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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라 May 14. 2020

부부의 세계: 지선우(2)

-파멸과 함께한 완벽한 엔딩.

2년이 지나고 돌아온 전남편 부부 앞에서 지선우의 삶은 다시 위태롭게 흔들린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이제 나는 더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이혼은 지선우의 삶에 문제를 가져온 무엇도 해결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상식적인 방법을 썼다. 

더이상 ‘묻지 않기로’ 한 채, 덮어놓고 외면하며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여기는.


2년동안 지선우는 무너졌던 완벽한 삶을 다시 쌓아 올리는데 집중한다.

여전히 주변에 믿을만 한 친구는 없고, 아들과의 사이는 데면데면하며, 이태오의 접근금지 기간은 끝나가는데도. 아들과 사이가 그렇게 좋았던 아빠니, 꼭 복수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접촉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외면한다. 실제로 그는 2년을 채우자마자 화려하게 나타나 지선우를 위협하지 않았나. 쓰레기같은 놈


내버려둔 삶의 질문들은 결국 고스란히 지선우에게 돌아왔다. 






지선우가 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용서? 

이태오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라는 개소리를 이해하고, 상간녀와 뻔뻔하게 재혼해서 돌아왔는데도 잘 왔다고, 과거는 잊고 새로 시작하자고 환영해주어야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만병통치약처럼 믿는다. 

가능하다면 본인의 심신의 평화를 위해 용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박애주의자도, 득도하거나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도 아니라서, 용서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은 못 하겠다. 



자기 입장을 정리하고, 삶의 기준을 세워야 했다. 



지선우가 해야 했던 건 억지스러운 용서가 아니다. 

과거가 남기고 간 흔적과 영향력을 이해하고, 자신의 현재 위치와 입장에 대해 스스로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 과거와 현재를 잘 살펴보아야지만 미래에 대한 대처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한 마디로 오답정리. 지선우가 해야 했던 일이다. 


이태오의 쓰레기짓을 다 예측하고 대비할 수는 없다. 

책임이 지선우한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선우가 2년을 이전과 다르게 보냈다면, 삶의 방향성은 지금과 달라질 수 있었다. 탓하는 게 아니라, 지선우의 상황에서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대처 방법들을 적어보려 한다.






지선우는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든다. 


이태오와 여다경에 대해서도 묻어두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했다. 

명백한 입장이 없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서 그녀는 여다경에게 한 대 맞고,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상처받고 작아진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도. 


상황만 보자. 여다경은 상간녀다. 

지선우는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인정하고 축복해주러 오셨냐는 개소리에 맞설 수 있었다. 



그럼요. 

남의 거 훔쳐다 시작한 결혼 생활, 
제 축복이라도 있어야 살만 하지 않겠어요? 



당당하게 한 마디 비꼬아주고 나오든, 드라마답게 연분홍색 원피스에 와인을 뿌리든. 그런데 그 똑똑하던 사람이 대꾸 한 마디 못 하고 도망치듯 나온 건, 갈 곳 잃은 절망감에 잠식되었을 뿐 실질적으로 여다경에 대한 입장 정리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태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용서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마냥 없는 사람 취급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할지를 미리 생각했어야 한다. 이후에도 계속 나오듯 이태오는 준영이 아빠니까. 나중에 준영이 결혼식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사이 아닌가. 그렇다면 최소한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게 왜 나쁜지, 나의 입장은 어떤지. 행동의 기준을 정해두었어야 한다. 


기준의 부재는 닥친 상황들에 대한 수습만 하도록 이끌었다. 


용서는 안 되고, 감정은 북받치고, 억울하고 분하고 불안해 하며 내린 결정들은 점점 더 상황을 막바지로 몰아갔다. 




 



지선우는 준영이를 소유했지만 방치했다. 


좋은 아빠였던 사람이 눈 앞에서 엄마를 피투성이가 될 만큼 폭행하고, 나를 버렸다. 아이 입장에서는 트라우마가 안 남는 게 이상하다. 엄마로서 혼란스러운 아들에게 명확하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해주기 위해서라도 대화를 시도했어야 한다.


엄마 부모님에게 이러이러한 과거가 있었기에 아빠의 바람이 그만큼 충격적이고 배신으로 느껴졌다, 아빠는 이런 과거를 알면서도 몇 년동안 엄마를 속였다. 그래서 더이상 엄마와 아빠는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끊어졌지만, 너랑 아빠는 여전히 부자 간이다. 아들, 너는 아빠와 어떤 식의 관계를 원하니.


이런 대화가 미리 오갔다면 이태오가 돌아왔을 때, 당황스럽긴 하더라도 준영이와 삐걱댈 이유는 없었다. 몰래 초대장을 버리고, 거짓말에 실망하고, 억지로 데려가겠다고 남의 집에 쳐들어가 헤집고 다니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됐다는 말이다. 


2년동안 대화를 못했다면, 초대장을 발견한 그 순간이라도 대처를 했어야 했다. 


아빠가 돌아온다네. 그때 그 여자랑 낳은 애도 같이 온대. 집들이한다는데, 아들을 초대했어. 아들이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그런데 엄마는 네가 아빠와 연락하거나 만나게 될 때에는 엄마한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 예전 일도 있고 해서, 엄마가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너를 맡기기에는 아무래도 무섭고 불안해. 너도 그때 봤으니까 … 이해하지 아들?


이렇게 피해자로서 입장을 굳힌 채 먼저 말했다면 선빵을 때렸으면 준영이가 그만큼 반발하고 파티에 몰래 가지는 않았을 거다. 지선우가 아들 몰래 초대장을 버린 순간, 준영이에게 엄마는 ‘나를 통제하는 갑갑한 사람’이 되고 이태오와의 관계는 ‘숨겨야 하는 것’이 되었다. 준영이가 아빠와 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불안감도 이해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들과의 사이만 벌려놓았다. 







힘들고 아팠을 테지만, 그럼에도, 한 번은 돌이켜봤으면 좋았을 것을. 

지선우의 삶이 망가져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다. 상처는 놓아둔다고 치료되지 않는다. 당장 따끔하더라도 소독약을 붓고, 바늘로 꿰매고, 드레싱을 붙여가며 오래도록 보살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것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상처는 받아야 할 이유가 있지 않는 한 받아서는 안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줄 행동을 해서, 그로 인한 반대급부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상처가 아닌 하에야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렇게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줄 수 있는 수많은 여지를 관계에 남겨두게 된다. 


엔딩이 어떻게 날 지는 모르겠다. 내가 드라마 작가가 아니라서. 

하지만 어떤 식의 권선징악이든, 통쾌한 복수극이든 지나간 시간을 돌리지는 못한다. 



과거는 남는다. 

너무 많이 와버렸다. 지선우의 시간과 행동은 이미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상황이 모두 지선우의 문제를 없애는 방향으로 풀렸다고 가정해보자. 이태오는 자살하고, 여회장 일가는 여다경, 제니를 데리고 고산을 떠났다. 병원의 부원장 자리를 돌려받고 설명숙, 고예림과는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 준영이는 엄마랑 같이 산다. 


바라던 삶이 회복되면 지선우는 행복할까? 


시청자는 만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준영이에게 지선우는 아빠를 죽인 엄마로 남을 것이다. 고산 사람들은 앞에서는 웃으며 인사하더라도 뒤에서 독한 년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며, 설명숙은 기회가 되면 또 간사한 행동을 할지 모른다. 

지선우는 언제고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과거는 남는다. 



나와 내 소중한 존재들,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구원은 자기 자신밖에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지선우에게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있다. 드라마가 끝나도, 지선우는 살아가야 할 테니. 





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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