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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Oct 21. 2019

모유수유와 행복의 5차 방정식

엄마 수행 평가

파란 하늘이 기가 막혀 농장 체험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만 해도 도심이지만 차로 1시간만 가면 낙농업을 하는 목장이 다수 있고 소에게 건초주기, 송아지에게 우유를 먹이거나 치즈와 아이스크림 만들기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유치원생인 둘째가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아이는 체험이 다아~ 재미있다고 신이 났다.


목장체험이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젖소 우유 짜기이다.

체험을 진행하는 선생님 설명에 따르면 젖소에는 여러 가지 품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회사 우유팩 표지를 장식한 얼룩소를 주로 키우는데  그 소의 품종을 홀스타인이라고 한단다.

홀스타인은 젖의 양이 풍부하고 추위에 강해서 겨울이 추운 우리나라에서 많이 키운다고 한다.


우유 짜기 체험을 할 때는 젖소가 움직이지 않도록 철구조물에 세우고 사람들이 아래 쭈그리고 앉고 젖을 짠다.

젖꼭지가 4개 있는데 젖소의 특징상 유선이 힘줄처럼 굵게 발달했고 우유가 꽉 찬 것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젖통이 퉁퉁하게 밑으로 처져 있었다.

이런 농장체험도 벌써 세 번째인데 항상 느끼는 것은 저 젖소 너무 불쌍하다는 것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게 서서 낯선 사람들이 젖꼭지를 만지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니 말이다.

농장에서는 하루에 2번 우유를 짜고 매일 30kg의 우유를 생산한다고 한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줄을 서서 체험을 한다.

소젖은 천연 로션이라고 할 정도록 촉촉하고 부드럽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한 어른들이 몇 명 더 일어선다.

처음도 아닌데 소의 젖을 짜는 것은 늘 망설여진다.

어떤 남자분이 뒤쪽 젖꼭지를 잡았는데 소가 살짝 움찔한다.

오늘 오전에 뒤쪽 젖을 짜지 않아 느낌이 이상해서 소가 움찔하는 거란다.

그 남자분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나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바로 알아들었다.


어디 소뿐이랴?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포유류라면 다 같이 않을까?

사람이 아기를 낳으면 호르몬의 변화로 유선이 발달하면서 젖이 나온다.

출산 경험이 없는 초보 엄마들은 산후조리원에서 가슴 마사지를 받으며 유선을 뚫고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아기에게 젖을 많이 물릴수록 유선은 점점 발달하고 더 많은 젖이 나온다.

아기가 배고플 때마다 수시로 젖을 물리면 가슴은 원래 내 사이즈의 두 개 컵 정도 더 커진다. 아기가 젖을 한번 거르면 젖이 흘러 옷이 젖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젖꼭지에 난 상처를 통해 유선염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한번 젖을 먹이기 시작하면 이게 끊기가 힘들다.

아기는 엄마젖을 찾고 엄마는 제때 물리지 않으면 가슴이 아프다.

아기와 엄마는 배속에서 한 몸이었던 것처럼 태어나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아기가 엄마 젖을 물고 힘껏 빨아 갈증을 해소하고 실컷 먹고는 스르르 잠이 드는 것처럼 아름다운 장면도 없지만 홀스타인처럼 젖을 만들고 짜는 일을 직업처럼 하는 여성들도 없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엄마가 아니었을 때 자유롭게 나다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아이가 천사처럼 예뻐 미소 짓다가도 흠칫 내 삶에 드리운 강한 책임을 동시에 느낀다.

남편이나 가족들의 도움으로 이 시기를 잘 지내지 못하면 산후우울증으로 발전하여 기력도 없고 아기를 잘 돌볼 수도 없고 심하면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아기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다.


나는 결혼한 다음 해 엄마가 되었다. 그 때 나는 몸도 마음도 엄마로 거듭나기 위해 몸살을 겪었다. 아기가 조용히 자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고 깰까 봐 안전부절 못하던 시기였다.

