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부른다. 신경질적으로 부른다. 이 문자가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부르는 게 아니다. 알지만 부른다.
이게 뭐냐고 불러 따진다.
오늘 딸은 1교시에 지각을 했다.
코로나 사태로 계속되는 zoom수업. 아이는 등교할 필요가 없으니 늦게까지 자는 것이 다반사다. 그래도 zoom수업이라도 있어 그나마 오전에 일어나 수업하고 점심 먹고 다시 수업하고 공부하는 정상 비슷한 생활이 가능하지 그거라도 없으면 올빼미 스타일인 아이의 생활은 오후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날 지도 모른다. 겨우겨우 이어가는 정상도 비정상도 아닌 생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것을 알기에 늘 8시 반쯤 되면 아이를 깨운다. 아이는 10분 20분 뒤척이다가 그래도 주섬주섬 일어나 세수하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아침식사는 쉬는 시간에 대충 때운다.
그래도 늘 일어나긴 했으니 설마 오늘도 일어났겠지 했다. 그렇게 계속 자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이는 그렇게 지각을 했다.
담임선생님이 종례 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왜 다 안 왔냐? 가만 보자 1번, 9번, 몇 번, 몇 번? 종례 없네? 자율동아리가 아직 수업 중인가 보네? (어떤 아이가 ' 1번, 9번은 나랑 같은 동아리인데 안 들어온 거 말이 안 되는데? 웅얼거린다.) 그래? 그럼 왜 안 들어오지? 오늘 왜 그렇게 많이 1교시에 늦게 들어갔냐? 오늘 1교시에 10분 이상 늦게 들어온 사람은 그 이유와 함께 톡으로 보내라. 왜 이것밖에 없어? 담당 선생님은 오늘 되게 많이 안 들어왔다는데??
딸이 다다닥 타자를 치는 것을 보아하니 솔직하게 다 말하고 있는 눈치다.
와이파이가 안 되어서 그랬다거나 몸이 안 좋았다 대충 둘러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부모가 되어 가지고 정직한 영혼에 재를 뿌릴 수는 없다.
그래 너 아침마다 그러더니 이번에 한번 선생님한테 혼 좀 나 봐라 하는 마음도 있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는데 '사유 미인정으로 지각 처리한다'는 문자
문의사항은 '0508----
나는 당장 전화를 한다.
담임선생님 인지도 모르고 쏘아붙인다.
이런 문자를 받았는데 이게 뭡니까?
아이가 오늘 1교시 수업에 10분 이상 늦었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늦잠을 잤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각 처리되었다. e알리미로 9월경에 향후 zoom수업 시 10분 이상 지각 시 지각 처리한다고 이미 안내문이 나갔다.
나는 e알리미를 뒤져본다. 수없이 날아와 거의 스팸 같은 e알리미 9월 구석에 관련 안내가 있다.
교육청 지침과 학교 성적관리규정에 따라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다는 거다.
나는 관련 규정을 찾는다.
경기도 교육청 홈페이지에는 관련 지침이 있는데 학교 홈페이지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그리고 스팸 같은 e알리미로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가정통신문 제목에 (중요)라던가 (긴급)이라는 단어도 없어 뭔가 중요한 안내문이라는 것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아이는 지각 처리되었다.
우리가 놓친 것이 있어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이래저래 화가 난다.
선생님은 지각 3번이라야 1번 결석인데 아이는 이제 지각 1 회지 않냐? 하신다.
많은 경우를 접하다 보니 이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오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출결은 엄격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그게 공정하니까.
그런데 여러 가지 의구점이 든다.
종례에 들어오지 않은 4명의 아이들에게는 일일이 전화해서 지각했는지 확인을 하셨을까?
실제 10분 이상 지각한 아이들 중에 고의로 또는 착각해서(9분이라고) 또는 선생님이 톡 보내라는 말씀에 그냥 어버버버하다가 말하지 못한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없을까?
종례에 들어가고 사실대로 말한 아이들만 지각 처리된 것은 아닐까?
1교시 수업 선생님한테 지각한 아이들 명단을 받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말하게 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게 맞는 건지? zoom수업이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잣대를 이렇게 공정하게 들이대는 것이 맞는지 교육청에 진정을 내볼까? 민원 내고 진정하는 것은 절차나 루트나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 생각하는 내내 아이가 걸린다. 학교 블랙리스트에 올라봐야 앞으로 남은 2년 아이에게 뭐 좋을 게 있을까?
나는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요즘 아이가 좀 피곤해했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1학년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 이상 지각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고 학교에는 관련 규정을 홈페이지에 올려달라고 요청하기로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에 머문다.
나는 조용한 가운데 속은 폭발 직전이 되어 다음 날 새벽 4시. 아직도 잠을 못 자고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아이는 왜 그렇게 일어나지 못했을까?
아이는 최근 영어학원을 바꾸었다.
