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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Sep 05. 2018

1등으로 등원

엄마 수행 평가

울면서 출근을 한 적이 있다. 복직하고 1년쯤 되었을 때다.

그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는데 급급했지 아이가 그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잠깐 유리창 너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에 1등으로 오는 아이, 어린이집에서 꼴찌로 가는 아이. 우리 둘째다.

집이 용인이고 회사가 광화문이라서 출퇴근 시간만 1시간 40분이 걸리는 나는

겨울철 꼭두새벽부터 아이를 깨워, 거의 강제로 밥을 먹이고,  어둑어둑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간에 거의 끌고 가다시피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는다.

혹한이 무서울 정도였던 그 해 겨울, 아무리 두툼하게 옷을 입어도 그 여린 살갗으로 찬 기운이 스며드는 날이면 약 7분가량 걸어 어린이집에 안전하게 데려다 놓고 휴 일단 할 건 다 했다 했는데...


     

최근 어린이집에 아침맞이를 해주는 선생님이 바뀌었다.

원래 맞아주시던 선생님이 자주 나를 기다리게 하는 통에 원장님이 날 배려하여 좀 더 일찍 올 수 있는 선생님으로 바뀌어 다행히 오전 8시 전에 가도 항상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편해졌다.

담임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새로운 선생님과 지내겠지.

대부분의 친구들이 오는 9시까지 약 1시간가량 그 선생님이랑 놀고 있겠구나.

이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어린이집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바로 가려다 그날따라 왠지 안쓰러워 살짝 들여다보았는데 이상한 상황을 목격했다.

선생님은 문만 열어주고 교무실로 휭 들어가 버리고, 아이 혼자 신발 정리하고 터덜터덜 선생님과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거다. 물건을 만지며 왔다 갔다 하는 아이. 상상과는 다른 모습에 좀 의아해서 그날 밤 아이에게 물어봤다.     



"현아, 현이 아침에 일찍 어린이집 가면 뭐해? 열매반 선생님 오기 전까지?"

"음 그냥 아무것도 안 해"

"아무것도 안 해? 왜?"

"음, 그냥 돌아다녀. 심심해서. 친구들 오기 전까지"

"장난감 가지고 놀면 되잖아?"

"음 재미없어."

"그래서 ubs 가져가려는 거였어?"



아이는 온갖 기계류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usb에 푹 빠져 있었다.

나는 평소 집에 있는 물건 가져가면 잃어버린다는 공식적인 이유로 -사실은 집 물건 가져가면 선생님들이 싫어하니까-장난감을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응 그거 있으면 재밌지."

"아침에 그 선생님은 뭐하는데?"

"음, 일하지?"

"일 해?"

"음, 공부하지?"     




그 순간 모든 진실이 순식간에 이해되었다.

아침에 아이는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오기 전까지 혼자서 뭘 하고 있을까?

아침에 밝고 착해 보이는 그 선생님과 지낼 거라고 나 편할 대로 상상하고 있었다니

아이는 엄마가 usb도 못 가져가게 하고 아침 내내 심심해서 슬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다음 날 아이는 엄마 허락하에 usb를  잠바 주머니에 보물처럼 넣고 조몰락조몰락거리며 어린이집에 갔다.

오늘은 어떨까? 아이가 들어가고 나는 가는 척하다 또 살짝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선생님을 보자 잠바도 벗기 전에 보물 같은 usb를 수줍은 듯 슬쩍 꺼내서 선생님께 보여주려는데 그 선생님은 못 본 건지 못 본척하는 건지 눈길도 안 주고 또 방으로 '휭' 들어가 버린다.


뻘쭘해진 아이는 말도 못 붙이고 자기 반으로 도망치듯 재빨리 숨어 버린다.

단 2초 정도 목격한 장면인데 아이의 하루가 모두 스크린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아이를 두고 차마 가버릴 수가 없어 아이를 보기 위해 화단 근처 돌 위에 올라서 아이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지켜본다.


집에서 본 적 없는 다른 모습.

혼자서 옷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가방 문을 열어 식판을 꺼내고

엄마가 넣어준 귤을 꺼내고 혼자 정리하는 모습     

가만히 지켜보는데 어찌나 안쓰럽던지..


시선을 느꼈는지 아이는 창문 쪽을 바라보았고, 엄마를 보긴 했는데 엄마가 창문에 보일 리가 없는데 참 이상하다. 그런데 엄마가 맞긴 한 거 같은데 그래도 참 이상하다

이런 표정으로 엄마를 항해 손을 흔들었다.

큰 하트 작은 하트를 몇 번을 날린 후에야 우린 그날 작별했다.    

 

다섯 살, 아직 말도 능숙하지 않고 표현도 서툴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조차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얼마나 제멋대로 생각하고 상상하고 결론 내리고 있었을까?

아이와 헤어진 후 마치 누군가 뒤에서 막 혼내는 것 같아 버스정류장까지 마구 뛰어가는데 눈물이 솟구쳤다. ‘하느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집에서 방방 거리고 발랄한 아이를 보며 항상 잘 지내겠지. 별 탈 없으니까 잘 지낼 거야

별일 있으면 큰일 나지. 괜찮을 거야. 나는 오늘도 출근하면 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화도 났다. 원장님한테 항의할까?

아침에 본 적나라한 모습을 근거로 아이를 한 시간이나 그렇게 두는 것은 방치하는 것 아니냐 화내 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려니 상황이 복잡해졌다. 

원장님은 일찍 가야 하는 나를 위해 더 빨리 올 수 있는 선생님으로 한번 바꿔 주셨고 만약 오전 선생님이 또 바뀌면 난 다시 매일 몇 분 차이로 지각을 해야 할지 모른다.

이 겨울만 지나면 집에서 좀 더 가까운 유치원에 입학한다.

몇 달만 참자 몇 달만.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상황의 변화만 기다리는 나약한 워킹맘이었다.   


어른들은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는 걸까?

어른들은 왜 이리 편할 대로 생각하는 것일까?

어른들은 왜 이리 못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누군가 나를 좀 호되게 꾸짖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지금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른들에게 어떤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얼마나 외롭게 슬슬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나는 다른 엄마들보다 더 부지런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치밀하고 더 치열하니까 이 정도면 난 정말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가 정말 한심했다.

좀 더 아이들에게 섬세해 지자, 확실하게 알기 전에 내 멋대로 판단하지 말자. 

나약한 워킹맘은 그날도 지킬 자신 없는 결심을 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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