수시로 젖 달라는 아기에게 나의 모든 스케줄이 맞춰 있었다.


아기에게 젖을 주다가 운 적이 있다.

남편은 항상 바빴기 때문에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집에서 출산휴가를 보내던 나 혼자서 아기를 돌봐야 했다. 자정이 지나 우는 아기를 달래고 소파에 앉아 젖을 물리는데 세상 모든 게 그리 서러울 수가 없었다.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걱정되었고 이렇게 푹 펴져서 앞으로 예쁜 옷을 입을 수는 있는지 아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나의 여성성은 완전히 부서졌다.



그렇게 슬픈 마음으로 아기에게 젖을 주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 기척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겨우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있을 뿐이었다.

어두운 거실에 사람 형상을 발견한 남편이 깜짝 놀랐다.

내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더 깜짝 놀랐다.

나는 그 주말에 아기를 엄마에게 맡기고 남편과 영화를 보러 갔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동안, 겨우 4시간 정도가 걸렸을 뿐인데 나의 젖은 넘쳐흘러 브래지어 사이에 끼워둔 패드를 흠뻑 적셨다. 젖이 흐르는 것을 느낀 나는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기가 분유를 잘 먹고 있을까? 할머니랑 잘 놀고 있을까? 걱정했다.

그렇게 불편한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나는 바로 아기에게 뛰어 들어갔다.

아기로 인해 우울하다가도 아기에 대한 죄책감은 더 견딜 수 없는 우리네 엄마들은 평생 아기에게 구속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모두 그렇게 사셨다.


나는 두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그리 오래 하지 않았다.

첫째는 10개월 정도, 둘째는 6개월 정도 했을 뿐이다.

모유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 적은 없지만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모유는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니 좋을 것이다.

가능한 모유수유를 오랫동안 할 것을 권장하고 주변에서 2년을 했네, 3년을 했네 하는 엄마들을 위대하다며 우러러본다.

나도 물론 모유가 좋은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쯤에서 그만두었다.


나는 훌륭한 성분의 모유보다는 엄마의 편안한 마음을 선물하기로 했다.

나는 아기에 대한 원망보다는 차라리 아기에 대한 미안함을 선물하기로 했다.


'아가야, 엄마가 오랫동안 젖을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 엄마가 더 잘할게'



아기에 대한 책임감으로 마음의 병을 돌보지 않고 그저 모유수유를 하면서 신세 한탄이나 하는 엄마의 모유 성분이 좋기만 할까? 그런 스트레스 속에서는 엄마의 스트레스 인자도 모유 속에 함유될 것 같다.

나는 아기에게 분유를 충분히 먹인 후 푹 재웠다. 덩달아 나의 수면의 질도 높아졌으며 몸도 빠르게 회복되어 육아의 질도 높아졌다.

나는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고, 모유의 양이 적어서 아이들이 잘못되지도 않았으며 모유를 2년, 3년 먹인다고 아이들이 노벨상 수상자가 되거나 유명한 정치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유는 훌륭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가 아닐까?

불편한 사람과 함께하는 진수성찬과 편한 사람과 함께 먹는 라면 중에서 무엇을 먹고 싶은가?

엄마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유를 강요하는 것 누구를 위한 것인가?


'모유'를 검색하면 모유가 면역력 강화와 두뇌 발달과 정서 안정에 도움을 주고 산모에게는 비만을 방지하고 위생적이고 경제적이라며 온통 장점을 떠들고 있다.

이 좋은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여성들은 엄마로서 자질이 부족한 사람 취급받는다.

선천적으로 모유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분유를 먹인 엄마들의 죄책감은 또 어쩔 건데?

모유양이 충분하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고 부족하다고 꼭 나쁜 것도 아니고

모유수유 기간이 길었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짧았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모유수유가 아이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1차 방정식 내지는 2차 방정식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모유수유를 강하는 세상에 대고 한 마디 외치고 싶다.


"나는 모유 짧게 먹였어도 애들만 잘 큰다. 어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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