곧 중2인데 이젠 원서 독서와 writing, speaking 보다는 입시 스타일에 최적화된 학원으로 옮길 때라고 생각했다. 이제 2주째, 아이는 처음 해보는 스타일에 허덕이고 있다. 그동안 해 온 게 있어서 그래도 레벨은 최상위 레벨. 같은 반 아이들 5명은 이미 더 어릴 적부터 그런 입시학원에 최적화된 아이들이었다. 이미 문법도 몇 번씩은 끝내고 단어 암기도 일상이 되어 있는 아이들.
담당 선생님과도 이미 합을 몇 번 맞췄던 터라 그런 수업 스타일에 익숙한데 아직도 문법이 약하고 오직 내용 이해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던 딸은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다른 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내용이 그런대요?라고 하라니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단다. 다들 무슨 수학공식처럼 딱딱딱 틀린 이유를 말한다고
나는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원서를 보고 듣게 했고 초등 고학년 아이 수준이 높아졌을 때는 그런 학원으로 보내 계속 원서를 접하게 했다.
나는 그런 아이가 자랑스러웠고 대견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재미있어했고 아이의 에세이 실력은 이미 수준급이라 학교 영어 수행평가 정도는 10분 만에 끝내고 전래동화 한영 번역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즐기면서 영어를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한국에서 이 나라에서
아이도 영어시험이라는 것을 봐야 하니까. 100점 만점에 줄 세우는 그 시험을 봐야 하니까
그래서 앞으로 딱 그렇게 5년만 하자고 그리고 대학 간 후에는 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영어 하면 된다고
(그런데 과연 5년 후에도 아이가 영어를 즐길까?)
영어수업 화목
아이는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숙제하고 모르는 것은 문법책 찾고 나한테 물어보느라 계속 긴장상태였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영어학원 zoom수업이 끝난 후에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얼이 빠져 있곤 했다.
엄청난 숙제를 소화하느라 월요일에 새벽까지 숙제를 한 아이는 이번 후 화요일 수업 후 그래도 첫 수업 때보다는 나았다고 했다.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적응해 가는 모습
화요일 잠든 아이는 수요일 아침에 깨지 못하고 지각을 했다.
나는 밤새 못 자고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찾아본다. 그러다 올해 수능 영어문제를 읽어보았다.
45문제 어마어마한 지문의 길이. 언뜻 보기에 직접적으로 문법을 묻는 문제는 없어 보인다.
물론 그 방대한 지문을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문법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원어민 유학생들도 어려워한다는 수능 영어를 그렇게 문법과 어휘 그런 것에 매달려야만 높은 등급을 맞을 수 있는 걸까?
아이가 하는 방식도 역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지 않을까?
학원들의 상술에 크게 개의치 않던 내가 어느덧 학원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잠도 못 자고 미친 듯이 공부한들 전교에서 몇 등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갈 수 있을까? 아니 대학을 나온 들 직업은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좋은 회사에 입사한다 해도 장래희망이 퇴직 후 카페 창업이라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 그렇게도 열심히 살았는데 그렇게 행복하지 못하다는 요즘 청년들이 떠오른다.
아이는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나도 힘들었는데 나보다 더 힘든 아이들 생각에...
그냥 옛날처럼 공부하면 되지 않아? 학원 안 가고 혼자 교과서랑 문제집만 풀어도 성적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서 옛날처럼 했다가는 큰일 난단다. 학원들이 말이다.
뭔가 달라 보이는 표지의 학원 책들, 한 장 들쳐보면 나 어릴 때 보던 영어문제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수업하면서 그렇게 공부했다가는 큰일 난단다.
성공한 사업가인 백종원은 수능 전날 학생들에게 '시험에 너무 인생을 걸진 말라'라고 당부했다. 이제와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목숨 걸고 시험에 임했을 학생들은 언제쯤 그걸 깨달을 수 있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
공부해야 하는지,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무엇이 될 것인지
내 인생은 소중한지,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리 소중한 아이들은 언제쯤 이런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될까?
그런 깨달음 없이 몰아치는 수업과 숙제에 치여 수능에 인생을 걸고 있다.
그런 것 좀 생각해 보라고 주어진 중1 자유 학년제는 그저 꿈일 뿐이다.
학교도 학원도 집에도 도움이 되는 어른은 별로 없다.
그저 빨리 일하고 빨리 돈 벌고 빨리 성적 올리는데 혈안일 뿐이다.
하루 종일 저기압인 나를 피해 아이는 오늘 같은 혹한에 저녁 늦게 산책을 나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간절하게 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문득 며칠 전 아이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아이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라는 책을 읽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학생이 이럴 수 있어?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엄마 나는 참 잘 크고 있다. 그렇지?" 환하게 웃는 아이.
그래 엄마한테 와서 웃으면서 이러쿵저러쿵 수다 떠는 거 보니 우리 딸은 잘 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복잡해진 생활을 정리해야겠다. 학기 중과 방학별로 중점 두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아이에게 여유를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