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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Jun 20. 2021

뒷모습은 또 하나의 표정이다

당신의 뒷모습이 진실을 말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스치고 부대낀다. 또한 사람마다 모습이 다르니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의 다름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사는 동안 좋은 사람을 만날 때엔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마땅치 않은 사람을 만나 적잖은 실망을 하기도 한다. 서로 좋은 관계일 때에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는 듯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며 금방 목숨이라도 내어 줄 듯이 다가오던 사람이, 좋았던 이해관계가 끝나면 모든 것이 사라진 듯 뒷모습에서 들리는 비난과 험담에서 삶에 대한 회의마저 느끼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 삶의 뒷모습은 어떨까?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내가 그 자리에 없을 때의 나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 뒷모습을 상상하면서 가끔은 궁금할 때도 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말자. 지금의 내 앞모습이 자유롭고 당당하다면 뒷모습도 마찬가지 일 것이며, 내 앞모습이 쓸쓸하지 않다면 뒷모습도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앞모습을 통해 투영된 뒷모습 또한 자신의 표정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샤워를 하다가 뒷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어색하고 이상함을 느껴본다. 날마다 마주하는 얼굴은 반갑지만 어쩌다 보는 뒷모습은 어색하고 낯설다. 그것은 우리에게 늘 보이지도 않지만 보지 않는 자신의 뒷모습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를 쓴 쎙떽쥐베리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사실 중요한 것은 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안 보이는 것’으로 상징되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행복, 사랑, 우정, 믿음 등과 같은 우리가 살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아닐까. 간절한 것은 보이지 않을수록 더욱 간절하게 소망하기 마련이니까.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남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삶을 향한 바쁜 걸음을 내딛는 낯선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행복을 엿보기도 하고, 때로는 처절하게 축 처진 어깨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앞서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면 내 발걸음도 상쾌해지는 것만 같다. 일상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행복하지만, 날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살다 보면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살면서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면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그런 사람 옆에 서 있으면 말이 없어도 편안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처럼 우리가 보는 타인의 뒷모습은 어쩌면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슬프면 슬픈 모습으로, 기쁘면 기쁜 모습으로 꾸미지 않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뒷모습은 또 하나의 그 사람의 표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뒷모습만 보고도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안다는 것은 매우 친밀한 사이이거나 익숙한 관계일 때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더 정직하다고 할 수 있다. 앞모습은 얼굴 표정이나 못 매무새를 통해 치장할 수 있지만, 뒷모습의 표정은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누가 나를 따라오면서 내 뒷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걷는 것에 불편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말에 ‘뒤통수가 따갑다’라는 말은 내가 내 뒷모습에 대해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언젠가 퇴근길에 업무상 추진하던 과제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고심하면서 혼자 걷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선배가 “오늘 무슨 일 있었나? 왜 이렇게 어깨가 축 늘어져 있어?” 하면서 어깨를 가볍게 도닥여 준 적이 있다. 선배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던진 이야기였지만 내 숨겨둔 마음이 들킨 것만 같아 바늘에 찔린 듯 속으로 뜨끔했다. 내 뒷모습에도 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내 감정이 선명하게 번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그때 받았다. 평소 제대로 신경 한번 써 본 적 없는 뒷모습이 나의 숨겨진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함께 아름다운 뒷모습을 위해 날마다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을 모아, 감동이 느껴지는 글 쓰는 일에도 게으름을 털고 새롭게 정진하는 열정을 가져야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먼 훗날 나의 뒷모습이 아름다움을 기억하도록.




뒷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의 한 단면을 꾸밈없이 진실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심심찮게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응급상황에 인명구조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드는 구조대원들,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 시간에 도우미로 묵묵히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노인이 힘들게 끌고 가는 폐지 수레를 스스로 밀어주는 대학생, 치매로 길 잃은 할머니를 파출소까지 친절히 데려가는 어린 학생 등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망설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우리를 진정으로 감동하게 한다.


오늘은 내가 그 한 사람이 되어 누군가의 감동이 되어보자. 나의 뒷모습에 숨은 표정이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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