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구두에서 삶을 위로받으며

절망과 고독을 감싸는 낡은 구두의 위로

by 박천수






낡고 헤진 검정 구두에 진흙이 잔뜩 묻어 있다. 누군가 노동 현장에서 돌아와 방금 신발을 벗어 놓은 것처럼 구두끈은 제멋대로 풀려있다. 얼마나 많은 노동을 버티며 고단한 삶의 길을 걸어온 구두일까.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를 만난 것은 2009년 9월이었다. 시내 서점에 들렀다가 이명옥 작가의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를 마주하고 책 표지의 구두와 제목에 이끌려 덥석 집어 들었던 기억이 있다. 표지의 그림에는 노란색 배경에 낡고 지저분한 검정 구두 한 켤레가 화폭 한가운데 놓여 있을 뿐이었지 만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어린 시절, 밤늦게 퇴근해서 돌아온 고단한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헌 구두를 표현했을 뿐인데도 신발 주인이 겪었을 외로움과 짓눌린 삶의 무게에 가슴이 아려오며 마음이 울컥해져 오는 것은 내가 쥐고 있는 추억의 매듭을 아직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고흐의 구두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아픔이다. 처절한 삶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무슨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통과 시련을 견디며 함께 한 구두일까? 감춰진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구두를 마주하며 알 수 없는 사연을 상상해 본다. 잠깐 동안이지만 구두 속에 담긴 경건한 침묵과 함께 무거운 삶의 무게가 느껴져 온다. 참혹하리만치 너덜너덜해진 구두 한 켤레를 보면서 삶의 거친 애환을 그려 본다. 이렇게 고흐의 구두는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거친 삶의 상황 전개를 통한 자기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아마도 고흐는 이 남루한 구두를 통해 깊은 삶의 고통과 오랜 시간 동안 노동을 참고 견뎌야만 했던 구두 주인이 겪었던 인생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사람의 인생을 마치 선명한 지문처럼 품고 있는 구두는 그에게는 인생의 벗일 뿐 만 아니라 신체의 일부분이 되어 삶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낡은 구두와 풀어헤쳐진 구두끈은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표상처럼 수많은 시간이 남긴 고통의 매듭을 풀어내 주고 있는 것 아닐까.


뒤틀리고 일그러진 구두의 주인은 아마도 힘겨운 노동자나 농부를 암시하고 있지만 어쩌면 고흐 자신의 구두일 수도 있다. 고흐의 외로움과 고단한 삶이 구두 속에 함께 스며들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삶의 도구인 구두를 통해 처절한 삶의 이야기를 던져주는 고흐의 구두는 우리가 따뜻한 가슴으로 마주하며 한 번쯤 시간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주문을 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오늘 하루도 힘든 일 한다고 정말 수고했다”라고 속삭이며 우리로 하여금 누군가의 인생을 상상하게 만드는 마력을 전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가 삶의 길 위에서 부딪치는 고난과 역경은 우리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지만 꿈을 향한 믿음이 있다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쯤 고흐의 구두를 신고 걷고 있는 자신을 생각해 보자. 차라리 우리 모두 그림 속으로 들어가 고흐의 구두를 신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보는 상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렇듯 한 장의 그림은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을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의 추억이 잠든 오래된 사진첩에 끼워 둔 사진을 보는 듯 행복하고 즐거운 옛 추억에 젖어들게 만든다. 그림 속의 낡고 헤진 구두는 고흐의 삶처럼 고통과 외로움을 대변하고 있지만 왠지 편안하고 친근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흙 묻은 낡은 구두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볼품없는 헌 구두를 통해 인생의 깊은 고뇌를 담아낸 화가의 따뜻하고 독특한 감수성에 공감하며,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따뜻한 위로와 믿음을 전해줌으로써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한 인생의 길을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라는 소중한 충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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