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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Nov 18. 2019

천의 얼굴, 아줌마

나는 주민등록상 아줌마가 된 지 한참 되었다. 그런데 요즘 통 아줌마 소리 들을 기회가(?) 없다.

유일하게 애들 친구들이 다들 나를 '아줌마'라고 부른다. 아주 예의 바르게.

친구 엄마인데 '어머니'라고 부를 깜냥은 안되고 뭐라 부르겠나? 아줌마밖에 없다.

요즘 사람들은 대체로 '아줌마'라는 표현 대신 나와의 관계를 호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애들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은 어머님, 마트에서는 고객님, 미용실이나 은행에선 사모님

학부모 사이에서는 누구누구 엄마, 때론 친근하게 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어른들은 아줌마라고 불릴 기회가 통 없다.


아마도 아줌마라는 말은 우리 엄마가 젊은 시절 많이 쓰였지 싶다.

특유의 거침과 억척스러움 가끔은 뻔뻔한 여성을 비하하던 단어 '아줌마'

언제부터 우리는 아줌마라는 표현을 삼가게 되었을까?

아줌마 소리 듣고 상처 받을 여성들을 배려해서 아줌마 소리를 자제할 만큼 세상은 그리 다정하지 않다.

실제로 억척스러운 아줌마들을 통 만날 수 없기 때문일 거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던 즈음 주부지만 아가씨 같은 사람을 가리켜 미스와 미시즈의 중간말인 '미시(missy)'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여성들의 학력과 사회참여도와 함께 교양도 양성평등의식도 높아진 당시 결혼한 젊은 여성들을 예전처럼 아줌마라고 막 대할 수는 없고 아가씨라고 할 수도 없으니 사회는 '미시(missy)'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사회변화는 말의 변화로 나타나고 또 말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를 이끈다. 그 후로 결혼한 여성들은 다들 미시인데 나만 아줌마 소리 듣지 않기 위해 몸도 마음도 좀 더 긴장하며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여성에게는 대략 아줌마라 불리는 시점이 있다.

사람마다 노화의 속도가 다르고 감각이 다르니 그 시점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여자에게 이 '아줌마'라는 말은 때론 코믹하게 때론 심각하게 때론 유쾌하게 다가온다.



90년도 중반 대학생 시절, 아직은 '미시'개념이 뚜렷하게 형성되기 전.

한 번은 친구가 목욕탕 갔다가 아줌마라고 불렸다고 어이없어 하자 나이만 어른이지 아직도 소녀 같던 우리들은 까르르 웃으며 그 친구를 놀렸던 기억이 난다.

명백하게 아줌마가 아닌 나이. 그렇게 부른 사람이 명백하게 실수한 것이니 그냥 까르르 웃어도 혹시나 친구가 상처 받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30대 초중반, 갓 돌 지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근처 시장에 살살 구경 다니면서 육아의 시름을 달래던 시기가 있었다.

이상하게 시장에서는 아줌마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악의는 없다. 아마도 시장에는 아직도 시장바닥에서 억척스럽게 장사하며 자식들 키우던 우리 어머니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일 거다. 그냥 '애기 엄마'라고 불러주면 좋을 텐데 꼭 아줌마라고 불러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럴 때는 그냥 시장에 가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남들은 나를 명백히 아줌마로 생각하지만 나는 차마 인정하기 싫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줌마가 되는 시기에 진입하고 있는 거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가 정말 아줌마가 된 거야? 심각하기 그지없다.

내가 누구 때문에 아줌마가 되었는데, 너네들 엄마가 어쩌다가 아줌마가 되었는데... 

아기가 어린 젊은 엄마들은 온통 아기에게 신경 쓰느라 내 외모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편한 운동화에 레깅스 바지와 롱티셔츠를 걸치고 너무 아줌마인가 싶어 아닌 척 조끼 하나 걸쳐도 아줌마인 것은 확실하다.

우리네 엄마들은 모두 여기저기서 무심하게 아줌마라고 부르는 시기를 거친다.

그러다 아이가 크면서 무언가 스스로 할 수 있게 될수록 점점 내 치장할 시간도 생긴다.

그래서 아이는 다 컸는데 유독 젊은 엄마들이 있다.


최근 정말 오랜만에 아주 사나운 소리로 나를 '아줌마!!'라고 부른 사람이 있었다.

그 날 평소보다 늦은 관계로 공용주차장 각 층은 이미 만차였다.

그래도 혹시 자리 하나는 남아 있을까 싶어 위로 위로 조급하게 올라갔다.

그러다 어느 층에서 어떤 여자가 갑자기 훅 나타났고 나는 '끼익'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곧바로 들려온 소리

"아줌마!!!" "주차장에서 뭐 하시는 거예욧??? 이렇게 빨리!!!"

노란 바탕에 검정 땡땡이 무늬가 들어간 화려한 상의에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올 법한 바지를 입고 눈매가 올라간 선글라스를 쓴 또 다른 아줌마가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나는 상황 파악이 아주 빠른 편이다. 차 문을 모두 내리고 깊이 사과했다.

"너무 죄송합니다. 빈자리 보고 마음이 너무 급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미안하기도 했지만 주차장에서 그렇게 급하게 운전했다는 창피한 마음이 더 앞섰다.

나는 그 다른 아줌마가 씩씩 화를 낼 시간을 조금 더 주고 내 앞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다시 차를 움직였다.

그 날 나는 사고가 날 뻔했다는 것보다 다른 이유로 종일 이렇게 곱씹었다.

'아줌마, 아줌마...'


이런 아줌마도 아줌마이기에 더 즐거운 일도 있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하겠다.

며칠 전 아침마다 가는 카페에 들러 글을 쓰고 퇴근하는 무렵이었다.

어떤 검은 차가 내 옆에 싸악 서더니 시동을 끈다.


"저기요"  '길을 물어보려나 보다. 친절하게 말해 줘야지'

"혹시 이 근처에 사시거나 이 근방에 자주 오세요?"  '아니네'

"아니요"

"아 자주 뵌 것 같아서요"

"아 네, 아닌데요"

"다음에 혹시 또 뵈면 제가 커피 한잔 살게요." 그러더니 시동을 걸고 떠나는 검은 차 

'저기 나 아줌마...'

 

그 날 나는 친구와 함께 "싸라 있네"하며 까르르 실컷 웃었다.

살면서 '아줌마'는 때론 웃음을 주고 때론 세상 그리 심각할 수 없다가 또 때론 활력의 대상이 된다. 

이 천의 얼굴을 가진 아줌마는 이제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가 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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