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사랑은 감정이다.
연애가 어려운 이유도, 연애 상담은 그토록 많지만 대부분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나가게 되는 이유도 이에 있다. 누군가 현명하고 이성적인 조언을 내밀더라도 그건 나의 감정을 배제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언을 따르지 않을 때 흔히들 하는 말이 ‘알지만’ 이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머리로 설명할 수 있는 그 느낌이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에는 이성이 개입되어야 한다. 사랑을 감정의 폭주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 가는대로 하기 전에 생각을 해볼 것들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서부터.
우선 내가 누구와 만날 수 없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연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이상형이다. 누군가에게 이상형을 물어보면, 얼굴에서부터 키, 몸매, 재력, 성격, 분위기, 물어본 사람을 뒷목 잡게 하는 그놈의 느낌이 오는 사람까지 굉장히 다양한 좋은 특성들이 언급된다. 어렴풋하게든 구체적으로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를 생각해두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슬쩍 그에 가깝네, 아니네 하며 그 사람에게 더 다가가려고 하거나 발을 빼려 한다.
누구에게나 특히 더 끌리는 특성이란 건 있다. 그건 자기가 특별히 매력을 느끼는 부분일 수도 있고, 자신에게 없어서 상대방이 채워줬으면 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더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 건 무엇에 혹하는지보다는 무엇을 참을 수 없는지이다.
즉, 이상형보다는 방어선을 세워두어야 한다.
나는 선이 뚜렷하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얼굴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낄 이유가 될지는 몰라도, 그 이유만으로 그 사람과 연애를 결정할 수는 없다. 어떤 관계를 발전시킬지, 지속할지 결정하는 것은 그보다 사소할지라도 나에게 더 중요한 기준들이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고, 내 강아지를 아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조각상처럼 잘생긴 사람이 오더라도 그 사람이 개를 싫어한다면, 나는 그 사람과 연애를 할 수는 없다. 또는 아주 작은 일이더라도 말과 행동이 세 번 이상 다르다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이든 만나지 않기로 ‘결정해 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소개팅을 권유하며 이상형을 물어볼 때, 나는 잘생긴 사람이라고 답하지 않는다. 대신 나에겐 몇 가지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항들에 해당되는 게 아니면, 만나보고 싶다고.
방어선이란 것은 이런 의미다.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는 환상의 애인을 찾으라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선을 마련하자는 의미이다.
그리고 방어선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기준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 자체가 가진 성격, 행동, 습관들처럼 내적인 기준도 있고, 눈에 보이는 외적인 기준도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사소한지, 속물적인지에 얽매이지 말고 나에게 중요한 것을 파악해야 한다.
나는 일주일에 닷새는 고기를 먹어야 하는 사람인데, 동물 복지를 주장하는 채식주의자를 만난다면 그건 서로에게 힘든 일이다. 내가 키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키가 작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괴롭고 그로 인해 무심코 상대방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면, 주변 사람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하든 키를 방어선 삼는 게 낫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들이 키가 몇은 되어야 한다, 이 정도는 벌어야 한다,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떠드는 데 맞추어 키 크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나만을 바라봐주며 조건 좋은 이상형을 만들고 그에 맞는 사람을 찾는다면 대개 두 가지 결과가 나온다. 완벽한 사람만을 찾다가 아무도 못 만나거나, 그 이상형이 본인에게 놓아서는 안 될 특성까지 감수하게 만들거나.
내가 타협할 수 있는 것과 타협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타협하지 못하는 부분을 애정으로 극복하려 하며 괴로워한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타협이 되는 부분이 있고, 남이 보기에는 정말 사소한 것이더라도 타협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자기 안에서의 기준, 관계에서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야 나를 해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
늘, 건강한 관계란 나와 나의 삶 안에 들어있어야 한다.
그 관계를 위해서 나의 나머지 부분을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한, 관계를 위한 기준은 무엇일까.
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