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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May 29. 2020

부부는 된장찌개를 닮아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변하는 소비패턴이 우스갯소리가 되었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고기, 생선, 야채 등 신선한 재료들이 많이 팔렸고 중간에는 반조리식품이 많이 팔렸고 더 나중에는 피자, 만두 같은 냉동식품이 많이 팔리더니 막판에 가서는 라면, 과자, 빵, 아이스크림들이 많이 팔렸단다. 에헤라디야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인가 보다고 남편과 한참을 웃었었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 갇혀 집밥 먹은 지도 3개월째, 라면으로 한 끼 때우고 싶은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점점 손목 관절에 무리가 간다 싶었지만 그 날은 주말에다 일주일에 하루 남편이 쉬는 날이기도 했다.

아침은 근처 식당에서 콩나물국을 사다가 밥 말아 대충 치웠고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대충 때웠으니 저녁은 뭐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사실은 그냥 굶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그런데 아니지, 나 혼자라면 모를까 가족들이 모두 있는데 그건 양심상 도저히 못할 짓이었다. 나는 남은 힘을 쥐어짜 보기로 했다.


마트 가는 것도 귀찮아서 집에 있는 식재료들을 모아 보니 그래도 무언가 계속 나온다.

멸치를 볶고 시금치를 묻히고 몇 가지 야채를 그릇에 담으니 알록달록 예쁘다. 둘째가 좋아하는 백김치를 포함해서 김치 종류만 세 가지다. 전날 먹고 남은 야채 소시지를 동글동글하게 잘라 계란에 살짝 묻혀 굽고, 생선도 한 마리 준비한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 국물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보통의 한국인들과 달리 나는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국 없이 맨밥 꾸역꾸역 먹는 내게 부모님은 목 막힌다고 하신다. 그러나 나는 뜨거운 국물은 영 별로라 뻑뻑하게 먹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평소 아이들과 식사할 때도 거의 국물이 없는 편이다. 아이들도 나에게 길들여져 국물 없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 날은 국과 밥, 반찬들을 모두 갖춘 집밥을 차리기로 한다.


만만한 미역국을 끓인다. 미역 외에 다른 재료가 없어 그냥 미역국으로 한다.

미역국은 주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소고기 미역국이 되기도 하고 대합 미역국, 전복 미역국이 되기도 하지만  미역만 넣고 끓여도 맛있다.

바짝 말린 다시 멸치로 끓인 진한 육수와 멸치액젓만 있으면 된다.


그날도 단지 그렇게 했을 뿐이다.

가족들은 저녁상을 보더니 '와아~'했고 국물 맛을 본 큰 애는 "엄마는 미역국을 참 잘해. 저기 왜 롯*몰에 미역국 전문점 있잖아? 거기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한다.

둘째는 아무 말 없이 호로록호로록 떠먹느라 바쁘다.

오랜만에 집밥을 먹는 남편도 조금 감동한 것 같았다.

"이제는 뭐든지 뚝딱이네."

이런 쑥스러워서 귓불이 간질간질할 지경이다.

"오 쏘세지~~ 옛날에 쏘세지 좀 먹었나?"

남편은 어릴 적 단골 도시락 반찬인 소시지를 보고 옛날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쏘세지~라고 강조까지 하면서 신이 났다.

그냥 거기서 끝내지 슬쩍 신혼 시절 추억을 꺼낸다.


"요즘은 정말 잘해. 그때는 된장찌개 사서 끓이다 딱 걸렸었는데..."

"응? 무슨 된장찌개?"

"그때,  기억 안 나? 딱 걸렸잖아. 하하하"

맞다. 그랬었지. 뭘 해도 부족하고 뭘 만들어도 드럼통이 되어 버리던 시절, 신혼.

10년 자취생활을 한 남편의 음식 솜씨가 더 좋았던 시절이다.





신혼 때 남편은 주말 아침에 나에게 멸치 주먹밥을 해 주곤 했다.

남편의 밥상이 그나마 자취생의 것이라면 내 밥상은 도시락 김과 참치 통조림, 엄마가 주신 김치를 그릇에 담아 먹었으니 소꿉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는 음식을 하면 무언가 부족하거나 무언가 너무 강해서 일단 이것저것 넣고 물로 희석하다 보니 국물만 한 가득히 되곤 했다. 떡볶이를 해도 김치찌개를 해도 한 가득, 한 가득.

"남편~~ 이거 맛 좀 봐봐." SOS를 보내면 한 모금 먹어본 남편도 도저히 해답을 못 찾고 "그냥 조금 더 끓여보자."라고 반응하던 시절.


