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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Oct 20. 2020

얼굴을 말하다

살아있는 삶의 얼굴, 미소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문득 건물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얼핏 봐도 얼굴 곳곳에 주름이 잡힌 표정 없는 얼굴이다. 유리에 비친 내 얼굴에서는 미소를 찾을 수가 없다. 누군가 말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고 인생의 기록이라고. 그리고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과도 같다 ‘라고.    


얼굴은 내 삶의 여정을 통해 스스로 만든 기록이자 예술이다. 나는 내 얼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는 날마다 어린아이처럼 매 순간 호기심에 찬 얼굴인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자신감에 찬 얼굴인가. 남들에게 짜증보다 여유 있고 평화를 주는 미소 띤 얼굴인가.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첫인상이 결정되는 시간은 불과 6초 만에 결정되며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는 외모, 표정, 태도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얼굴만 보고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 깊숙이 품은 것 까지야 모른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살아온 삶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하니 얼굴은 못 속인다는 말은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사람들은 항상 마음을 맑고 평온하게 유지하고 자신의 얼굴에 밝은 미소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옛날에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 그의 운명이나 성격, 수명 등을 판단하는 '관상'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미신적인 요소로 치부되면서 우리 곁에서 멀어졌지만 관상이란 오랫동안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일종의 경험 과학이라 할 수 있다. 관상가들은 역학도 역학이려니와 사람을 한눈에 척 보고 판단하는 신통한 재주를 타고났던 게 아닐까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인생에서 오랜 풍상을 겪으면서 얻은 체험과 지혜 속에서 단련된 사람을 보는 노련한 눈일 것이다.


2013년에 개봉된 영화 <관상>은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천재 관상가 김내경(송강호 분)을 통해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영화의 결미에서 김내경이 바닷가에서 파도치는 모습을 보며 한명회에게 한탄하는 장면이다.

"난 파도만 보았소.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 것을..."

관상을 보는 것은 파도를 보는 것에 불과하고 그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보지 못한 것이 애통하다는 주인공의 뒤늦은 깨달음의 소리를 곱씹어보았다. 결국 세상의 일이란 관상처럼 얼굴에만 의존해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며,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내 마음을 바꾸면 관상도 저절로 바뀌고 운명도 바뀐다고 하니 얼굴에 너무 의미를 두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daum image




나는 가끔 지하철을 이용해 시내에 나갈 때, 나도 모르게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두루 훔쳐보는 버릇이 있다.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마땅히 시선을 둘 때가 불편할 때 하는 습성이 자연적으로 굳어 버렸다.

어떤 때는 손거울을 들고 자기 얼굴의 화장을 매만지는 여성과 시선이 마주쳐서 실로 당황하여 고개를 돌린 적도 있었다. 사실 지하철 승객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중독이나 된 듯 재빠른 손놀림으로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보는 사람, 양쪽 귀는 이어폰으로 꼭 막고 한쪽 손가락으로 바쁘게 문자판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아 시선을 마주치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그래도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에 승객들의 얼굴을 관찰하는 일은 내겐 나름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하루 동안 아침이 아니면 거울을 보는 일이 없다. 자기에게 익숙한 자기 얼굴을 보면서 실망할까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남의 얼굴을 보면서 이런저런 느끼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남의 얼굴을 보고 나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뿌듯한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인자한 얼굴에 미소 가득한 모습을 볼 때면 그것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앞서고, 친절하고 양보하는 얼굴을 만나면 나 자신을 질책하며 반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 얼굴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칠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당신이 거울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고 생각해봐. 당신은 당신 얼굴을 꿈꾸었겠지. 아마 당신은 그 얼굴을 당신 내면의 외적 반영으로 상상했을 거야. 그러다가 마흔 살쯤 되었을 때, 사람들이 당신에게 유리거울을 비춰주었다고 가정해봐. 얼마나 놀랄까. 아마 당신은 전혀 낯선 얼굴을 보게 될 거야. 그때 당신은 분명히 알게 되겠지. 당신 얼굴이 곧 당신인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밀란 쿤데라, 『불멸』 57p.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위해 세수나 샤워를 하는 과정에서, 욕실 벽에 걸린 거울 속에 비치는 나의  얼굴을 매일 바라보며 독백한다.

“언제 이렇게 주름이 많이 생겼지, 흰머리는 또 언제 이렇게 많이 늘었지, 염색이라도 해야겠네. 어젯밤에 먹은 술 때문인가 왜 이렇게 얼굴이 퉁퉁 부었지” 혹은, 넌 행복하냐고 묻기도 한다. 거울 속에 비친 내가 과연 나인지도 묻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현재의 상태를 알고 새로운 마음가짐의 태도를 얼굴에서 엿보곤 한다. 결국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대한 성찰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자기의 얼굴을 들여다볼까? 3번 아니면 5번? 아니 그 이상이라도 상관없다. 그때마다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자. 미소 짓는 얼굴은 친근감을 주고 따뜻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래서일까, 미소를 잘 짓는 사람은 거부감이 없고, 왠지 모르게 그에게 다가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소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를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을 나는 전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애정을 가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 모두가 나를 웃게 만든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미소 짓는 얼굴엔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지며 살아있음의 따뜻함이 미소 속에 가득 넘쳐난다. 그러나 미소 짓지 않는 얼굴은 차갑게 느껴지고 가까이 다가가기가 꺼려진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억지로라도 미소 짓는 연습을 해 보자. 미소 짓는 얼굴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살아 있는 얼굴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기쁨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날마다 힘들고 치진 일에 처진 어깨를 추스르며 찡그린 얼굴 가득 화난 모습으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을까? 아니면 사는 게 재미나고 신나는 일이라고 어깨를 들썩이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을까? 오늘따라 <모나리자>의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그 미소가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져 올뿐이다.     





"미소는
당신 창문에 있는 빛이고, 그 빛은 배려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그 안에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준답니다."

데니스 웨이틀리(Denis Wait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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