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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Aug 10. 2019

아이 축구교실의 권력관계

엄마 수행 평가

아들은 축구를 배우고 싶어 했다.

이미 태권도를 하고 있어 두 개의 운동을 다 하기는 무리였을 텐데도 아들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축구는? 축구는?" 했다.


다행히 통상 축구교실은 주 1-2회 수업을 한단다. 주 1회만 축구를 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다 적당한 위치의 실내축구장을 알아냈다.

최근에 아이들 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는데 학원 종류별로 그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것이 재밌다.

가령, 태권도는 저렴한 비용으로 다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번에 수업을 하고 토요일에도 각종 이벤트성 행사가 많고 학부모들이 전반적으로 개방적이다.

반면에 축구는 비교적 비싼 비용을 받고 적은 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학부모들이 전반적으로 폐쇄적이다. 특권의식까지도 느껴졌다. 축구가 뭐라고 좀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그 축구교실은 유치원 친구들도 다수 다니고 있어서 아들은 꼭 그곳에 가고 싶어 했다.

상담을 받았는데 축구교실은 코미디 같은 요소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수업시간이 있었는데 몇몇 학부모들이 친한 친구들끼리 팀을 만들어 가장 좋은 시간대를 선점하고 있었다.  그 시간에 자리가 있었는데 함께 수업을 받으려면 기존 학부모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단다.

아들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로 짜인 팀이었으나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회사 다닌다고 1등으로 등원하고 꼴등으로 하원 했으니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생짜로 모르는 사람이라면 얼굴에 철판 깔고 함께 수업을 받을 것인지 동의를 요청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나는 거부했다. 숙이고 들어가는 기분이어서 아니꼬워서 그랬다.

서로 모르는 아이들 개개인들이 함께 레슨을 받기도 하는데 그나마 그 시간도 정원이 꽉 차서 티오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나는 내심 아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 수업을 들었으면 했다. 그러나 아들은 꼭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아들한테 그 시간에는 자리가 없다고 몇 번 거짓말하다가 그것도 그만두었다.


그러다 어느 날 축구교실에서 연락이 왔다. 상담할 때와는 다른 선생님이다.

얘기 중에 혹시 3시 수업은 들을 수 없냐고 물었더니 웬걸 된단다.

뭐지? 착오가 있는 건가? 팀을 이룬 수업은 이미 내가 거부를 했으니 학부모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을 거다.

선생님이 운영방식을 모를 리는 없는데 이상하다. 나는 모른 척했다. 아들이 축구 얘기를 한 지도 두 달을 넘어가고 있었다.


 


실수인지 착오인지 아들의 축구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업 첫날 가보니 엄마들은 없고 아이들만 있다. 나는 잘 되었다 싶었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지만 일면식도 없는 엄마들과의 어색한 조우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던 차였다.

원래 내가 이렇다. 웃으면서 '어머 안녕하세요 저 철수 엄마예요, 오늘부터 철수도 축구해요'하면서 조금 푼수같이 다가갈 수 있다면 삶이 조금 편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수업이 끝날 때쯤 학부모들이 한 명씩 나타다. 아는 얼굴은 없다. 다행이다. 그냥 모른 척 있으면 된다. 그런데 아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다. 이거 참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하여 괜히 수업 끝내고 나온 아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학생들은 수업을 끝내고 나와 자연스럽게 간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실수인지 착오인지 동의를 받긴 한 건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간식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땀을 흘린 아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고 오렌지주스를 꺼내 마신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하면서 아이에게 주스 한 팩을 주고 선생님에게 먹어도 되는 거냐고 물으니 괜찮다며 비용은 계좌 이체하면 된단다.

다행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주스는 축구교실 측에서 파는 것이 확실한데 테이블에 흩어져 있는 저 과자들의 정체를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어떤 엄마가 아이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말한다.