결혼하고 몇 달이 지나도록 음식 솜씨는 좋아질 기미가 없고 소꿉놀이도 한두 번이지 그 날은 좀 고민이 되었나 보다.

나는 은밀하게 완성된 된장찌개를 샀다. 신혼의 상징, 된장찌개.

나는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털어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부지런히 저녁상을 차렸다. 오늘은 다를 거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봉지에 적힌 대로 정량의 물을 붓고 끓이기만 하면 되니 세상에 이렇게 쉬운 미션이 또 있을까?

나는 완전범죄를 꿈꾸며 아주 치밀하게 준비를 해 나갔다. 사랑하는 남편이 아마도 오늘 내 음식 솜씨에 아주 깜짝 놀랄 거다.


퇴근한 남편, 온 집 안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했겠지?

"와 맛있는 냄새난다. 뭐야?

"응 된장찌개~ 빨리 씻고 와~~"

신혼부부답게 대화가 공처럼 통통 튄다.


예상대로 남편은 깜짝 놀랐다.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한 그릇 뚝딱, 맛있게도 먹었다.

나는 은밀한 비밀을 감추고 짐짓 힘들었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으리라.

"이거 어떻게 끓였어? 진짜 맛있다."

"응? 응 그냥 끓였지.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

"진짜 맛있어"

나는 말을 줄이고 눈만 끔뻑 끔뻑이고 있었으리라.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었어야 했는데 식사를 다 끝내고 치우는 사이 나름 은밀한 범죄는 다 들통나고 말았다.

맛있게 잘 먹었다며 치우는 건 자기가 하겠다고 부산스럽던 남편이 휴지통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어 이거 뭐야??"

"뭔데?"

오늘 저녁은 완전히 대성공이라고 으스대며 남편이 식탁을 치우는 사이 앉아 쉬고 있던 나는 문제의 휴지통으로 간다.

거기엔 된장찌개 봉지가 범죄를 입증하며 적나라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현장을 들킨 나는 입을 다물고 눈만 끔뻑 끔뻑 끔뻑,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이거였어? 으하하하하. 그래도 맛은 있었어. 으하하하하."





"그때, 와이프 참 귀여웠어."

그래 그랬었지. 남편 기쁘게 해 주겠다고 MSG 범벅인 된장찌개를 사서 내가 한 것 마냥 끓여대던 귀여운 초보주부였지.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다. 그 사이 내 음식 솜씨는 뭐 일취월장한 셈이다. 음식에 그리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 때는 한다.

된장찌개는 쉬운 음식이다. 다시 멸치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어 감자 호박 두부 등을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레시피도 필요 없는 간단한 음식이다.

그러나 또 한편 된장찌개는 그리 쉬운 음식이 아니다. 많은 국물요리의 핵심은 육수에 있다. 또 육수의 핵심은 멸치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눅눅한 멸치로 바로 국물을 내면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기름기 없는 팬에 미리 볶아야 한다. 멸치를 충분히 넣고 10분 이상 끓여 뿌연 진국을 낸다. 된장을 풀고 끓이다가 야채를 넣을 때는 재료가 익는 순서를 고려하여 순서대로 넣어준다. 어른이 먹을 거라면 막판에 청양고추 살짝 넣어주면 칼칼하니 좋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 중간중간 디테일을 알아야 MSG 없이도 맛있는 된장찌개를 만들 수 있다.

 

큰 고민 없이 슥슥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경험으로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스며야 손맛이란 것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신혼 시절 우리 부부는 MSG된장찌개의 성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무조건 맛있다고 먹던 것처럼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으면서 마냥 좋기만 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끓인 된장찌개를 닮아 갔다.

방법도 단순하고 재료도 투명하여 이런저런 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어 갔다.

그러나 의식하지도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디테일을 행하며 결국 손맛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사이가 되어갔다.

사실은 당연하지 않지만 많은 것을 당연히 행하는 부부, 중간 어디쯤에서 행복의 최적점을 찾아가는 부부.


나는 이제 된장찌개, 미역국 정도는 나만의 레시피로 뚝딱 끓일 수 있는 주부가 되었다. MSG범범 된장찌개 끓이던 초보 주부의 추억을 가진 중간 주부가 되었다.

아직은 된장의 비밀을 풀지 못하고 엄마와 이모의 된장에 의지하는 중간 주부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된장까지 만드는 우리 부모님 같은 프로주부가 되면 그땐 또 다른 맛의 된장찌개를 끓일 수 있겠지?

그때 우리 부부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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