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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Nov 28. 2020

내 인생의 마라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라톤은 인생의 축소판인가?




      

흔히들 마라톤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삶을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과 고통과 위기를 겪는 것과 같이 마라톤도 달리는 동안 피할 수 없는 고비를 수없이 맞이하는 스포츠다. 마라톤은 출발점에서부터 42.195 킬로미터의 긴 여정을 통해 수많은 갈등과 희열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과의 힘든 싸움에서 이겨내야 하는 경기다. 그것이 몸이든 마음이든.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원망하면서 그래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체력은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함으로써 얻는 성취에 대한 기쁨과 쾌감을 맛보는 것이 마라톤이며, 우리가 사는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는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더구나 언택트 문화가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생활패턴을 변화시켜 놓고 있다. 실패와 좌절에 빠지거나 실직 등으로 생존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있다. 그러나 현실에 닥친 모든 일이 어렵고 주변 여건이 힘들어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 삶이다 보니 어떤 이는 종교에 기대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취미생활로, 어떤 이는 술에 기대기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이 조언이 되겠느냐만 의지가 있다면 코로나로 지친 삶에 활력을 가져오기 위해 마라톤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틈이 나는 대로 꼭 풀코스가 아니더라도 하프나 10km, 아니면 5km 코스라도 달리면서 마음속에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고 새로운 도전의 계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마라톤 붐이 한창 불기 시작하던 때가 2003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너도 나도 마라톤에 도전한답시고 뛰고 달리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지나간다. 직장에서도 누구는 풀코스를 몇 회 완주했고 누구는 아침마다 몇 키로를 달리고 출근한다던가 하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그 시절의 추억이 생각난다. 오래전 얘기지만 내게도 마라톤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가 있다. 2004년 가을이었던가,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친구의 권유로 얼떨결에 대구에서 개최한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21킬로미터의 하프코스 라 하지만 처음 도전하는 나에게는 너무 높은 산이었다. 사실 처음 도전해 보는 마라톤이기도 하였지만 평소 운동을 좋아한 내 몸만 생각하고 나섰다가 겪은 큰 낭패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사건이었다. 당시 나는 달렸다기보다는 조금 빨리 걸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달리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끝까지 완주(?) 한 것에 만족해야 했던 부끄러운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날 이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들의 인내심과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단한 정신력이 존경스러웠다.      

 



누구나 처음 출발할 때는 완주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조심스럽게 출발한다. 조금씩 달릴 때는 여유를 가지고 주위의 풍광과 스치는 바람에 좋은 기분을 발산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기분 좋은 느낌은 거친 호흡으로 깨어져 버리고 괜히 뛰었나 하는 후회와 함께 되돌아갈 수 없는 회한에 몸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힘든 역경의 고비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기쁨 뒤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하프 마라톤에 도전한 나는 처음 얼마 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뛰었지만 어느 구간부터 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반은 뛰었고 반은 걸었다. 그런 모습으로 어렵게 반환점을 지날 때쯤이 되니,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다리는 후들거리면서 바닥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차라리 앉아 버리고 싶은 생각이 온몸을 휘감으며 남은 기운을 빼앗아 갔지만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 하는 오만한 기대감에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보통 마라톤에서는 35킬로미터 지점을 마(魔)의 구간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비록 하프코스라지만 나에겐 전 구간이 마의 구간인 것만 같았다. 내 몸은 마비된 듯 움직이길 거부하고 가슴과 어깨를 짓누르는 온갖 고통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희미하게 부수며 밀려왔다. 인생의 쓰디쓴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시간 앞에서 나는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앞서 달려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가에 놓인 종이컵 물 한잔에 목을 축였다. 오늘의 내 꿈은 결승점인가? 꿈이 있으면 기적을 만들 수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걷다가 뛰고, 뛰다가 걷지만 새로운 희망으로 나만의 방법으로 체력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나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주고 싶어 졌다. 내 인생의 새로운 반전을 생각하면서.    




몸은 어느 순간부터 한계를 지나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되면서, 내가 골인하는 가슴 뿌듯한 광경이 눈앞에 전개되는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라톤도 몸의 리듬을 타고 가는 스포츠인가 보다.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최고의 승부를 만들어 내는 것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제 내 인생도 한참 전에 반환점을 돌아 나와 머지않아 맞이할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누가 정한 코스 거나 결승점이 아니더라도 어디로든 나만의 길을 향해 달려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달려온 내 인생에 로스타임까지 적용한다면 얼마나 더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늦은 가을날, 잎 진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가 거칠게 들리며, 겨울이 오는 소리가 멀리서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 깊어가는 삶의 길 위에 남은 꿈을 다시 펼쳐보며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위해 파이팅을 외쳐본다. “나의 인생, 파이팅!”     


오늘 시작하지 못한 일은 결코 내일 끝나지 않는다.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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