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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Aug 21. 2019

사춘기와 스마트폰

엄마 수행 평가

애들 아빠는 핸드폰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

매년 매월 매일 스피드를 외치는 회사에 다니는 아빠를 둔 우리 집 초등학교 6학년 큰 아이는 공신폰을 들고 다닌다.

워낙 잘 떨어뜨려 벌써 액정을 세 번 네 번을 갈고, 최근엔 전화기가 물에 빠지면서 기계 내부가 모두 녹슬고 유심도 되었다 안되었다 한다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아이에게 새로운 공신폰을 사주었다.


큰 아이의 핸드폰 스토리는 이렇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혼자 서틀을 타고 수영장에 가고 혼자 샤워하고 다시 셔틀을 타고 집에 와야 했기에 처음으로 전화만 되는 핸드폰을 사주었다. 그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물론 핸드폰 사용과 관련한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처음 규칙을 정할 때 약속대로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공신폰으로 바꾸어 지금에 이르렀다.

전화기를 자주 떨어뜨리고 또 잘 잃어버리는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까지 전화기를 세 번 네 번을 바꾸었다.

어릴 때는 공신폰이라는게 없었는지 스마트 폴더폰을 사용하다가 엄마와 전화기 사용하는 규칙을 여러 번 어기면서 지금의 공신폰으로 바꾸었다. 그 기계가 고장 나면 계속 수리하면서 사실 스마트폰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공신폰을 유지하고 있었다.



점점 사춘기로 들어서는 아이는 연예인과 화장, 얼굴에 난 뾰루지 없애는 방법 같은 것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으로 확인하면서 조금씩 알아갔다. 나는 매일 30분씩 내 전화기를 빌려주면서 아이가 숨통 막히지 않도록 조절했다.

물론 아이는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공신폰으로 하루 종일 문자하고 노트하고 음악 들으면서 누가 보면 저 아이도 스마트폰이구나 오해하도록 만든다.

스마트 폴더폰은 기능은 스마트폰이지만 외관은 폴더폰이고 공신폰을 인터넷 기능은 없으나 외관은 길고 늘씬한 게 누가 봐도 스마트폰이다.

아이는 자기가 공신폰이라는 것을 누가 알까 봐 창피하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애는 착하다 생각하면서 그럭저럭 외줄 타기를 이어오고 있는데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 날은 주말이라 티브이도 이미 충분히 본 날이었는데 둘째가 늦은 시간에 이제 핸드폰 보겠다며 당당히 전화기를 요구했다.

-우리는 주말에만 티브이를 본다. 그리고 둘째는 어쩔 수 없이 누나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단 하루 20-30분임에도 나는 내 발목을 잡았구나 싶어 화가 났다.

나는 그날 아이들을 이렇게 선언했다.

'평일에는 핸드폰을 30분 볼 수 있지만 주말에는 티브이를 보니 핸드폰을 볼 수 없다. 앞으로 그렇게 하는 거다.'

그런데 갑자기 애들 아빠가 불쑥 끼어들어 이렇게 말한다.

'애들이 스마트폰을 왜 봐야 하는데? 앞으로 전화기 볼 수 없다.'



이 무슨 갑자기 벽창호 같은 소리란 말인가?

나는 그 순간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언쟁을 벌일 수 없어 가만히 있었고 애들 아빠의 선언은 새로운 규칙이 되었다. 남편의 탁상행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세상을 스마트한 세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대단한 회사들 덕(?)에 세상은 놀랍게 변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가?

한번 나가면 밤늦게 들어와 거의 아이들을 볼 일이 없고 아이가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교과서 같은 소리를 하는 애들 아빠에게 화가 났다.


안 보면 습관이 된단다. 세상이 아무런 자극도 없이 그렇게 단순한 곳이라면 참 좋겠다.

그냥 달나라로 가고 싶다. 저기 어디 두메산골에만 가도 핸드폰이 터지니 아예 달나라가 좋을 것 같다. 학교에만 가도 친구들 모두 스마트폰을 쓰고 할머니네 집에만 가도 마음껏 스마트폰을 볼 수 있는데 습관이라니...

아이에게 그런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라 하는 게 가능한가?

어른들은 이것저것 참다 참다 힘들면 술이라도 마시고 쇼핑이라도 하고 영화라도 보고 여행이라도 간다.

아이들은 돈도 없고 차도 없고 겨우 한다는데 다리품 팔아 올리브영같은 데 가서 아이쇼핑하는 게 다인데 그런 숨통 막히는 상황을 습관처럼 견디라는 게 가능한가?

탁상행정은 공무원들만 하는 줄 알았다.

현장에는 가보지도 않고 꼭대기에 앉아서 종이에 끄적끄적 정책을 구상하는 공무원들이나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서의 실상을 모르고 밤에나 들어오는 남편이 꼭대기에 앉은 공무원같이 굴고 있다.

중간에서 그 규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하는 나조차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슬슬 점점 자주 엄마를 속인다.

너무 뻔한 거짓말을 하는데 -평일에도 엄마 몰래 티브이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어를 실컷 보는 것 같은- 부모가 그런 상황으로 내 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궁금한 것 많고 예뻐지고 싶고 친구들에게 찐따로 보이기 싫다는 아이는 거짓말이라도 하면서 규칙을 어기지 않고서는 숨이 막 힐 것 같다며 울었다.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동생이 잠든 후에 딱 30분만 보여 주기로. 나 혼자 결정했다.

규칙의 최전방에서 내 책임하에 실행해야겠다.

남편에게 그 간의 부작용을 낱낱이 밝히고 앞으로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키우고 싶지만 아이들은 식물이 아니다.

물과 햇빛만으로 키울 수 없다.

가슴이 조여들어온다.

아이가 느꼈을 숨막힘과 남편의 단단한 벽이 동시에 느껴져 숨도 쉬기 힘들 만큼 가슴이 조여 들어온다.

아이는 나를 원망한다.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정한 남편은 평소에 -거의-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큰소리치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남편의 규칙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회유하고 설득하면서 화내고 흥분하고 소리친 나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겨우 사춘기의 시작일텐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벌써부터 상상되면서 두려워진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상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러니 남편을 너무 탓하진 말아야지. 다만 지금은 내가 나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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