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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Jul 14. 2020

술 대신 얻은 기쁨

'친구야, 술 대신 밥이나 한번 먹자꾸나'

코로나 19가 전쟁보다 더 큰 재앙으로 우리 곁에 왔다. 코로나 19로 전례 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감, 누적된 피로감으로 지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근 잠잠해지는 것 같았던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안갯속에 갇혀 있는 듯하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으로 확진자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영화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재난이라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몇 달 동안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묶여 팍팍한 생활에 답답해하는 친구들의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지난 금요일 오후 한동안 보지 못했던 한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뭐하냐? 별일 없으면 오랜만에 한잔하자.”

“야, 요즘 코로나 19로 온 나라가 뒤숭숭 한데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에서 술 마셔 대겠냐. 요즘 몸도 안 좋고 해서 금주한 지 제법 되었다. “

그러자 친구의 비웃는 목소리에 욕이 묻은 대답이 날아왔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헛소리 하지 말고 얼굴 한번 보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오래 못 산다.”

코로나 19에도 아량 곳 하지 않고 내뱉는 친구의 간절한 회유에도 좀 더 시간을 보내고 나서 한번 보자며 미안하다는 말을 함께 전했다.    



지난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삼일 앞두고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숨조차 쉬기 힘든 내 몸의 이상으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아들 내외는 물론 손녀까지 당황스러운 모습으로 지켜보던 그 날의 기억이 오래오래 남는다. 병원 응급실에서 심장질환 시술까지 받아가면서 입원한 지 10일 후 겨우 퇴원을 했다. 어쩌면 저승을 경험하고 나온 사람처럼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이런 두렵고도 황당한 일을 겪고 난 후 건강이 좀 나아지기 전에는 술은 가급적 먹지 말자고 혼자서 약속했다. 몇 달을 지켜내니 이제는 술 생각도 많이 희석되어 갔고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술을 좋아하고 분위기를 좋아해서 친구나 직장동료들이 한잔 하자고 하면 거절하기 어려워 늦게까지 함께 자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 옷도 제대로 벗지 않고 그대로 나가떨어져 잠을 잔적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내내 숙취로 고생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제정신이 돌아오곤 했다. 어쩌다 머리가 어지러워 구토를 할 것만 같은 날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몸살감기라며 병원에 갔다가 집에서 좀 쉬어야겠다.’는 말을 전하며 피할 수 없는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으로 후회도 하지만 또 한 주일만 지나면 까마득히 잊어버린 체 다시 술잔을 들고 건배를 외쳐대던 그때가 지금은 희미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어떤 날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취해서 택시를 타고 오다, 택시 안에 휴대폰을 두고 내린 적도 있었다. 이튿날 아침 그 사실을 알고 내 휴대폰에 전화를 해보지만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고 있다가, 다시 걸면 꺼져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되풀이되는 순간, 알 수 없는 택시기사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마음을 달래던 슬픈 기억이 있다. 휴대폰 기기의 분실보다 거기에 저장된 연락처와 각종 웹의 ID, PW, 사진 등 기록들이 날아간 사실 때문에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며 괴로워했다. 그 일로 사무실에서 정시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휴대폰을 다시 구입하고 연락처 등 각종 자료를 다시 입력하면서 개고생 한 기억은 아직도 술이 제공한 최고의 흔적으로 생각된다.




병원에 실려 가기 전만 해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저녁식사를 하면서 고기반찬이나 얼큰한 찌개가 나오면 이를 핑계 삼아 반주로 소주 한 병 마시는 게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 아들 며느리와 손녀에게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가끔은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까지 빼앗기는 것 같아 술을 끊는다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친구의 술 한 잔 하자는 간절한 제의를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술을 마셔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손녀와 한 약속도 있고 제법 긴장되는 욕을 먹으며 버티다 보니 이젠 새로운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한번 끊어볼까? 생각을 하며 지난 몇 달 동안 금주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더니 몸도 조금은 개운하고 정신도 맑아진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많은 월급은 아니었지만 술값에 별로 인색하지 않았던 나에게 술값 대신 카카오 뱅크를 이용하며 적금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요즘 들어 며느리가 “아버님, 몸에 근육은 좀 빠졌지만 얼굴색은 많이 좋아지셨어요.”라고 말하면 “좋아지긴, 술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너희들 눈치까지 보아야 하니까 조금은 스트레스지.”    

하지만 생각해보니 몸도 가벼워지고 새로운 의욕도 생기고 전보다 여러모로 좋아진 걸 느낄 수 있다. 술 한 잔 마시는 거야 별 일 아니지만 지난해 12월 때처럼 또다시 의식을 잃는 사태가 닥칠까 봐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란 걸 너무 잘 알지만 삶의 쏠쏠한 재미가 줄어든 건만 같아 그게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다녀온 후부터 근육이 많이 빠져나간 것 같다며 다시 운동을 열심히 하셔야겠다는 아들 내외의 권유에 따라 요즘은 아침이던 저녁이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금호강변을 따라 5km씩 씩씩하게 걷고 있다.    




병원에서 지정한 날짜에 검사를 받고 처방전에 따른 약을 아침저녁 정해진 시간에 맞춰 먹으면서, 지난달부터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아 최근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사무실에 출근을 하여 종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예전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갈 때는 며느리와 손녀가 좋아하는 떡볶이, 닭발, 납작 만두, 통닭, 마카롱, 아이스크림, 막창 등을 매일 돌려가며 사 가지고 간다. 이런 즐거움 또한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나만의 작은 일상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마중 나온 손녀에게 까만 비닐봉지를 손에 쥐어줄 때마다 정말 좋아하는 그 모습에서 새콤한 사랑과 술 대신 얻은 기쁨이 가슴속으로 한껏 밀려 들어옴을 느끼면서.      


“서연아! 오늘도 네가 좋아하는 입맛 당기는 것 사 왔어.”
“오 예, 할아버지 짱!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언제나 믿음직한 아들 내외, 그리고 예쁜 손녀와 함께 시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보듬으며 행복해지는 연습에만 몰두해야겠다. 그러려면 나 또한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지.


그러니 친구야, 술 대신 밥이나 한번 먹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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