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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Dec 09. 2019

이론 따로, 실전 따로

엄마 수행 평가

나는 법륜스님을 좋아한다.

스님의 책은 모두 읽었고 유튜브를 통해 수시로 법문을 듣는다.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 안의 가득한 욕심을 에둘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스님은 넘어가지 않는다. 뱃속 깊이 똘똘 똬리 틀고 있는 욕심을 들추어내는 스님의 언변에 매번 감탄한다.

한참 듣다 보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아주 팔자가 늘어진 거구나 싶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벅찬 사연이라도 법륜스님이 말을 하면 상황이 코믹해지면서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져서 좋다.     


아이들에게 화내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이혼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 욕심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자식이나 남편이 죽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심지어 실수로 사람을 죽였는데 죄책감에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사연도 있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면 수년의 시차를 두고 그 업보를 받으니 절대 아이에게 화를 내지 말자 싶고

이혼하더라도 남편 원망하고 신세 한탄할 시간에 더 행복하게 살 궁리를 하자 싶고

누가 죽었건 누굴 죽였건 그래도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구나 많은 생각을 한다.

스님의 법문은 쉬우면서도 진리임에 틀림없다.

생각해 보면 어떤 엄청난 사건이라도 이해하지 못할 게 없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큰 아이는 우주과학청소년단이다.

말하자면 나 어릴 때 아람단 내지는 걸스카웃 비슷한 건데 아이들의 과학적 호기심을 위해 여러 가지 과학중심 활동을  한다.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있어서 단원이 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친구 따라 강남 간 셈인데 그래도 친구 따라간 것 치고 재미있고 유익한 활동이 많아서 돈 값은 한다.


1년으로 끝날 줄 알았던 활동은 한번 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바람에 6학년까지 이어졌다.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학교에 가서 교통안전이다 환경보호다 온갖 캠페인을 하고 로봇이나 로켓을 만들어 오기도 했다. 전국우주과학청소년단 수학학력평가 후엔 학교 6학년 대표로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도 참가했다.


수학올림피아드 대회가 하필 토요일에 하는 바람에 추운 날 새벽부터 일어나 수원까지 50분을  달려갔다. 학교 대표고 뭐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기 싫은 마음을 떨치고 수험장까지 갔다는 것 자체가  대견하고 예뻤다.

늦잠 자고 싶거나 너무 추운 날은 지독히도 아침  캠페인에 가기 싫어하더니 그래도 단 한번 불참 없이 무사히 2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며칠 전 우주과학청소년단 졸업식이 있었다.     


6학년 단원은 총 세명이고 모두 딸과 친구들이었다.

국민 의례를 하고 행사 중간중간 딸아이가 단상에 나가 애국가와 단가 지휘를  했다.

5학년 때 처음 애국가 지휘를 할 때는 잘 안된다고 집에서 하루 종일 연습을 하고 그렇게 떨더니 이젠 2년째 행사 때마다 지휘를 하다 보니 전혀 떨지 않고 차분히 잘한다. 대견했다.     

 

행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사회자가 졸업생에게 전국우주과학청소년단 대표 명의의 표창장을 수여하겠다고 안내하더니 두 명의 이름을 부른다. 졸업생 세명 중 두 명.

딸 이름이 없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세명 중에 두 명을 주는데 우리 아이가 없다?

학교 담당 선생님이 연맹의 요청에 따라 두 명을 추천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없다.

아이들이 상을 받는 동안 졸업생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딸을 흘깃 보았다.

손톱을 뜯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직 후 친구 스트레스로 닳아 없어지도록 물어뜯었던 손톱.

학년이 바 후로 한 번도 손톱 뜯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아이가 손톱을 깨문다.     


우주과학청소년단 담당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각별히 아끼셨다.

물론 그래서 선생님이 아끼는 아이들이 모두 상을 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특별히 아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 혼자 꿈을 꾸고 있었나 보다.

그나저나 어떤  기준으로  표창 대상을  뽑은 거지?

딸은 우주과학청소년단의 모든 활동에 참가했고 거기에 더해 2년 연속으로 행사 때마다 지휘를 하고 -그것도 원래 두 명이서 애국가와 단가를 나누어 지휘를 하기로 했는데 다른 아이가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딸이 두 가지를 모두 연습하고 지휘했다.- 6학년 때는 새벽부터 일어나 학교 대표로 수학시험까지 치렀다.

별거 아닐 수 있어도 단원으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그놈의 상이 뭐라고     




나는 행사가 끝나고 선생님한테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인사는커녕 그  후에도 단톡 방에서 학부모들이 줄줄이 감사 퍼레이드를 하는 와중에 대놓고 퇴장을 해버렸다.   

  

나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우주과학청소년단 총연맹과 경기지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항의 비슷한 말투로 졸업생 표창 기준이 뭐냐고 물었다. 물론 답은 뻔했다. 연맹에서는 표창 인원만 정하고 학교에서 알아서 활동 열심히 한 학생 중에서 추전을 한다는 거다. 당연하다. 일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나도 알고 있었다. 선생님한테 대놓고 항의할 수 없으니 각 지부에 전화를 걸어 그 얘기가 선생님 귀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좀생이가 따로 없다.      


저녁에 들어온 딸은 기분이 괜찮았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내가 괜히 오지랖 넓었나 싶기도 했다.

회복탄력성이 유난히 강한 딸이지만 그 속에 조금씩 조금씩 앙금이 쌓이고 있을까 봐 걱정된다.  

   

별것도 아닌 이 사건은 지난주 목요일 일이다.

그때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으로 기분이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며칠 지내보자 싶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여전히 서운하다.

아마도 문장 문장에 내 흥분이 묻어있을 거다.

내가 흥분한 상태여서 생각이 미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경기지부 표창이 아니라 전국 연맹 표창 대상자인지도 모른다.

혼자 김칫국을 마시든 뭘 하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는데도 계속 서운하다.

왜 그런 걸까?

아이가 안타까워서? 아니면 내 자존심이 상해서?        

그날 저녁, 아이 걱정한다는 명목으로 괜한 헛소리로 아이 마음 들쑤시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나는 법륜스님의 법문을 좋아한다.

누가 죽었건 누굴 죽였건 어떤 엄청난 사건이라도 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한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아무리 쿨한 척, 세상을 아는 척, 멋지게 사는 척  해도 나는 자식 핑계 대고 내 자존심이 상했다고 세상에 화를 낸다.

자식이 죽어도 마음을 가다듬고 살아가야 한다는데 고작 표창 때문에 이렇게 속 알맹이를 들키고야 만다.

너무 부끄러워서 과연 이 글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식 문제에서 나는 영원히 좀생이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부정하지 않겠다. 자식 문제에 대해서는 좀생이라는 것을

나와 관련한 일은 어떤 일이라도 하루만 지나면 마음이 잡히는데 어쩌면 나는 영원히 아이들 문제로 좀생이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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