물 맛을 자랑하는 향토 음식점들이 자리해 있다.
축령산 주변에서는 산나물을 곁들인 시골밥상 정식을 맛볼 수 있어, 단풍으로 물든 풍경 속에서 미각까지 만족시키는 여정이 완성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체험은 ‘사찰음식’이다. 백양사의 정관스님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인물로, 그녀의 사찰음식은 자연과 수행, 음식의 철학이 결합된 하나의 예술로 불린다.
백양사 템플스테이를 통해 정관스님의 사찰음식 체험도 예약할 수 있으니, 단풍 여행에 특별한 경험을 더해보는 것도 좋겠다.(현재 정관스님의 해외일정으로 12월까지 진행하지 않으니 참고)
백양사는 연중무휴이며, 이용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출부터 일몰까지 탐방하는 것이 예의이다. 성인 기준 입장료는 4천 원이며, 어린이는 1천 원이다.
주차는 백양골 초입에 위치한 제3주차장을 포함해 몇 곳이 마련돼 있어 비교적 여유롭지만, 단풍 절정 시기인 11월 초순~중순에는 방문객이 몰려 주말 정체가 심할 수 있다. 주차요금은 소형기준 5000원이다.
전남 장성 백양사는 그저 단풍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애기단풍이 물든 산사 길, 연못에 비친 쌍계루의 반영, 천 년의 시간이 깃든 사찰의 역사, 그리고 자연에서 길어낸 음식까지.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이곳을 단풍 명소를 넘어선 '가을 감성 여행지'로 만든다.
소란스럽지 않은 가을의 정취 속에서 오롯이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백양사로 떠나보자. 가을이 깊어지는 지금, 백양사에서 계절의 마지막 색을 마음에 담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