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의 배경지였던 겨울 명소
12월의 남원은 고요한 겨울빛으로 잠기며 광한루원을 가장 깊이 있게 드러내는 계절이 된다. 요천변의 고목들은 찬 바람을 머금고 서 있고, 연못가에는 달나라 궁전을 뜻하는 광한루가 서리 어린 자태로 앉아 있다.
조선 선비들이 꿈꾸던 이상향을 정원으로 옮긴 이곳은 설경과 야경이 모두 아름다워 겨울이면 더욱 특별한 감동을 전한다.
광한루의 역사는 1419년 황희 정승이 유배 중 작은 누각을 지은 데서 출발한다. 이후 1444년 민여공이 중수하고 정인지가 이름을 ‘광한루’로 고쳐 부르며 새로운 경관을 완성했다.
높이 약 19m의 팔작지붕 누각은 1963년 보물 제281호로 지정됐고, 1877년에는 기울어진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월랑이 설치돼 건축사적 의미를 더했다.
광한루원의 정원은 1582년 정철이 조성하며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요천 물을 끌어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담은 오작교를 놓아 조선 선비들의 이상향을 구현했다.
여기에 춘향사당과 월매집 등이 더해지며 문학·역사·건축이 만나는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2008년에는 명승 제33호로 지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겨울이 되면 광한루원의 풍경은 한층 깊어진다. 얼어붙은 연못에 비친 광한루와 완월정의 실루엣은 수묵화 같은 분위기를 띠고, 눈이 쌓인 오작교는 전설 속 이야기를 현실로 당겨온 듯 아련함을 더한다.
특히 눈이 내린 다음 날, 서리 맺힌 고목과 고요한 산책로가 만들어내는 정적은 이곳만의 겨울 감성을 극대화한다.
해가 지고 무료로 개방되는 시간대가 되면 또 다른 매력이 펼쳐진다. 조명이 켜진 누각과 다리는 연못 위에 황금빛 반영을 드리우며 몽환적인 풍경을 만든다.
달이 뜬 밤이면 ‘달나라 궁전’이라는 이름이 더욱 실감나고, 600년 전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계절별 운영 시간과 입장료는 명확히 구분돼 있으며, 겨울철에는 오후 6시 이후 무료로 방문할 수 있다. 눈 덮인 낮이든 조명 비친 밤이든, 광한루원은 오랜 시간이 빚은 풍경 속으로 여행자를 조용히 초대하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