"얘들아 과자 하나씩 먹어, 응 하나씩 먹어"

난감해하고 있는데 다행히 아들 녀석도 눈치가 빠삭해서 과자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그 어떤 엄마가 갑자기 또  큰 소리로 말한다.

"어 왜 한 개가 부족하지? 여덟 개 가져왔는데 선생님  A팀 여덟 명 아니에요?"

"아 오늘 아홉 명이요,  한 명은 테스트..."

선생님도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말 끝을 흐린다.

이런, 우리 아들은 먹지 않았는데 그럼 한 개는 어디로 간 거지?

보아하니 사전에 학부모들 동의도 없이 수업을 시작한 아들이 과자까지 먹었다는 누명을 쓰는 분위기라 나도 큰 소리라 말한다.

"그런데 우리 철수가 먹은 건 아니에요"


오늘은 그 엄마가 간식 담당이었단다. 여덟 명으로 구성된 팀의 엄마들이 순번을 짜서 간식을 준비한단다.

"철희야, 너는 집에 가서 먹자. 집에도 있어" 화난 기색이 역력하다.

더운 날 둘째까지 둘러업고 온 그 엄마의 상기된 얼굴이 더 벌게졌다.

괜히 잘못도 없이 멀뚱멀뚱 서 있는 아들이 눈총을 받는 것 같다.

'간식을 좀 넉넉하게 가져왔어야지, 딱 맞춰 가져오냐?' 속으로 괜히 에맨 그 엄마를 탓한다.



그렇게 아이는 축구교실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반장 엄마가 나에게 단체톡을 보낼 거란다. 모르긴 몰라도 나를 초대하기 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한바탕 썰을 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만 관계된 경우면 '별일이네' 하고 말 수 있지만 중간에 아이가 있다. 아이는 두 달 동안 '축구는? 축구는?' 하며 오늘만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그 엄마들에게 먼저 환하게 인사하면서 다가갔어야 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도 오늘은 소중한 것을 위해 한번 숙였어야 했다.


나는 잘잘못을 따지는 성격이다. 쌈닭 같은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말기 바란다. 명백하게 잘못된 경우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따져야 한다. 그런데 부당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애매하거나 불편한 경우는 침묵할지 언정 상대방 생각해서 먼저 숙이지는 않는다.

오늘 나는 이미 축구교실에 자리를 잡은 그 엄마들에게 먼저 다가갔어야 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한숨을 내쉬며 다음 주를 기약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사람들은 없겠지? 학교에서, 학원에서, 아이 친구들에게,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적당히 수긍하고 적당히 맞춰주고 내 본질에 벗어나게 행동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약자이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누구이든 관계가 이루어지면 반드시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권력관계는 회사의 상사와 직원처럼 공식적으로 확실하게 상하관계이기도 하지만

학부모 사이처럼 비공식적 권력관계이기도 하다. 모두가 똑같은 처지에 권력이라니. 그러나 부모라면 다 안다. 이 이상하고도 미묘한 권력관계를.

공식적으로 상식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이라면 그 권력을 갈등 없이 용인하겠지만

내면에 미묘하게 형성된 상식에 맞지 않은 권력관계는 갈등을 유발하거나 그 관계를 회피하게 한다.

아이들을 사이에  엄마들의 관계는 친구는 당히 아니고 지인도 아니다. 그냥 아는 엄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 생기면 그때부터 불편한 엄마들과의 관계는 정리할 수 있다.

그러니 지인이랄 수도 없다. 한시적 아는 사람에 불과하다.

운이 좋으면 그 중 한 두명 친구로 남을 수도 있다

첫 아이의 경험에 따르면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엄마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2-3년은 이 불편한 상황을 인정하고 내 아이가 그 무리에서 함께 무난히 지낼 수 있도록 나도 그 곁에서 적당히 웃음 지으며 살아야 한다.


단톡방에 초대되면 좀 더 밝게 말하고 웃음과 물결표시도 더 많이 써야겠다고 벌써부터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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