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매월 매일 스피드를 외치는 회사에 다니는 아빠를 둔 우리 집 초등학교 6학년 큰 아이는 공신폰을 들고 다닌다.
워낙 잘 떨어뜨려 벌써 액정을 세 번 네 번을 갈고, 최근엔 전화기가 물에 빠지면서 기계 내부가 모두 녹슬고 유심도 되었다 안되었다 한다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아이에게 새로운 공신폰을 사주었다.
큰 아이의 핸드폰 스토리는 이렇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혼자 서틀을 타고 수영장에 가고 혼자 샤워하고 다시 셔틀을 타고 집에 와야 했기에 처음으로 전화만 되는 핸드폰을 사주었다. 그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물론 핸드폰 사용과 관련한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처음 규칙을 정할 때 약속대로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공신폰으로 바꾸어 지금에 이르렀다.
전화기를 자주 떨어뜨리고 또 잘 잃어버리는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까지 전화기를 세 번 네 번을 바꾸었다.
어릴 때는 공신폰이라는게 없었는지 스마트 폴더폰을 사용하다가 엄마와 전화기 사용하는 규칙을 여러 번 어기면서 지금의 공신폰으로 바꾸었다. 그 기계가 고장 나면 계속 수리하면서 사실 스마트폰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공신폰을 유지하고 있었다.
점점 사춘기로 들어서는 아이는 연예인과 화장, 얼굴에 난 뾰루지 없애는 방법 같은 것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으로 확인하면서 조금씩 알아갔다. 나는 매일 30분씩 내 전화기를 빌려주면서 아이가 숨통 막히지 않도록 조절했다.
물론 아이는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공신폰으로 하루 종일 문자하고 노트하고 음악 들으면서 누가 보면 저 아이도 스마트폰이구나 오해하도록 만든다.
스마트 폴더폰은 기능은 스마트폰이지만 외관은 폴더폰이고 공신폰을 인터넷 기능은 없으나 외관은 길고 늘씬한 게 누가 봐도 스마트폰이다.
아이는 자기가 공신폰이라는 것을 누가 알까 봐 창피하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애는 착하다 생각하면서 그럭저럭 외줄 타기를 이어오고 있는데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 날은 주말이라 티브이도 이미 충분히 본 날이었는데 둘째가 늦은 시간에 이제 핸드폰 보겠다며 당당히 전화기를 요구했다.
-우리는 주말에만 티브이를 본다. 그리고 둘째는 어쩔 수 없이 누나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단 하루 20-30분임에도 나는 내 발목을 잡았구나 싶어 화가 났다.
나는 그날 아이들을 이렇게 선언했다.
'평일에는 핸드폰을 30분 볼 수 있지만 주말에는 티브이를 보니 핸드폰을 볼 수 없다. 앞으로 그렇게 하는 거다.'
그런데 갑자기 애들 아빠가 불쑥 끼어들어 이렇게 말한다.
'애들이 스마트폰을 왜 봐야 하는데? 앞으로 전화기 볼 수 없다.'
이 무슨 갑자기 벽창호 같은 소리란 말인가?
나는 그 순간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언쟁을 벌일 수 없어 가만히 있었고 애들 아빠의 선언은 새로운 규칙이 되었다. 남편의 탁상행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세상을 스마트한 세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대단한 회사들 덕(?)에 세상은 놀랍게 변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가?
한번 나가면 밤늦게 들어와 거의 아이들을 볼 일이 없고 아이가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교과서 같은 소리를 하는 애들 아빠에게 화가 났다.
안 보면 습관이 된단다. 세상이 아무런 자극도 없이 그렇게 단순한 곳이라면 참 좋겠다.
그냥 달나라로 가고 싶다. 저기 어디 두메산골에만 가도 핸드폰이 터지니 아예 달나라가 좋을 것 같다. 학교에만 가도 친구들 모두 스마트폰을 쓰고 할머니네 집에만 가도 마음껏 스마트폰을 볼 수 있는데 습관이라니...
아이에게 그런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라 하는 게 가능한가?
어른들은 이것저것 참다 참다 힘들면 술이라도 마시고 쇼핑이라도 하고 영화라도 보고 여행이라도 간다.
아이들은 돈도 없고 차도 없고 겨우 한다는데 다리품 팔아 올리브영같은 데 가서 아이쇼핑하는 게 다인데 그런 숨통 막히는 상황을 습관처럼 견디라는 게 가능한가?
탁상행정은 공무원들만 하는 줄 알았다.
현장에는 가보지도 않고 꼭대기에 앉아서 종이에 끄적끄적 정책을 구상하는 공무원들이나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서의 실상을 모르고 밤에나 들어오는 남편이 꼭대기에 앉은 공무원같이 굴고 있다.
중간에서 그 규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하는 나조차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슬슬 점점 자주 엄마를 속인다.
너무 뻔한 거짓말을 하는데 -평일에도 엄마 몰래 티브이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어를 실컷 보는 것 같은- 부모가 그런 상황으로 내 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궁금한 것 많고 예뻐지고 싶고 친구들에게 찐따로 보이기 싫다는 아이는 거짓말이라도 하면서 규칙을 어기지 않고서는 숨이 막 힐 것 같다며 울었다.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동생이 잠든 후에 딱 30분만 보여 주기로. 나 혼자 결정했다.
규칙의 최전방에서 내 책임하에 실행해야겠다.
남편에게 그 간의 부작용을 낱낱이 밝히고 앞으로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키우고 싶지만 아이들은 식물이 아니다.
물과 햇빛만으로 키울 수 없다.
가슴이 조여들어온다.
아이가 느꼈을 숨막힘과 남편의 단단한 벽이 동시에 느껴져 숨도 쉬기 힘들 만큼 가슴이 조여 들어온다.
아이는 나를 원망한다.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정한 남편은 평소에 -거의-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큰소리치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남편의 규칙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회유하고 설득하면서 화내고 흥분하고 소리친 나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